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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Dec 22. 2022

나만의 징크스

수태기가 찾아오다

       

나만 가지고 있는 징크스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말을 확신에 차서 뱉고 나면 머지않아 그 말과 반대되는 일이 일어난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경망스러움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 같다.    

  

수영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난 직후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글은 가히 수영예찬론에 가까웠다. 세상일은 다면적이어서 인간의 좁은 시야로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으면 안 되는 건데, 잠시 잊었나 보다.

그 글을 쓸 당시 나는 수영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절대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종목의 운동을 하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경이와 뿌듯함이 그 사랑을 부추겼을 것이다. 2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대상에 몰두하다니. 하기야 나는 이거다 싶으면 오랫동안 의리를 지키는 편이긴 하다.


운전도 초보를 막 벗어나서 자신감이 붙을 때가 위험한 법이다. 접촉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기가 그 시기이다. 뭘 좀 안다는 생각을 할 때쯤, 과연 그럴까, 하고 태클을 걸어온다. 한 방 맞는 느낌이다. 서두가 길었다. 그렇다. 나는 요즘 수영 슬럼프에 빠져 있다. 이른바 수태기라는 그것.   

  



브런치에 그 글을 올리고 난 직후 몸살이 찾아왔을 때 아, 내가 또 입방정을 떨었구나 싶었다. 늙어서인지 감기는 나을 듯 낫지 않고 몸에서 쉬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9월 초에 시작된 감기는 무려 석 달 가까이 지속되었다.      

거기에는 환절기라는 시기 탓도 있고 몸의 면역력이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수영 강사가 교체되면서 강습 형태가 급격하게 바뀐 원인도 있다. (수영 강사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올릴 생각이다.)

전에 쓴 글에서 밝힌 대로 나는 경쟁에 취약할 뿐 아니라 저질 체력의 소유자라서, 마치 이번이 끝이다, 하듯이 체력을 쏟아붓는 운동에는 금방 흥미를 잃고 만다.

물론 운동 강도를 높여야 체력이 길러지고 운동 실력도 향상된다는 말도 맞다. 그렇다 해도 나는 차분하게 자세를 교정해 주는 강사가 편한 사람이고, 몸에 힘 빼고 마음 편하게 운동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 나이에 취미로 즐겁게 운동하려고 강습에 나가는 거지, 시합 나가려고 훈련하는 건 아니잖아, 싶은 것이다.

이래저래 강습 시간에 출석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되면 수영은 나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져 갈 것이다. 앞의 글에서 말했듯이 꾸준히 수영장에 입장한 끝에, 안 되던 동작이 될 때의 환희, 자유 수영 할 때 스스로 깨쳐질 때의 기쁨이 수영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인데, 힘들기만 한 수영은 아무래도 나에게 맞지 않다. 나처럼 하면 체력도 길러지지 않고 발전이 없다고 해도 나는 모르겠다.      


강습을 받고 온 다음 날은 온몸이 쑤셨다. 그래서 예전처럼 매일 출석하는 일이 버거웠다. 찬물에 들어가 몸에 잔뜩 힘을 주고 내가 가진 체력 이상으로 무리한 결과, 마침 환절기를 맞아 찾아온 감기몸살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수영 강습에 나가는 일이 이전처럼 즐겁지 않게 되었다.

물속 운동이 힘들다는 생각은 지상 운동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어느 날은 요가가 하고 싶어서 오전 요가 수업을 들었다.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몸 밖으로 배출하고 내 몸을 돌아보며 몸의 각 부분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동작들이 너무 좋았다.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다 보니, 역시 물에서 하는 운동은 나와 맞지 않아, 특히 기온이 내려가는 계절에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것 자체가 몸에 좋을 리 없어, 이렇게 자꾸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 놓고 또 금방 정반대의 상황을 맞이하는 징크스가 찾아올 수도 있으려나. 그건 또 그대로 좋은 일이니까 괜찮을 것 같다.     

 

그 후로도 나와 맞지 않는 강사 때문인지 환절기 감기가 유행을 해서인지 수영장만 갔다 오면 감기 기운이 몸을 침범해 왔다. 목과 코가 불편해서 이비인후과에 가니 후두염과 비염이란다. 그렇게 두 달 넘게 감기를 달고 살았다. 수영을 더 열심히 해서 체력을 키우고 그래서 면역력을 높였다면 아프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일단 수영에 거리를 두기로 했다.     


앞의 글에서 수영을 찬양하면서 입방정을 떨었는데, 운동이, 아니 세상일이 쉬운 게 없는 것 같다. 수영은 어려운 운동이라는 걸 새삼 생각한다. 네 가지 영법을 겨우 익힌 후에도 영법 중 뭐 한 가지 자신 있는 게 없다. 산 넘어 산이다. 배울수록 어렵다. 겸손을 가르치려고 수태기가 왔던가.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사실은 되든 안 되든 꾸준히 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다. 그래서 수포자가 되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른 운동과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몸을 보한 다음에 다시 수영 너를 찾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202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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