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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Mar 22. 2022

2. 데이트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시골땅 임장에 임하는 마음가짐

첫 임장에 인연이 될 땅을 만난다는 건 첫사랑과 결혼까지 골인할 확률보다 낮다. 결론만 말하자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삼회리 땅과는 자연스레 인연이 마무리 지어졌다. 공동소유인 세 명 중 가장 적은 지분을 가진 한 명과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아서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다행인 일이지만 당시에는 연인과 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한동안 속이 쓰렸더란다. (반 년이 지나서야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지막 소유자와 연락이 닿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마음 정리가 끝난 뒤였다.)




그렇게 첫사랑을 떠나보낸 뒤에도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동안 가평, 그것도 청평 지역으로만 임장을 다녔다. 번번이 허탕을 치고, 되도 않는 땅들을 몇 군데 보고 나니 그제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선 더 이상 우리의 예산과 조건에 맞는 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수배(?) 범위를 강원도로 넓히기로 한다. 어딘가에 있을 새로운 인연을 찾아 우리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스팔트 위를 달렸다. 땅 쇼핑(?)은 여느 쇼핑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사진이나 영상만 보고서는 구매의사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원피스야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만 켜면 5분에 수십 수백 벌도 볼 수 있지만, 땅은 하루라는 시간을 몽땅 투자해도 많아야 세 군데 정도를 겨우 둘러볼 수 있다. 가평, 양평 정도까지는 가볍게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다녔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이다. 물론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이보다 더 효율적이고 흥미로운 데이트는 없기도 지만 말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두둑이 충전한 하이패스 카드까지 장착하면 먼길을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아참, 배터리 충전 기능이 있는 휴대폰 거치대는 필수다. 예쁜 옷보다는 장시간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을 늘어진 추리닝이 좋고, 가시나무 밭이나 풀이 허리까지 올라오는 험한 땅을 만날지도 모르니 반바지보다는 긴바지가 낫다. 경험상 1순위로 추천하고 싶은 스타일은 발목에 고무줄이 들어간 몸빼바지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동선은 반드시 출발 전날 미리 짜 두어야 한다. 땅은 아파트처럼 지근거리에 있지 않다. 오늘 둘러보려는 땅이 세 곳이라고 했을 때 사전 계획 없이 돌아다니게 되면 오늘 내로 세 곳을 다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 땅 하나를 못 봤다고 해서, 그거 하나 보려고 다음 주에 같은 지역을 다시 오기엔 시간과 기름이 아깝다) 게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중간에 맛집이나 카페도 들러야 하니 생각보다 일정이 빠듯하다. 가장 편했던 방법은 종이지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A4 용지에 적당한 비율로 오늘 갈 지역의 지도를 한 장 뽑아 임장 후보지와 식당, 카페 등의 위치를 표시해 둔다. 그러위치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전체적인 동선을 파악하기가 쉽다. ‘제보다 젯밥’이라고, 어떤 날은 그 지역에 유명한 맛집이나 카페를 가고 싶어 근처에 적당한 토지 매물이 있는지를 알아보기도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최대한 즐기기로 한 것.




고속도로는 지루하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존재할 뿐인 회색의 아스팔트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하지만 늘 앞을 향해 있는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회색길 양쪽으로는 초록의 산과 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빌딩이 가리지 않는 하늘은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눈부시게 파랗다. 새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짝궁의 옆모습은 또 어떤가. 오늘따라 유독 동글동글한 콧망울이 눈에 띈다. 훌륭한 조수는 피곤함이 내려앉은 운전자의 눈꺼풀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이번 휴게소에서 좀 쉬었다 가시죠.”


나의 제안에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차선을 바꾼다. 몇 킬로미터 남지 않은 휴게소에 잠시 들러 졸음을 쫓고 심신을 재정비한 뒤, 우리는 다시 회색빛 도로 위를 달릴 것이다. 오늘도, 다음 주말도, 또 그 다음 주말도. 둘만의 보금자리를 찾을 때까지. 그 과정이 지겹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지겹기만 한 것도 아니다. 당장의 결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랄까. 이따금 찾아오는 찰나의 즐거움 덕분에, 이 길고 지루한 인생을 살아가는 일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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