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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섬 Nov 25. 2015

억 소리에 익숙해지는 나날

반지하 탈출기

1억, 2억, 3억,

처음에는 악 소리가 났으나,

이내 익숙해져 어딜 가든 억억 잘도 말하곤 했다.


자꾸 말하다보니 1억 정도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였는데,

돈을 마련할 길을 궁리하기 시작하니 

그건 그야말로 엄청난 돈!

아아,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리지만 그건 뒷날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억 소리에 익숙해지는 나날,

나는 지금 집을 구하러 다니는 중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서울시 강북구 미아동.

10년째 살고 있지만 이곳은 아직도 차가운 도시.

그 넓은 서울에서도 왜 이곳에 이리 오래 머물렀을까.

첫번째 직장이 혜화였던지라 근처 방을 구하러 다니다보니

제일 저렴했던 곳이 이곳 미아사거리에 있었다.


피터팬 직거래

미아사거리 역 도보 10분

(여러군데를 다녀본 결과 도보 측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정말 역 주변 - 도보 3분, 

나올때가 지났는데.. 불안감이 스며드는 거리 - 도보 5분,

아아, 나는 지금 운동 중입니다 - 도보 10분)  

방 1칸, 화장실, 주방, 전세 1500만원, 

사용하던 가구와 침대, 냉장고도 모두 드립니다. 


오호라, 통재라, 

그렇게 우연히 머물렀다가 그만

익숙해져버려 눌러앉아버렸다.

이 동네를 10년이나 살만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어찌보면 굴복해버리고 만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렴한 전세집에, 

가난한 형편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왔을 때

옆집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계셨다.

어느날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신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셨다.

오랫동안 방은 비어있었다.


빈 옆집과 벽을 맞댄 방에서 잠을 자며 

그런 예감을 하곤 했다.

나도 결국 늙으면 이 반지하에서 

어느날 갑자기, 

혼자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런 밤은, 어쩐지 무서워져 

옆에서 자는 고양이를 꼭 껴안곤 했다.

물론 고양이는 금방 도망가버렸지만.


옆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새로 들어오셨다.

일주일에 세번씩 할머니는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오신다.

옆집에 다른 누군가 살기 시작했음에도

한번 든 예감은 깊숙한 곳에 꽈리를 틀고 있었다. 

혼자 죽는 건 두렵지 않다.

그보다 정말 불안했던 건 이런 것이었다. 

이 반지하에서 햇볕 한번 보지 못한 채 평생 살다 죽는거 아닐까.


그럴만도, 

부산에서 상경해 자취를 시작한 23살부터 36살인 지금까지 

줄곧 반지하 단칸방에서만 살아왔다. 

아아, 13년이라니.

네 번을 옮겼지만 늘,

반지하에서 머물렀다.


햇볕을 오랫동안 받지 못한 나는

하얗고 투명한 피부톤을 얻었고,

습기가 가시지 않는 방에서

만성비염을 얻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저렴한 방에 

나름대로 잘 살아오며 만족해왔다. 

내 수준에 방 한칸도 있고, 빚도 없으면 좋은거지.

그렇게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어쩐지 억울하기만 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볕에 잠이 깨고,

햇볕을 받으며 잘 자라나는 식물도 키워보고,

뽀송뽀송 햇볕에 말린 빨래 냄새도 맡아보는 것,

쭈그려 앉아 씻는 화장실이 아닌

세면대 달린 화장실에서 서서 세수도 해보고,

쓸만한 주방이 있어서 집에서 요리도 해보는 것,

그런 건 내게는 사치스러운 일일까.


어차피 반지하에서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은 햇볕 드는 집의 기억을 품어보자는 마음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쉬는 날마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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