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자신을 잊어버리는 일이 되지 않게.
첫눈을 맞이하기 전, 또 한차례의 연애가 끝이 났다. 그저 이별의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던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별하는 동시에,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가 떴다.
헷갈렸다. 지금의 이 슬픔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인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슬픔인지 말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당시에는 상대방이라는 주체와 그 마음의 분리를 절대 상상할 수도 없고, 그 둘은 영원히 떼놓을 수 없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
하지만 그렇게 자만하던 순간도 잠시, 그 둘은 아주 보란 듯이 분리가 돼 버린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이미 관계가 멀어진 그 사람을 놓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진다. 분명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을 사랑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 현재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는데, 마음은 당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누구나 그렇듯, 이별한 이들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 사랑했던 과거와, 다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사이에서 한참을 방황한다.
그리고 이런 무의미한 시간을 합리화하기 위해 급기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다.
아직 너도 미련이 남았을 거야. 나에게 미안할 거야.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거야. 연락하고 싶은 걸 참고 있을 거야.
백번 양보하여 이 모든 상상이 설사 진짜라고 가정해도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는 나에게 연락하지도,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진실이고 그 사람의 진심인 거다.
미련과 미안함과 후회라는 감정은 더 이상 사랑으로 변모할 수 없다.
그 모든 감정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의 잔해들일뿐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방황의 시간 속에서 한 가지 내가 깨달은 건 이별 후 슬픔의 근원이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못됐었던 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었다면, 그 사람을 그저 내 소유물로 생각한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슬픔이었다면, 그게 누구든 대체가능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나로서만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슬펐던 게 아닐까. 그 환상 속 자아가 갑자기 사라지니, 그제야 현실의 진정한 자아가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마음의 분리처럼, 자신도 분리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상대방과 자신과의 분리.
사랑을 받는 마음과 자신과의 분리.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만,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그 마음마저도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도 더 이상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그 온전한 받아들임이야말로 성숙한 두 남녀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