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6
나는 체력이 약한 편이긴 하지만 잔병치레가 많지는 않았다. 심한 질병을 앓은 적도 별로 없다. 하지만 유치원 때는 천식을 심하게 앓았더랬다. 3월에 입학하고 나서 한두 달 다니다가 발병했는데, 결국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다음 해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 몇 번 못 갔다. 1년 내내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지냈다.
지금도 기억나는 어느 하루의 풍경이 있다. 어린 내가 방에 누워 쌕쌕거리면서, 숨을 쉬려 애쓰면서, 힘들어서 훌쩍훌쩍 울고 있다. 그러면 엄마가 아침 일과를 마치고 나를 안아서, 햇살이 따뜻해진 현관 앞마당에 앉혀놓는다. 봄인지 가을인지 바깥 공기는 쌀쌀하지만 햇살은 부드럽다. 그러면 나는 오히려 집 안에 누워 있을 때보다 숨 쉬기가 편해진다고 느끼며 조금씩 진정이 된다.
지금 생각하면 새집 증후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나의 부모는 서울 변두리에 새로 개발된 택지를 사서 단독주택을 지었고, 막 입주한 상황이었다. (참고 https://theirhome.tistory.com/2 )
1년 내내 집에서 누워 지내다가, 어느 날인가 유치원에 딱 한 번 가서 비련의 주인공 대접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에도 종종 있는, 아픈 아이 정상 생활 체험 미담 이벤트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때 사람들이 나도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식도 낫지 않았는데 유치원에 꼭 다시 가고 싶다고 우겼다. 엄마는 고심하다가 그럼 어디 한 번 가보자고 결정을 내렸고 아마 유치원에 특별 부탁을 했던가보다. 내가 도착하니 교사들과 원생들 모두 나를 박수로 맞아주었다. 서너 시간 동안 이어진 모든 수업에서 나는 매 순간 주목을 받으며 발표 기회가 올 때마다 지목을 당했다. 교사들은 나의 대답을 열성적으로 듣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낮잠 시간이 되었을 때조차, 교사는 내가 "가장 예쁘게 낮잠을 잔다"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그때 사진을 보면 나는 오랜만의 사회 활동으로 교실에서 혼자 땀에 흠뻑 젖은 채 의욕적인 눈빛을 번뜩이고 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다시 유치원을 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졸업식 정도만 참석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행히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천식이 거의 나았다. 새집 독이 그때쯤엔 어느 정도 빠졌던 걸까 아니면 내 몸이 독성 물질들에 적응을 했던 걸까?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게 새집증후군이라는 걸 몰랐고, 그때 나의 치료제로 공인 받은 약물은 토룡탕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비닐팩 속에 개별 포장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갈색 액체를 억지로 먹였다. 그냥 한약이라고만 했는데, 어느날 엄마가 친구들과 하는 말을 듣고 그게 지렁이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흙 토, 용 룡, 국 탕. 즉 ‘흙에서 사는 용’인 지렁이를 ‘고아서’ 만든 액체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고단백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게 정말 영양적 효과를 발휘했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