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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 Nov 07. 2017

관계자 외 출입금지

수술실로 초대합니다


"넌 간호사 체질이 아니야."

"병원에서 창의적으로 일하지 마!"

"진짜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어디서 뭐하다가 온 애니?"


억지로 눈을 뜨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억지로 출근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온종일 입술 밖으로 질문을 꺼내지 못하고 꿀꺽 삼켰습니다. 퇴근하면 쓰러져 잠들었다가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갑니다. 아메리카노가 줄어드는 컵 안에 물음표를 하나씩 게워내면서, 속절없이 흘러간 하루를 천천히 되감아 봅니다. 수술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모르는 말을 검색하고, 해부학 그림을 요모조모 뜯어냅니다. 노하우를 알려주는 선배 한 명만 있으면 좋을 텐데. 조금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벌써 어두워졌고 곧 내일이 다가옵니다. 잠들기 전에 재정비를 끝내야 합니다.


'나중에 후배가 생기면 꼭 쉽게 설명해줘야지.’

‘한번 들으면 귀를 관통해서 뇌에 꽂히게 알려줘야지.’

‘절대 억울하게 혼내지 말아야지.’


있지도 않은 후배를 상상하며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후배가 생길 때까지 내가 병원에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 중.








간신히 끌어올린 학점, 방학 때 급조한 토익 점수, 담당 교수님의 자필 추천서, 대학 생활고도로 압축한 (나름 비장의 무기였던) 자소서로, 저는 서울의 대형 병원에 입사했습니다. 그 간호사 국가고시 수석이 선택한 병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습기간을 다 합쳐서 고작 달도 채우지 못하고 광속으로 사직했습니다. 오마이갓! 저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일할 수 있는 인간도 아니었지요. 병원은... 정글이구나.


고민 끝에 종합병원 수술실로 이직해 5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수술실 간호사로 지내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공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귀한 인연이 닿아 책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원고 작업에 집중하느라 본의 아니게 잠적해버리고 말았어요...


서점에 가보면 직장에서의 처세술이나 실질적인 업무 노하우가 녹아있는 에세이가 참 많습니다. 일반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요. 회사생활의 불합리에 대한 비아냥과 빈정거림, 부당함에 대한 희롱과 조소도 꽤나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의료계로 넘어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간호사는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습니다.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참고 희생해야 한다고, 보람으로 연명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강요받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이 간호사를 존경한다고 하면, "야이씨 간호사 존경하지 마!" 장난스레 외치곤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고귀한 나이팅게일'이 간호사의 권리를 옥죄고, 허심탄회한 공감대 형성을 막는 건 아닐까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솔직한 이야기입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수술실에서 몇 년 살아본 부랑자의 여행기.

기대해주세요!





엄지 umji.let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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