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동안
수많은 감정을 스쳐 지나간다.
기쁨, 서운함, 가벼운 불안,
이유 모를 답답함 같은 것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그냥 흘려보내 버린다.
마음이 알아차리기에는
하루가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스쳐 지나간 감정들이
어쩐지 나를 오래 붙잡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는 몰랐던 감정의 결이
며칠 뒤에야 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그 감정을 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의 구석에서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놓쳤던 감정에 다시 닿게 된 건
기록을 시작하면서였다.
문장을 적다 보면
그날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왜 유독 말수가 적었는지,
왜 평소보다 쉽게 지쳤는지,
왜 작은 말에도 마음이 흔들렸는지—
기록 속에서 다시 만나는 감정들은
조용하지만 정확했다.
감정의 결은
크게 흔들리는 순간보다
아주 작은 순간에 더 잘 담겨 있다.
누군가의 말투,
문득 들린 소리,
눈을 마주친 짧은 순간.
그때는 알아채지 못한 마음이
기록된 문장 앞에서
“사실은 그때 조금 아팠어.”
하고 뒤늦게 속삭여 준다.
나는 예전엔
감정이 지나가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감정은 지나가도
그 결은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그 결을 알아채 주어야
비로소 감정은 제 자리를 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감정 위에 겹겹이 쌓여
나를 더 쉽게 흔들곤 했다.
감정의 결을 다시 만난다는 건
과거를 되짚으며 후회하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해가 생기면
마음은 놀라울 만큼 가벼워진다.
그 이해가
내일을 더 부드럽게 만든다.
나는 요즘
하루가 끝나기 전
잠시 앉아 오늘의 마음을 가볍게 적는다.
그게 단 한 줄이라도
놓쳤던 감정의 결을
붙잡아 주는 시간이다.
쓰는 동안
그날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마음들이
조용히 손을 내민다.
“사실 오늘 조금 외로웠어.”
“기쁘긴 했지만, 어딘가 불안했어.”
“괜찮아 보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어.”
이런 문장들을 적고 나면
나는 그날의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진다.
놓쳤던 감정을 다시 만나는 일은
나를 탓하는 일이 아니다.
그저 마음에 남아 있던 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일에 가깝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가
다음 감정의 파도 앞에서
나를 덜 흔들리게 한다.
감정의 결은
작지만 정직하다.
그 결을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다면
오늘보다 내일의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