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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송이 Mar 08. 2020

성추행의 기억도 치유가 되나요?

결국엔 나의 몫으로 남는 상처의 기억 

작년 가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둘이 술을 마시고 난 후 우리 집으로 가던 택시 안에서였다. 본인의 집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인 택시에 냉큼 따라 타는 그를 보고 '취한 와중에도 데려다 주려는 건가.' 생각했다. 평소에도 매너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다른 의심을 할 여지는 없었다. 그 의심을 했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 택시가 강변북로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쳤지만 그는 집 앞에 도착해 택시에 내린 후에도 강제로 나를 추행했다. 


다음날 아침, 숙취에 눈을 뜨자 꺼진 방에 불이 켜지듯 한순간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짧은 시간에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는 불쾌한 장면들, 그대로 입고 잠이 든 옷에서 느껴지는 소름 돋는 감촉들. 침대에 멍하니 앉아 '꿈인가' 했다가, 내 의도와는 달리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어젯밤 기억의 조각들이 머리를 아프게 찌를 때마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했다. 핸드폰을 보자 그에게서 숙취로 머리가 아프다는 지극히 평소와 다름없는 카톡과 함께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와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엉망이 된 화장을 씻어내며 이 모든 기억들도 함께 씻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그 자리에는 내가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한 지인에게 어젯밤 성추행을 당했다는 팩트만이 더럽게 남았다. 결국 '꿈이 아니구나'라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정신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름을 말하자 데스크 선생님이 반갑게 내 이름을 불렀다. 갑작스러운 실연의 아픔에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 살던 나를 지키기 위해 몇 달간 다녔던 병원이었다. 선생님께 편안한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게 고작 2,3주 전이던가. 내 이름을 듣고 단번에 나를 기억해내는 데스크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를 듣자 허탈함이 밀려왔다.  


몇 주 만에 다시 찾아온 나를 보고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와 안쓰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으셨다. 하지만 내 얘기를 듣기 시작하자 그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 대신 심각한 표정만이 떠올랐다. 나는 떠듬떠듬 그날 있었던 일들과 이후 사람들과의 가벼운 접촉에도 화들짝 놀라거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가슴이 계속 두근거린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정작 내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건 그렇게 오래 알고 지냈던 친한 지인이 자신의 욕구를 못 이겨 나를 성추행했다는 배신감이었다. 


(※ 여기서 혹시 '그러게, 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셔?' 또는 '어쨌든 남자랑 술 마시는데 조심했어야지' 등의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않는 편이 당신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당신에게는 이 글이 그저 자신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못한 여자가 징징거리는 글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선생님은 역시 내가 듣고 싶어 했던 얘기들을 내가 듣고 싶었던 만큼 해주셨다. 또 안 좋은 일을 겪어서 너무 안타깝다고, 오랜 시간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던 만큼 상처와 충격이 더 클 것 같다고, 상처가 낫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니 조급하게 잊으려고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리고 마지막엔 엄마 같은 표정으로 '그래도 앞으로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조언도 함께.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얘기를 선생님과 나눈 후에도 나는 한동안 이전과 비슷한 시간들을 보냈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와 조금만 살이 닿아도 몸이 움츠러들었고 그날의 기억들은 여전히 생생하게 날뛰며 나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같은 일로 다시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누군가 나의 상처에 공감해주고 나를 지지해줘도 결국 그 상처가 아물(어 보일) 때까지 지켜보는 건 내 몫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지금, 상처는 흉터가 되어 내 마음에 남았다. 병원을 꾸준히 다녔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 흉터가 남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선생님과의 대화가 극적으로 내 상처를 낫게 해 주지는 못했지만, 그 대화가 없었다면 상처는 훨씬 더딘 속도로 아물었을 것 같다. 가장 필요한 공감과 지지를 가장 필요한 시기에 얻을 수 있다는 것. 내게 그것만으로도 상담의 의미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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