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채원 Mar 20. 2022

0. 서울엔 우리집이 없더라

결혼을 앞둔 어느 30대 커플의 고민

"오빠, 우리 시골 갈래?"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운전 중인 그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시골로 놀러가자는 얘기야? 그가 묻는다. 아무래도 내가 앞뒷말을 너무 잘라먹었나보다.


"아니이, 우리 결혼하면 시골 가서 살자고."

"?!!!!!"


진심으로 놀란 그가 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운다.

우리는 연애 3년차, 결혼을 약속한 30대 중반 커플이다.




결혼을 결심하기 한참 전부터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결혼을 하든 동거를 하든 둘이 같이 살 집은 하나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도시, 그것도 직장이 가까운 서울/경기 지역에서 내 집을 마련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서울이 고향이라 해도 얄짤없다) 허락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찌저찌 수도권에 집을 구한다 치자. 직장은 또 언제까지 다닐 수 있으려나.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최소 30년은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진다. 설상가상으로, 버는 돈에 비해 물가 오르는 속도도 심상치 않다. 운이 좋아(?) 평생 안 짤리고 회사를 다닌다 해도 평범한 직장인 월급만 가지고는 현상 유지조차 버거운 빡센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내  마련이랍시고 수억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집값이 오르기만 기다리며 마음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수십년 노동의 대가가 고작 수십일, 수개월의 부동산 투자를 못 따라간다지만, 문제는 내 집값만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 집도, 네 집도, 우리 모두의 집이 다 같이 오르는데 복비에, 세금에, 이사비용까지 내고 나면 수중에 돈이 남아날 리가 있나. 그러니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어디 그뿐이랴, 윗집 옆집 이웃이라도 잘못 만나면 빚을 내서라도 이사를 가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아파트의 단점만 줄줄 읊어대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 속의 여우처럼, 아파트는 꿈도 못 꿀 것 같아 그러는 건 아니지?"


정곡을 찔린 기분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대답했다.


"같은 돈으로 수도권에 아파트 살래, 시골 전원주택 살래? 물으면 나는 후자를 고를래."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말이 있다. 대학 새내기 때 지하철에서 우연히 보게 된 홍보 문구인데,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걸 보면 꽤나 인상깊었나 보다. 말이야 좋은 말이지만 저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는 요즘 소위 말하는 '벼락거지'가 되기 십상이다. (아마 저 문구를 처음 쓴 카피라이터조차도 '집은 사는(live) 곳이자 사는(buy)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는 것이든 사는 곳이든,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요즘 사람들에게 '집'이란 단순히 먹고 자고만 하는 공간이 아니니까. 13평짜리 투룸에 네 식구가 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집이 좀 넒어서 각자 방 하나씩은 있으면 좋겠고, 여유가 된다면 홈짐이나 홈카페도 꾸미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앞으로 또 오지 말란 법도 없으니, 정원이나 테라스 같은 야외 공간에 대한 욕구도 자연스레 높아질 수밖에. 그러니까 꼭 부동산 투자의 측면이 아니라도, 사는(live) 곳을 잘 사는(buy)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다시 질문.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집을 사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도시에서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기엔 나는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애초에 시끌벅적한 술자리나 번잡한 길거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가 편하다. 모니터 불빛에 혹사당한 눈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갔고 온통 회색빛인 빌딩들을 보고 있자면 곧 나까지 회색으로 칠해질 것만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골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줄 아냐고. 로망은 로망일 뿐이라고. 상관없다. 애초에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니까. 적어도 회색보단 초록색을, 도시의 불빛보다 밤하늘의 별빛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간 시들어야 한다면, 딱딱한 아스팔트가 아닌 보드라운 흙 위에서 시들리라 마음먹었다. 그래, 나는 땅을 밟고 살고 싶다.


결심을 굳혔다면 이제부터는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해 봐야 한다. 귀촌은 결국 먹거리와의 싸움이다. 생계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면 실패한다는 뜻이다. 직주 근접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아예 직주 일치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몇 억이라는 큰 돈을 집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서, 집이라는 공간이 수익을 창출하는 일터로서의 역할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떠올린 아이템이 '민박'이었다. 펜션처럼 규모가 크지 않으니 부부끼리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고, 무엇보다 정년이 없다. 물론 잘 되리란 보장도 없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사업(민박)이 망하더라도 '내 땅과 내 집'은 남을 테니, 보금자리만 있다면 새는 언제든 다시 날 수 있을 것이다.


인생 제 2막, 이제부터 시작!




관련영상 | Youtube [영월부부] 내집마련이 시급한 30대 신혼부부가 귀촌을 결심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