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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 Aug 03. 2020

편지17



지난 2월의 편지


며칠 동안 이유모를 울음을 여러 번 터뜨리더니 기어이 윗니 두 개가 잇몸에 하얗게 비쳐 보인다. 이미 올라온 아랫니 두 개까지 합쳐 귀여운 토끼 같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아가, 그것 말고는 다른데 불편한 곳은 없니?


너를 작은 공간에 가두다시피 하고, 집안일하느라 우는 너에게 한걸음에 달려가지 못해서 나는 늘 미안해. 잡고 일어서기 시작한 너는 오늘도 나를 찾으라 울타리에 매달려 한동안 목놓아 울었다. 저녁에도 너는 평소보다 조금 힘들어하며 잠에 들었어. 하지만 조금 지나니 너무 소리 없이 평온하게 자고 있구나. 오르락내리락하는 너의 가슴팍을 지켜보며 나도 자리에 든다.


신생아 시절, 밤에도 두세 시간마다 먹고 자기를 반복하는 너와 씨름하느라 비몽사몽인 정신으로, 나는 가끔 너무 고요하게 자는 네 모습에 덜컥 겁을 먹곤 했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네가 혹시 숨 쉬는 걸 잊은 건 아닐까?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내가 못 알아차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신생아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무식한 어미로 내일 아침 뉴스를 장식하는 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금쪽같은 수면시간을 낭비하곤 했었지. 아마도 모성애보다는 책임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래서 더 힘들기만 했었어.


모성애라는 것. 그건 너를 낳음과 동시에 찾아오지는 않았던 듯하다. 수유하느라, 기저귀를 가느라, 토한 옷을 갈아입이느라 너와 씨름하던 시간들이 쌓이고, 그 위에 네가 나를 향해 보여준 웃음들이 쌓이더니 나도 모르는 새 문득 너를 향한 내 사랑이 깊어졌음을 알았다. 네가 울어도 사랑스럽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 모습에 더 끌어안게 되고 내 잠을 줄여가며 잠든 네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하다 느끼게 되었을 때. 아마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순간들이 많이 쌓였다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뱃속에 품고 있는 게 40주인데 너는 아직 태어나 40주가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의 너는 윗니도 아랫니도 네 개씩이나 있는데 글을 쓸 당시에는 아랫니 두 개뿐이었나 보다. 여전히 곁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단잠에 빠져있는 너를 보니 그 사이 건강하게 지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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