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커리어의 시작
나는 첫 회사와 지금 회사 입사에
모두 헤드헌터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헤드헌터 연락처를 묻는 주변인들이 많다. 물론 알고 있는 연락처는 모두 공유하지만 역시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고 헤드헌터들도 전문분야가 따로 있기 때문에 내가 연결해준 그들이 백 프로 도움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
대부분 첫 회사는 공채 지원 등을 통해 입사하지만 내 경우는 좀 특이하다. 내세울 경력이 없는 신입의 경우 헤드헌터를 통한 입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8년 전 나는 검색을 통해 Q가 내 분야를 전문적으로 하는 당시 국내 유일의 헤드헌터라는 잡지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으로 찾아낸 메일 주소로 연락했고 사무실에 찾아가 실제로 만나보기에 이른다. 그 자리에서 Q는 어떤 이름 하나를 대며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스물 다섯 즈음, 멋모르고 잠시 다닌 작은 회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회사 선배 중 하나였다. 알고 보니 둘은 학교 선후배였단다. 내 이력서의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Q의 관심을 끌게 된 나는 당시 그녀가 진행 중이던 한 조직의 신설팀 신입 자리에 추천받아 첫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기업에서 한 팀을 아예 새로 꾸리는 일이 잘 없기 때문에 정말 희귀한 케이스였다.
어차피 취업이란
아무리 희귀해도 나에게 해당하는
단 한자리만 있으면 이루어지는
요행 같은 것인가 보다
입사해 보니 소속된 팀 전체가 Q를 통해 이직한 사람들로 꾸려져 있었다. 그러나 신설팀답게 안정적이지 못했고, 반년만에 선배들의 반이 퇴사했다. 이미 경력으로 들어왔던 그들은 그 경력으로 다시 옮겨갈 수 있었지만, 신입으로 들어간 나는 새로 공채 준비를 하지 않는 이상 그곳에서 버텨야 했다. 선배들은 떠나며, 경력으로 이직할 수 있을 때까지 3년만 기다려보라 했지만, 한 달이 힘겹던 내게 3년은 무리였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 같았던 3년이 채워졌을 때는, 그간 참아왔던 세월이 아까워 섣부르게 회사를 선택하지 못하고 까탈을 부렸었다. 결과적으로 만 4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 Q가 아닌 다른 헤드헌터를 통해서였다.
슬픈 이야기지만, 나는 입사와 동시에 이직을 마음에 담았다. 수시 지원도 계속해서 주시했고 Q와도 꾸준히 연락했으며, 새로운 헤드헌터들과도 수없이 컨택했다. 보통 이직을 마음먹고 헤드헌터들에게 컨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딱 맞는 자리를 바로 연결받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들에게 이력서를 보내는 순간부터 나는 그 사람의 넓은 인맥 풀(POOL)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 정도가 될 뿐이다. TO가 나고 연락을 받기까지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당장 이직 계획이 없더라도
헤드헌터들과의 교류는
꾸준히 있어야 하는 거다
내가 헤드헌터와의 인맥 유지를 추천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그들에게서 생생한 업계 소식을 들을 수 있다. 어떤 회사가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지, 그에 따른 어떤 조직을 신설 또는 보강할 계획인지 말이다. 지금 회사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 아니라면,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만큼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정보다. 둘째, 시간을 가지고 여러 포지션에 대해 들어두어야 정말 질 좋은 TO가 났을 때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헤드헌터들은 아무래도 오픈된 포지션의 가장 밝은 비전을 얘기해 주다 보니 어두운 면을 추리해내는 건 지원자의 몫이다. 모든 면에서 좋은 포지션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어두운 면을 알고 지원하는 것과 모르고 지원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다. 내 삶이고 내 커리어다 보니 업계에서 보이는 내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내 이상과 기업이 인정하는 내 가치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고 여기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은 헤드헌터를 통해서 해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내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 몰라도 여러 명의 헤드헌터에게 같은 평가를 받게 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부족한 부분을 보강할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Q와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당시 선배들의 다수가 불만을 가지고 퇴사하며 온갖 원망을 했기 때문에 그녀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Q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몇 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다. 사회 초년병이었던 나에게 '몇 년 후' 미래라는 개념은 없었기에 그 말은 곧 다시 안볼 사이를 의미했다. 하지만 내가 만 4년을 채우고 이직하기 직전 그녀가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당시 나는 계열사로 두 번째 파견을 나가 있었는데, 그 팀의 팀장님과는 꽤나 호의적인 관계였다. 스스럼없이 이직 계획에 대해 오픈했고 내가 가려는 회사 출신이던 팀장님은 조언까지 해주셨다. 그리고 Q가 내 소식을 묻더라는 얘기도. 알고 보니 팀장님과 Q는 대학 친구란다.
세상은 정말
한없이 좁은 곳이었다
내가 이직하고 나서 Q는 회사에서 나와 독립된 회사를 꾸렸다고 연락해왔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안부와 함께 업계소식을 전해주었다. 다음에 갈 회사는 정말 마지막 이직이라고 생각할 만큼 모든 면에서 매력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내게, 아직 그런 생각 할 때는 아니라며 웃는 그녀. 내가 벌써 직급이 그렇게나 되냐며 자신에게는 아직도 마냥 신입 같단다. 다음 이직은 꼭 대표님이 도와주세요, 하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려본다. 오랫동안 알아왔고,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만도 수십 번이니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솔깃할법한 포지션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계속해서 이어질 인연. 나의 커리어를 열어준 Q의 새 출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