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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송이 Feb 17. 2020

집단상담의 추억

나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 될 때

'집단상담'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울한 표정으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돌아가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


Sex Education - Season 2


내가 경험한 집단상담 또한 형태는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보낸 시간들은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쪽팔림과 두려움 사이

1학기 상담이 끝나고 방학 때 진행되는 집단상담을 신청했다. 한 학기 상담만으로는 내 마음에 드리운 어둠이 옅어지기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 매주 금요일 상담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던 루틴의 갑작스러운 공백도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집단상담의 시작이 다가올수록 '괜히 한다고 했나?' 하는 후회가 커져갔다. 선생님 한 명 앞에서도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털어놨던 속 얘기를 훨씬 더 많은 사람들, 그것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앞에서 털어놔야 한다니. 엉망진창일 내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몸서리가 처졌다. 상담이 끝난 후는 또 어떤가. 행여나 캠퍼스 안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공교롭게도 겹치는 인맥이 있어 내가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이 학교 내 지인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동공 지진)


그렇게 온갖 과대망상이 극에 달할 무렵, 집단상담이 시작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집단상담은 8~12명 정도 되는 학생들과 선생님 두 분으로 구성됐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잔뜩 쫄아있었는데 다행히 좁은 캠퍼스 안에서도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듯한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다들 뭐가 그렇게 힘이 들어서 이 소중한 방학에 학교 텅 빈 강의실을 찾아온 걸까.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우리가 가장 처음 한 일은 닉네임을 정하는 것이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무슨 과 몇 학년이며 나이는 몇 살인지 등 서로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금지였다. 때문에 집단상담을 받는 동안 서로 부를 닉네임을 정해야 했다. 마치 학창 시절 조별 활동을 할 때처럼 A4용지를 4등분으로 접어 이름표를 만들고 닉네임을 고민하는 순간이 오글거리게 느껴진 것도 잠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내 사인펜 뚜껑 끝을 입술에 댄 채 진지하게 닉네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닉네임을 정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내 이름 마지막 글자를 썼던 것 같다. 끝내 자신의 닉네임 짓기를 어려워한 사람들은 모두가 아이디어를 모아 직접 닉네임을 지어주기도 했다.  


집단상담을 신청한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나처럼 가족 간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바꾸고 싶다고 온 사람, 매사에 자신감이 부족해서 온 사람도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묘한 동질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매주 금요일 상담을 마치고 해 질 녘 캠퍼스를 터벅터벅 걸어 나올 때마다 그 따뜻한 햇살이 마치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 그늘 속에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걸음으로 함께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 될 때

그렇게 우리는 8번을 만났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 내가 상상했던 '집단상담'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는 매번 다른 형태로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둘씩 짝을 지어 깊은 마음을 털어놓고 진심 어린 조언을 주고받기도 하고, '나의 애인을 같은 과 동기가 좋아하고 있다면?', '부모님과 진로 문제로 갈등이 생긴다면?', '친구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한다면?' 등등 난감한 상황들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해결할지 토론하며 각자의 가치관을 알아보기도 했다. 인생그래프를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고 이를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나의 마음을 꺼내어 보여주고 타인의 마음을 바라봐주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위로받고 위로하는 과정이었다. 혼자만 안고 있던 마음속 응어리들은 이를 향한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에 조금씩 녹아내렸고, 내가 건넨 작은 위로가 상대에게 위안이 되는 것을 느낄 때면 아직 내게 누군가에게 줄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서로의 닉네임이 입에 붙었을 무렵 집단상담은 끝이 났다.


집단상담을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을까. 당시 학교 앞 음식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계산을 하던 중 손님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치고는 깜짝 놀랐다. 방학 때 집단상담을 함께 했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어렵다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여러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놀란 마음에 금세 알 수 없는 반가움이 떠올랐다. 계산을 기다리며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들 사이로 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 역시 이내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서로의 눈을 보며 안부를 묻는 그 찰나의 순간, 우리가 함께 보냈던 여름이 순식간에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그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느꼈다.


무릎을 맞대고 앉아 마음을 나누던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 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든지, 그때보다는 조금 더 안녕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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