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성장 시대 중산층 음식 자서전 27
정말 토룡탕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유치원을 자퇴하다시피 병약했던 나는 초등학교 이후에는 별 문제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내 건강이 또 한 번 망가졌던 건 20대 중반부터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난, 30대 후반 때였다.
어느 주말 점심에 반주로 맥주를 딱 한 잔 마시고 나서 피아노 공연을 보러 들어갔다. 첫 곡의 서주가 연주되고 나서 연주자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오늘 공연의 방향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갑자기 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필 맨 앞좌석에 앉아 있었고 공연장이 원형이라서 출입구로 나가려면 무대 앞을 지나가야 했다.
위장에서부터 솟구쳐 입으로 막 나올 듯한 뭔가를 손으로 막으며 나는 우다다다 뛰어서 무대 앞을 가로질러 출입구로 뛰쳐나갔다. 연주자는 화들짝 놀라 말을 멈추고 시선으로 내 동선을 쫓았다. 아마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출입구는 2중으로 돼 있어서 공연장 문을 열고 나서자 복도 비슷한 공간이 나오고 밖으로 나가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외부문 앞에 점심 먹은 것을 요란하게 토했다. 안에서도 다 들렸을 듯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술자리 등 대부분의 사교 생활도 중단하고 은둔 비슷한 생활에 들어갔다. 초기에는 그래도 집에만 있는 것으로는 무리가 되지 않아서 프리랜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그냥 집에 앉아서 일하기도 힘든 건강 상태가 되어 뭔가 조치가 필요해졌다.
그때 첫 번째 조치는 '홍삼'이었다. 당시 약국이나 백화점 등에서 팔던 인삼이 정관장 등 별도의 브랜드를 만들며 독립적인 가게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인삼이 몸에 안 맞는 사람도 먹을 수 있다는 '쪄서 말린 삼' 즉 홍삼이 유행했다. 나는 가루로 된 걸 먹었는데, 3만원 정도 한 병이면 3개월을 먹었다. 과연, 3년 정도는 감기 한 번 안 걸릴 정도로 기력이 유지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홍삼 때문에 한의원들이 망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다가 3년째가 되던 해 가을,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낫지 않고 골골 거렸다. 아무래도 홍삼의 약발이 다한 듯했다. 이번에는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서 40만원에 달하는 한달치 한약을 지어 먹었다. 드디어 상태가 좀 회복 되었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6개월에 한 번은 꼬박꼬박 찾아가 한약을 지어다 먹었다.
그러기를 3년, 이제 약발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에 걱정이 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다시 만신창이가 된 기분으로 1년을 누워 지내다시피 했다. 아예 누워서 컴퓨터를 볼 수 있는 작업대를 만들어 일은 계속했지만 그러다보니 몸에는 더욱 힘이 없어지고 도무지 사람 꼴이 아닌 모습이 됐다.
이때 찾아낸 세 번째 보약은 닭가슴살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주인공은 사실 음식이 아니라 ‘운동’이었다. 허리 디스크에 좋다는 헬스, 정확히는 개인 교습을 통한 근력 운동(PT)을 시작하며 지도받은 대로 거의 매일 닭가슴살을 억지로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역시 효과는 있었다. 닭가슴살을 벗삼아 헬스를 한 지 1년만에 몸무게는 10킬로그램이 늘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바지는 모두 그대로 입을 수 있었고 간혹 좀 작았던 웃옷만 몇 개 못 입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후 3년이 넘도록 PT를 계속 받았고 몸무게와 함께 체력도 꾸준히 늘어, 꽤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여자가 헬스를 오래 했다고 하면 흔히 11자 복근이 생겼냐고 묻지만, 나는 “그다지, 대신 10킬로그램이 쪘다. 근데 이전 바지를 다 그대로 입고 있다.”라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