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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들

by 김현아

생각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어떤 날은 머릿속이 가볍게 비워져

별 고민 없이 하루를 넘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작은 말 한마디에

생각이 깊게 잠겨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이 깊어지는 순간이 버거워서

생각을 밀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기록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은

나를 힘들게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이해로 데려가는 시간이었다.

그 순간을 밀어내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면

내 마음과 생각이

왜 그 자리에서 멈추었는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은

대부분 아주 작은 계기에서 온다.

말투의 미세한 떨림,

누군가의 표정,

하루에 있었던 사소한 사건.

그 작은 흔들림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파문을 만들고

그 파문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어떤 욕심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지

조금씩 드러났다.


나는 예전에는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을

그저 ‘복잡한 시간’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생각이 깊어진다는 건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신호다.

놓쳤던 감정,

무심히 넘겼던 경험,

그날의 작은 상처까지—

모두 “지금 들여다봐도 괜찮다”는

마음의 초대였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는 억지로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기보다

그저 잠시 멈춰

그 생각의 온도와 방향을 느껴 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나의 결론을 얻지 않아도

마음이 한결 안정된다.

과정을 받아들이면

결론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기록은

이 깊어지는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글로 옮기지 않았다면

흩어졌을 감정들이

문장 속에서 천천히 정리되고

나도 몰랐던 내면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은 더 깊어지고

깊어진 생각은

다시 내 마음을 더 넓게 만든다.


생각이 깊어진다는 건

나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나를 확장시키는 일이다.

내 마음의 방식,

내 선택의 이유,

내가 끝내 놓지 못한 것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

그 시간은 때로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고 말하지만

사실 마음을 이해하는 데

생각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깊어진 생각은

흔들림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그 힘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나를 단단한 곳으로 데려간다.


생각이 깊어지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사람은 조금씩 성장한다.

내면의 길이 보이고,

감정의 결이 정리되고,

오늘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오늘도

당신의 마음이 잠시 깊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순간 속에

당신이 몰랐던 진짜 마음이

조용히 깃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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