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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주 Jan 14. 2022

스타의 성인식 여정

영화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2016)

2017.08. 씀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의 주인공 스타(사샤 레인)는 내내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히치하이크 요청이 번번이 거절당했던 것만큼이나 그의 삶은 누구의 시선도 포착하지 못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 그가 흰 승합차의 요란함에 이끌려 따라 들어가게 된 길 건너 월마트. 그곳에서 스타가 제이크(샤이아 라보프)에 눈길을 빼앗기고 제이크가 스타에 시선을 두는 그 순간, 별은 스스로 빛을 내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제 막 열여덟을 맞이한 스타의 성인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타의 성인식은 곧 그가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감과 다름 아니다. 그는 제이크, 크리스탈(라일리 키오), 그리고 여러 표본의 기성세대 남성들을 상대하면서 사회를 공부해 나간다. 물론 예의 여정을 촉발시킨 제이크는 내내 절대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그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스타의 앞에 과시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스타에 내재하는 성적 욕구를 자극한다. 과연 그는 162분 내내 여러 방식으로 스타의 성인식을 이끄는 존재라 할 만하다. 이 시기의 스타에게 제이크는 하나의 거대한 지표이자 우주다.

  그러나 스타는 제이크를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의 방법론을 기어이 구축하는 모습을 보인다. 거짓을 일삼고 권력에 기생하는 등 구습의 표본이라 일컬을 만한 행동을 일삼는 제이크를 탈피하고 변주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스타가 제이크와의 성적 긴장감을 끝내 놓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 이를 통해 증거되는 것은 스타 역시 제이크, 크리스탈, 기성세대 남성의 표상이 그리고 있는 미국적 이상의 병폐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스타는 돈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논리의 범주 안에 존재한다. 스타는 이 단순한 원리를 학습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본을 이동시킨다. 스타는 본인의 찬란한 젊음을 팔고, 패기를 팔고, 성적 매력을 팔아 돈을 번다. 제이크가 보여준 허위와 더부살이로부터는 분명 거리를 확보하지만 그럼에도 스타 역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울타리의 모양을 변형시키려 하는 의지는 없다. 새로운 부의 창출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본의 근거리 이동만을 이끌어내는 제로섬 게임에 동참할 뿐이다.

  스타가 제이크를 한 번 잃었음에도 그가 또 제멋대로 귀환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스타는 스스로 자신의 울타리를 설정할 수 없는 존재임이 증명된다. 그럼에도 스타는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 속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고뇌하고 체득하며 성장하는 존재다. 스타는 미국적 이상의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 채 돌고 도는 승합차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한 마리 개미이자 들개이자 거북이와 다름 아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 불꽃놀이를 즐기는 무리를 벗어난 스타는 제이크로부터 건네받은 거북이를 호수에 방생한다. 그리고 스타 자신 역시 호수 깊숙이 몸을 담갔다가 이내 산소를 찾아 튀어 오른다. 그 순간 신의 속삭임(이 시퀀스를 지배하는 음악이 Raury의 'God's Whisper'다.)은 멈추고 어두운 하늘에는 반딧불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이크로 시작했고 제이크로 끝나는 매혹적인 속삭임, 굴곡진 성인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과한 스타가 그제사 스스로 빛을 낸다. 가까스로. 이 밤하늘이 미국 땅덩어리 위에, 제이크의 자장 안에 존재함을 부정할 도리는 아무래도 없지만 말이다.


*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American Honey (안드레아 아놀드Andrea Arnold,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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