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다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에
조용히 스며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 하면
손끝이 멈춰 버리는 날이 더 많다.
예전의 나는
그런 나를 자주 오해했다.
“나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인가?”
“의지가 부족한 걸까?”
쓰지 못한 하루가 이어지면
내 능력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스스로 다그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쓰고 싶은 날보다
쓰지 못하는 날이 많은 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의 자리가 흔들리면
문장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글은 마음 위에 쓰이는 것이지
압박 위에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 빈날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쓰지 못한 날은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마음이 조금 더 쉬어야 하는 날이었음을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그 인정이 생기자
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문장은
책상이 정리되어 있을 때보다
마음이 정리되어 있을 때
더 선명하게 나온다.
마음을 돌보지 않은 채
억지로 쓰려 하면
문장은 힘을 잃고,
내 안의 말들도
마구 엉켜버린다.
그러니 쓰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면
그건 그날의 나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휴식이 필요했다는 신호다.
어떤 날은
감정이 너무 복잡해
무엇부터 써야 할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어떤 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마음 한가운데 걸려 있을 때도 있다.
그런 날의 나는
단 한 줄만 적어 본다.
“오늘은 그냥 마음이 무거웠다.”
그 한 줄만으로도
문장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쓰고 싶은 날보다
쓰지 못하는 날이 많은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모든 날을 완벽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한 날에도
나를 탓하지 않는 마음이다.
글쓰기는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시간을 차근차근 쌓아 갈 때
쓰지 못했던 날들마저
나를 이해하는 조용한 흔적이 된다.
오늘도 글을 쓰지 못했다면
그저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괜찮아. 내일은 조금 더 가벼울 거야.”
그 다정한 한마디만으로도
문장은 다시
나에게 조금씩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