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랜드 고양이 연합 #2
'호사다마'라 했던가! 올봄에 들어서 쭉 겹경사의 연속이었는데 4월 말부터 급브레이크가 걸려버리고야 말았다. 그날은 이상하게 당고의 텐션이 낮은 날이었다. 본래 당고는 집사누나가 도착하면 현관 앞까지 도도도도 마중을 나오는 고양이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 낮은 표복 자세로 조금 움직인다 싶더니만 멀찍이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엥? 뭐지? 당시 집사누나는 짧은 식견으로 그저 둘째 녀석과 모종의 서열정리가 다시금 한판 벌어졌나 보다 하고 쉬이 넘겨버렸다. 심지어 "내 너 이 녀석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러게 앙꼬에게 너무 까불었어 너~" 하고 당고를 붙잡고 살살 약 올리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고는 집사를 첫 대면 했던 2주간의 기간과 둘째 앙꼬를 첫 대면 했던 3일간의 기간 외에 단 한순간도 '까칠함'은 물론이요, '낮은 텐션'의 기운조차 보인적이 없었다. 본래 천성이 해맑고 호기심이 많으며 웬만한 일엔 멘탈도 흔들리지 않는 밝고 강한 아이. 그게 당고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렇다 한들, 앙꼬와 한판 했기로소니! 평소 무던한 당고 성격이라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다음 날까지도 당고의 텐션은 그대로였다. 아... 이건 어째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이리저리 몸수색에 돌입! 아니나 다를까. 엉덩이와 다리 그 중간 어디쯤에 못 봤던 붉은 생채기가 보였다. 둘째 녀석인 앙꼬는 여리여리한 성격이라 이런 무시무시한 공격을 했을 리 만무하고, 혼자 놀다가 캣타워에서 미끄러졌나? 머리로는 별의별 생각을 다하면서 몸으로는 이유 불문 병원에 달려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후다닥 채비를 했다. 무조건 반사.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근처 24시간 동물병원으로 냅다 달렸다.
그렇게 밝혀진 당고의 1차 진단명(곧 2차도 시작될 예정이므로 1차로 명명하였다)은 '항문낭 염증 파열'이었다. 단어의 뉘앙스는 꽤나 공포스럽지만 사람으로 치면 '면역력 저하에 의한 피부염'정도의 증상이다. 항문낭 제거 수술로 비교적 간단히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걱정할 만큼 큰 수술은 아니라고.
의사 선생님의 예상과 집사의 염원대로 항문낭 제거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상처 부위 소독을 하며 2~3일간 아무는 속도를 지켜본 뒤 퇴원 가능하다는 소식. 그래 뭐, 예산에 없던 약 백만 원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이런 급작스러운 병원비 출혈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법! 내 이럴 줄 알고 당고&앙꼬 이름으로 적금도 따로 부어 두었지.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평소에도 식탐이 없는 당고는 "살 정도로만 먹는군..." 싶을 정도로 깨작거리는 아이였는데 낯선 병원환경과 스트레스로 인해 그만 식음을 전폐해 버린 것이다. 고양이 계의 마약 같은 츄르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하니 이건 뭐 병원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 결국,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이른 퇴원조치를 내리셨다. "일단 먹여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그것만이 약입니다! 좀 이르지만 퇴원합시다!"
선생님으로부터 ‘무슨 수를 써서든 당고 먹이기 미션’을 받고 집으로 당고를 데리고 왔다. "제발 좀 먹어줘... 제발..." 먹지를 못해서 힘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쓰담쓰담해 주다 나도 어느샌가 잠에 든 것 같은데, 다음날에 체크해 보아도 전혀 먹은 흔적이 없었다. 아이 기력은 점점 바닥을 치니 이건 집에서도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싶어 바로 다시 병원에 연락했다. “캔따개도 결국 실패입니다 선생님...”
그렇게 재입원을 하게 된 당고. 집사는 캔값을 벌어야 하므로 일단 급히 입원수속을 마치고 바로 출근했는데, 그 길로 선생님께 급히 연락이 왔다. 황달기가 있는 거 같아서 피검사를 해보니 역시나였다면서. 그렇게 밝혀진 당고의 2차 병명, '지방간'. 세상에나 고양이에게도 이런 일이...? 이런 건 알콜러버 휴먼들이나 조심해야 할 병 아니었나요...?
