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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 Oct 22. 2015

1 노을 바라보기

나만의 리스트

아무것도 쓰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

쓰지 못하던 힘들은 

어딘가 웅크리고 기다리고 있었는지

오랫만에 문장을 쓰고 읽어보니

잔뜩 힘이 들어가있고

형편없었다. 


지웠다 다시 쓰다를 반복하다보니

결국 어떻게 시작해야할조차 모르겠다.

당분간은 어깨에 힘을 빼는 연습을. 

잠시 웅크리는 시간을 가진 후부터

조금씩 하고 있는 건 

나만의 리스트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일이다. 


소름이 돋았거나

존재를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던가

매우 소중했다고 느껴지던 순간들,

나 자신이 어떤때 그러했던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런 순간을 찾을 때마다

하나씩 리스트에 보탤 예정이다.  


그 리스트가 채워지다보면 나라는 존재가 어떤 인간인지

조금은 잘 들여다보이지 않을까,

그런 기대. 


리스트 1.

매일 노을 바라보기.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걸 바라보기. 

매일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걸 지켜보려 노력한다.

그 시간은 의외로 짧아

아차 하는 순간에 사라져버려 못 보기도 하고,

주문을 받느라 못 보기도 하고,

날이 흐려 못 보기도 한다. 


하루 중 짧은 그 시간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운좋게 그 시간을 온전히 가진 날이면

이런 짧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하는 것도 어려워

사치스런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걸 사치스럽게 여겨서,

행이다. 


많은 날들을 노을에 빚을 지고 산 기분이다.

직장을 다닐 때 회사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노을이 지는 한강다리를 건너는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후줄근한 양복 차림에 노곤한 하루 피곤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그 순간 잠깐 눈빛에 생기가 돌았고,

개인으로서의 '나'가 잠깐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나를 또 살게했다, 라는 말은 

적어도 내게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어린왕자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는 종종 그 소년을 생각한다.

몹시 슬플 때 석양을 마흔네번이나 본 그 소년을.

마흔네번 석양이 필요한 정도로 큰 슬픔을 가졌던 그 소년을. 


나는 다행히,

아직 한번이면 충분한 

가벼운 슬픈 삶이다. 

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 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래서 언제나 원할 때면 너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었지.
"어느 날 나는 해가 지는 걸 마흔 세 번이나 보았어!"
그리고는 잠시 후 너는 다시 말했지.
"몹시 슬플 때에는 해지는 모습이 보고 싶어......"
"그럼 마흔 세 번이나 해 지는 걸 구경하던 날, 너는 그렇게도 슬펐었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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