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계획은 보통 미래의 내가 언제쯤 에너지가 떨어져서 힘들어할지 예측해 본 후 그즈음으로 일정을 잡는다. 붙여서 쉴 수 있는 공휴일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더 싸게 갈 수 있는지 따위는 별로 관심 없다. 미래의 내가 쉬고 싶어질 때쯤 딱 맞춰서 쉴 수 있는 휴가 일정을 미리 대령해 두는 것이 아직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내가 할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휴가 일정은 더할 나위 없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일적인 측면에 있어서 무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무리하고 있었고, 더불어 공교롭게도 사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일정이 맞물려 휴가 직전 한 달은 나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또 일을 해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미리 계획해 둔 치앙마이 여행이 정말 간절했다.
사실 일정이 바쁜 것보다 더 위험했던 일은 일상에서 재미와 행복을 거의 못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게 시시했다. 좋아하던 음악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지도 않아서 내 플레이리스트는 계속 과거를 거슬러 갔다. 출퇴근 길에 읽는 책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로운 책이 마음에 들어오는 일도 별로 없었다. 특히, 올 한 해 동안 영화제를 단 한 번도 가지 못 했다는 점이 올해의 눈여겨봐야 하는 점인데 영화제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를 자주 보지 못했다. 보고 싶은 영화도 별로 없었다. 내 일상을 채울 즐거움들이 점점 사라져 무채색의 일상이 되어갔다.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재미를 찾아보려고 해도 모든 게 재미가 없는데 남은 70살가량의 인생을 다들 모두 이런 상태로 사는 건지 고민했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삶이 끔찍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잠시 멈춰가는 휴식은 대부분의 문제에 해결책이 되어준다. 휴가를 다녀온 뒤 일상의 행복을 아주 많이 되찾았으니 다행인 일이다. 치앙마이는 내가 대학생 때부터 가고 싶어 한 도시였는데, 언젠가 내가 정말 정말 힘들 때 가서 힐링하기 위해 가지 않고 아껴둔 도시였다. 그 이유는 치앙마이에 대한 정보들을 읽어봤을 때 이미 내가 100% 좋아할만한 것들로만 구성된 도시여서, 가보지 않아도 이미 좋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나 내 취향의 도시라면 내가 힘들 때 분명 나를 구렁에서 건져줄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예측은 맞았다.
이곳에서 내가 우연히 마주한 음악들, 정말 맛있었던 커피, 로컬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신료 가득한 음식들, 야외에서 요가하는 시간, 여름빛을 맞으며 수영하는 시간, 조용히 집중해서 책 읽기, 친구와 시답지 않은 농담 하면서 깔깔 웃기, 직접 재료 손질하며 요리해 보기, 사원에 가서 간절히 무언가를 빌기, 땀 흘리며 무작정 골목을 걸어 다니기, 낯선 언어 사이에서 현실을 잊는 시간들이 분명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힘을 되찾게 해 주었다.
내내 우울했던 2024년이지만 요즘은 꽤나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실 내 상황은 변한게 하나도 없다. 변한 것은 내 마음가짐 뿐이다. 행복은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만 가질 수 있다. 행복은 가만히 기다리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지런히 행복을 찾아다녀야 한다. 행복은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라는 것. 알면서도 체감하지 못 했던 그 인생의 진리를 매번 다시 깨닫는다. 도대체 치앙마이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는지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