나조차도 생소한, '고양이 지방간'이라 함은 결국 간단히 말해 체내 칼로리가 고갈 됐을 때 발병하는 병이다. 음식이 몸에 들어오질 않아 쓸 에너지가 없어지게 되면 간에서 무리하게 단백질을 에너지원으로 쭉쭉 가져다 쓰고 남는 잉여에너지는 간에 지방형태로 저장하게 된다. 이 경우 잡식동물인 강아지에 비해 육식동물인 고양이는 지방처리 능력이 부족하여 간에 지방이 쌓이고 그게 결국엔 지방간으로 번지는 것이다. 이는 황달, 탈수, 무기력을 동반하고 심지어 체중감소가 지속될 경우 생명에도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먹으면 낫지만, 먹지 않으면 위험한 참으로 심플하면서도 무서운 병이다.
당고는 ‘특발성 지방간’으로 정말 말 그대로 ‘먹지 않아서 생긴 병’이라 했다. 하여, 치료도 결국 영양공급인데 이것도 저것도 먹질 않으니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입원 후 강급(강제급여)하는 방법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급은 코에 호스를 연결해 하루에 몇 번을 나눠 조금씩 조금씩 습식사료를 넣어주는 방법이다. 황달수치를 비롯한 다양한 수치를 모니터링하며 길게는 한 달, 짧아도 2주는 걸린다는 치료기간. 이렇게 집사누나의 지갑은 하루하루 약 40만 원가량씩 털리게 되는데...!
퇴근 후, 마주한 당고. 코에 호스를 연결하고 철심을 박은 모습. 이 경험을 먼저 해본 친한 집사 친구 말로는 본인은 그 몰골이 너무 짠해서 울었단다. 하지만, 난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울거나, 너무 슬퍼지거나, 지나친 좌절감에 빠져버리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래서 마음을 다잡고 그저, "이야~ 우리 당고 힙하네! 피어싱 한 거 같아~" 하며 웃고 말았다. 긍정적인 텐션을 애써 유지하며 며칠을 면회 때마다 쪼르르 달려 나와 나 좀 꺼내달라고 유리창을 박박 긁어대는 녀석을 우쭈쭈 달래주고 돌아오는 길마다 슬퍼지지 않으려 매일, 매시간, 매초를 다짐했다.
그래, 아직 우려하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치료비가 모자라 아이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거나, 손 쓸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거나 그런 것들. 나는 그저 이럴 때를 대비하여 모아둔 돈을 잘 분배해서 쓰고, 나머지는 당고의 의지에 맡길 뿐이다. 파워긍정인 나도 약 30초 정도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했는데 지방간 판정을 내리면서, 이미 체중이 25% 빠져버린 당고의 상태를 설명하며 체중이 45% 까지 빠지면 위험하다는 선생님의 걱정 어린 말씀이었다. 이땐 잠시잠깐 나도 모르게 슬픈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설마, 진짜 죽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정말 딱 30초였다. 이 이후 절대 이런 상상은 하지 않기로, 어쩌면 집사누나보다 강할지 모를 무적의 고양이 당고를 믿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저 당고를 불안하지 않게 하는 것. 해서 나는 언제나 면회 때마다 즐겁게, 집에서 당고와 내가 서로에게 했던 것처럼 짓궂게! 더 하지도 덜 하지도 않는 텐션으로 아이를 대하려 부단히도 애썼다. 그러던 중 이 무슨 일인가! 당고의 투병기간 동안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함께 사는 둘째 고양이 앙꼬 역시 스트레스성 장염이 왔다. 불행 중 다행으로 통원치료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앙꼬 역시 식욕을 잃고, 먹은 것도 없이 마른 투명 토를 하고... 아이고 정말! 세상에... '항우울증제'가 웬 말이야. 누나가 우울증 걸릴 판에 말이야!
