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의 은총으로>(2019)
2020.01. 씀
<신의 은총으로> 서사의 중심에 존재하는 ‘해방된 목소리(La Parole Libérée)’는 현존하는 단체다. 프랑스 리옹에서 발생한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 학대 사건을 고발하고 폭로하는. 실재하는 이 단체의 궤적을 좇고 있는 영화의 큰 줄기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세 개의 덩이로 나뉘어진다.
최초 고발자인 알렉상드르(멜빌 푸포) 서사의 전개는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의 충돌로 추동된다. 고발자 알렉상드르와 리옹 대교구장인 바르바랭 추기경(프랑수아 마소레)이 주고 받는 서신은 그들 각자의 음성으로 발화되어 운동하는 이미지 위에 포개지는데, 여기에서 지속적인 균열이 발생한다. 이를테면 목소리 혹은 서신의 칼날과 현재의 평온하고 느린 풍경이 완벽한 호응을 이루지 않는 것이다. 화면 위에는 어떠한 학대의 기억도 전시되지 않으며, 알렉상드르의 피학대 사실을 증거하는 것은 오로지 지금 이 시점 발화되고 있는 언어다.
서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프랑수아(데니스 메노체트)는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대상으로 ‘해방된 목소리’를 결성한다. 알렉상드르가 스스로의 언어에 온전히 의지하여 고발을 시작했다면 프랑수아는 이를 몸짓으로 만들며 복수화⋅역사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프랑수아의 결단은 곧, 서사가 선택한 세 번째 인물인 에마뉘엘(스완 아를로드)의 사적인 역사로 이어진다. 알렉상드르가 자신의 언어로 최초의 방아쇠를 당기고 프랑수아가 복수화된 몸짓을 구성했다면, 에마뉘엘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를 보여주고 그 가능성을 논한다. 알렉상드르에서 프랑수아, 프랑수아에서 에마뉘엘로 수평 이동하는 해방된 목소리는 횡으로 넓어짐과 동시에 종으로 쌓여 올라간다.
이렇게 알렉상드르에서 프랑수아, 프랑수아에서 에마뉘엘로 넘어가면서 시청각 이미지는 봉합되고 과거-현재-미래의 공존재가 증거된다. 알렉상드르의 서사에서는 전혀 제공되지 않던 과거 피학대의 이미지는 프랑수아와 에마뉘엘의 현재 서사에 느닷없이 틈입한다. 에마뉘엘은 ‘해방된 목소리’를 통해 삶을 다시 설계하는 기회를 얻었노라 말하며 그간 보지 못했던 미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느긋하고 평온한 풍광과 서신의 날카로움이 충돌하며 빚어지던 균열은 이내 매끄럽게 가공된 시청각 이미지의 호응으로 이어진다. 혼자의 힘으로 싸우던 알렉상드르 서사의 이미지와 ‘해방된 목소리’가 조직된 프랑수아와 에마뉘엘 서사의 이미지는 이질적이리만치 다른 방식으로 쓰인다.
이는 현재 진행형인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을 구성한 프랑수아 오종의 시네마적 전략으로 보인다. 그간의 작품들을 통해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능란하게 허무는 재주를 보여주었던 오종이 택한 시네마적 재현 전략. 본래 오종은 본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기획했으나 피해자들을 더 괴롭힐 수 없다는 판단에 서사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실재하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스크린 속의 세계와 관객의 몸이 위치하고 있는 현실은 긴밀히 관계를 맺을 수밖에. 그렇다면 픽션이라 선 그을 수 없는 그들의 목소리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관객의 세계로 그 에너지를 되돌리게 된다. 결국 봉합된 시청각 이미지와 과거-현재-미래를 가로질러 존재하는 기억-이미지는 스크린 속의 알렉상드르, 프랑수아, 에마뉘엘을 넘어 우리 모두를 어우르는 공동의 기억으로 거듭난다. 스크린이 재현하는 세계와 우리가 몸 담고 있는 현실이 점차로 봉합되며 에너지와 기억을 주고 받는 꼴이 형성되는 것이다.
어느 한 인물의 삶이나 에피소드를 극적으로 구성하기보다 피해자 다수의 목소리를 운반하는 쪽을 택한 영화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보다 각각의 목소리를 기꺼이 담아내고자 하는 그릇에 가깝다. 영화가 담담히 운반하고 있는 해방된 목소리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도착해 더 크게 확장하고 더 단단하게 응집하는 에너지로 변모한다. ‘해방된 목소리’가 시네마에서 상상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공동체라는 사실은, 개별적 목소리의 잠재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데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임에 틀림 없다. 시네마에서나 현실에서나 거대 관습과 거시사에 틈을 만들어내는 사적인 목소리의 힘은 강하다.
* 신의 은총으로By the Grace of God, Grâce à Dieu (프랑수아 오종François Ozon,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