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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채원 Mar 28. 2022

8. 묘(墓)가 있는 맹지를 샀다

묘 있는 맹지를 매수한 이유

혹시 1편 글인 <인생 첫 시골땅 임장기>에서 우리가 세웠던 기준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그 조건들과 실제 매수한 영월 토지가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체크해 보았다.


(X) 잠실에서 1시간 내외의 거리 (가평 or 양평 or 춘천) → 잠실 기준으로 1시간 45분 거리의 영월

(X) 면적은 200-300평 → 어쩌다보니 1580평......

(X) 금액은 1억-1억 5천 → 매매가 1억 8천

(X) 토목공사가 완료된 곳 → 지목 '전'으로 토목 안 되어있음

(O) 단지형 전원주택 부지 No

(△) 뒷편이 산 또는 숲으로 되어 있으며 개발의 여지가 없는 곳 (어느 정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위치) → 완전 고립된 위치는 아니지만 지대가 높아 프라이버시가 보장됨

(O) 아늑한 분위기

(O) 디귿(ㄷ)자 형태의 집을 앉힐 수 있는 모양의 땅

(O) 집의 방향은 남향, 남서향, 남동향 정도까지

(△) 공동묘지, 하수처리장, 쓰레기매립장, 축사, 사격장, 공장, 고압 전신주 등의 기피시설에서 떨어진 곳 → 기피시설은 없지만 묘가 있는 땅, 도로와 토지 사이 소하천이 흐르는 사실상 '맹지'임


그렇다. 우리는 맹지를 샀다.




'맹지(地)'란 지적도상에서 도로와 조금이라도 접하지 않은 토지를 말한다. 지적도상으로는 도로에서 직접 진입할 수 없으나 실제로는 사람은 다닐 수 있고 차량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맹지는 건축 허가가 안 나기 때문에 통은 절대 사서는 안 되는 땅으로 취급된다. 그러니까, 건축 허가가 필요없는 농막 정도 놓고 살 생각이면 모르겠지만, 제대로 집을 지으려는 사람이 맹지를 샀다는 건 딱 두 가지 경우다. 다 계획이 있거나, 사기를 당했거나.


다행히 우리는 전자에 해당됐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맹지 매수를 고려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아늑한 분위기를 좇아가다보니, 대부분 맹지가 많았다. 최소한 한쪽 면에는 물줄기가 있고 어느 정도 고립된 땅, 그런 토지에 제대로 된 도로가 바로 붙어있을 리 만무했다. 영월 토지도 마찬가지였다. 땅 앞쪽으로 3m 폭의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가 있지만, 도로와 토지 사이에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차로는 진입이 불가했다. (개천 수량이 적고, 돌이 많아 사람이 통행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토지와 도로 사이에 다리를 놓으면 된다.


근처 토목설계사무소 몇 군데에 연락해 다리를 만드는 비용이 얼마나 들지 예상 견적을 물었다. 대답은 전부 달랐다. 실제로 군청에 서류 접수를 해 보지 않고서야 어림짐작으로만 확인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토목설계사무소들의 의견을 종합해 다리 비용으로만 1천만원의 예산을 (제발 넘지 않길 바라며) 잡았다.


맹지를 맹지로 알고 사는 것은 사실 별 문제 될 게 없다. 맹지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토지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맹지를 사서 주택 부지로 개발해 팔기도 한다. 다만 맹지 탈출을 계획하고 매수를 결심했더라도 한 가지는 더 고려해 보아야 한다. '돈'만으로 탈출이 가능한 맹지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인간관계가 얽혀있는' 맹지는 돈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맹지를 탈출하기 위해 바로 옆 토지의 일부를 매수해서 도로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치자. 옆 토지주가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답이 없다. 제값을 치른다는데 안 팔 이유가 뭐냐고? 이유야 많다. 크게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저쪽이 원하는대로 땅을 팔았을 때 땅 모양이 이상해지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난 아쉬울 게 없으니 더 비싼 가격에 팔고 싶은 경우, 마지막으로는 그냥 싫은 경우다. 돈을 물 쓰듯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돈으로 해결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땅 시세는 는 사람 마음인지라 왜 이렇게 비싸게 부르냐고 뭐라 해봤자 입만 아프고, 이도저도 싫다는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만약 당신이 지금 세 번째 유형(그냥 싫은 사람)을 만나 곤경에 처해 있다면... 안타깝지만 그 땅은 최대한 빨리 손절할 것을 추천한다. 그조차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다행히(?) 영월 땅 경우 약간의(?) 돈으로 맹지 탈출이 가능했던지라, 우리는 다리를 놓는 비용까지 감안하여 땅을 매수하기로 했다. 부동산을 통해 매도인과의 계약 날짜를 잡고 난 후에도, 다리 비용과 지하수 개발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많은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정확한 답변은 듣지 못하더라도 아예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매수를 결심한 토지에는 조상님을 모신 것으로 보이는 묘 2기도 있었다. 보통 '묘'라고 하면 괜히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전혀 무섭거나 찜찜하지 않았다. 땅을 한 번만 보고 계약할 수는 없으니 틈나는대로 서너 번을 더 갔는데, 늘 햇살이 따스히 비추는 것이 왠지 편안한 기분이 들어 한참을 머물다 오곤 했다. 보통 조상님 묘는 양지바른 곳에 신경써서 자리를 잡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묘가 있는 땅을 좋은 땅이라며 찾기도 한단다. 꼭 그런 이유보다, 이곳과 인연이 되려고 그런가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우리는 갈 때마다 산소에 인사를 올렸다.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왠지 그러고 싶었다) 봉분에 잡풀이 하나도 없는 것이 정성스레 가꾼 태가 났다. 현 토지주의 조부모님 묘라고 했다. 매도인(현 토지주)은 땅이 팔리면 묘는 이장(화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계약서에는 특약사항으로 '잔금 전까지 묘 2기를 이장'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운이 좋게도 점잖은 매도인을 만나 별 문제 없이 물 흐르듯 계약이 진행되었다. 계약금으로 2천만원을 입금하고, 드디어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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