그러나 모든 일은 언젠간 끝나기 마련. 당고의 투병생활 동안 내 일상은 매 순간 아주 절망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계속적으로 잔잔하게 마음속 한켠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던 바위 같은 통증이 있었는데 그 지난한 체증이 내려가는 날이 비로소 왔다.
당고! 드디어 퇴원을 명 받았습니다!
마지막 입원비 및 치료비까지 결제하고 당고를 들춰 매고 나가는 길. 그래서 토탈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으려나? 수북이 쌓인 영수증을 일단은 못 본 척 뒤로한 채 그나마 당고가 잘 먹었다는 습식사료를 양손 가득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고도 정말 고마워. 살아있음에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
자, 이제 게임을 시작하지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언제나 현실이잖아요? 재산이 얼마나 줄었는지 명확히 알고는 있어야죠. 약 2주간의 병원생활 동안 총 5,311,800 원 지출. 대한민국 반려동물 양육가구 약 1400만 시대. 국가 의료보험 도입이 시급합니다 정치인 선생님들. 예?
1 day에 약 40만 원씩 지출한 병원비. 해서 우린 앞으로 40만 원의 화폐가치를 1DM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One day-DANGO-Medical. 깔깔깔! 여담으로, 곧 한 식구가 될 신랑님이 키우는 김군이는 완전 먹보 고양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 김군이는 과거 요로결석 치료 때, 마취가 덜 풀려 하반신 마비 상태에서도 두 다리를 질질 끌고 가며 밥부터 먹고 보는 멋진 고양이랍니다! 먹는 게 남는 장사라는 거 이제야 깨달았지. 해서 우린 식음전폐 당고 병원비를 ‘김군깡’으로 돌려막기 하고 있다고 참 다행이라고 농담하며 웃어 넘기기도 했다. 역시 한국인은 풍자와 해악의 민족이랄까. 으쩌겠어~ 정신승리라도 해야지! 호사다마… 호사다마…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또 하나의 뜻밖의 감정은 ‘인류애'였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많아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도 아직은 소소한 따뜻함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무슨 말이고 하니, 별그램 스토리로 오백이 이야기를 봐오던 동네 단골 케익집 사장님이 간식을 무료나눔 해주시기로 한 것. 고마운 마음에 나도 그 집 아이에게 간식을 나눔 했고 서로서로 잘 먹었다는 소식을 호들갑스레 주고받았는데, 사막 같던 마음에 단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우리집 집들이 손님이 +1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말, 혹은 잔소리. 나 원래 반려동물 키우는 거 굉장히 관대하게 추천하는 타입이었는데, 이번일 겪고 나니 음… 학생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 직장인부터!
애 아프면 경제력이 곧 사랑이더라
반려인들 우리 모두 사제보험은 아니더라도 애들 앞으로 적금 하나쯤은 들어 놓읍시다!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과거 애들 입양과 동시에 세웠던 저의 계획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선언합니다!
이 글을 마치는 시점, 현재 2023년 6월 19일, 오백이는 이제 제법 생닭 다리에 털도 많이 올라오고 원래 성격처럼 건강하고 명랑하게 지낸답니다.
우래기 진짜 고생 많았고
씩씩하게 이겨내줘서 고마워
이사 가서 서터레스 안 받고
평생 건강하게 지내려고 액땜했다 치자!
모쪼록 안전이사 후에~
앞으로 더 햅삐하게 살자, 털뭉치들!
+Cookie Episode. 담당 주치의 선생님왈, 당고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는 고양이예요" 이 말인즉슨, 당고의 순함 of 순함에 대한 평이었다. 병원에서도 '묘종: 랙돌'이 오면 워낙 종특이 순둥이인지라 다들 좋아하는데 당고는 랙돌 중에서도 손꼽히는 순둥이라고. 주사를 놓든, 호스를 꼽든, 철심을 박든... 무슨 짓을 해도 얌전히 받아주어서 치료할 때 너무 고마우면서도 안쓰러웠다고 한다. 해서 웃프게도 당고의 치료비중 마취비용이 꽤나 Save 되었고 선생님도 잘 따라준 당고가 고마워 선생님 나름대로의 D.C도 많이 해주셨다는 일화. 진짜 너무 의젓하고 착한 고양이, 내새꾸 당고. 누나한테 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