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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Nov 28. 2020

나만의 인생 레시피가 필요할 때

"고생했다. 이제 이 셰프라고 불러야하나?"

"아이 왜 그래요. 쉐프님 쑥스럽게."

"이제 형이라고 불러. 같은 셰프가 되었는데."

"정말요? 고마워요 형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너 충분히 그럴 자격있어."


주방에 발을 들인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설거지나 기름때가 달라붙은 바닥을 하루종일 문지르는 일이 당연 하기만했던 10년 전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거기에 아름답게 간직하기로 했다. 결과가 나빴다면 찌질한 역사가 되었겠지만 난 그 누구보다 빠르게 하나의 주방을 맡은 셰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셰프의 자리에 그것도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온 전설속 인물의 무용담처럼 회자될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때의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뭐 이제 많은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많아질테니 이런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지.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런 레스토랑의 셰프까지 맡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저희 같은 프로들이 인터뷰를 하면 늘상 하는말들이 있죠. 매일 기본기를 다지는데 신경을 썼다. 초심을 잃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식상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항상 경쟁하려고했고, 이기는 결과를 얻기위해 선배 요리사들에게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셰프로 모셨던 모든 분들의 레시피를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나는 유명한 음식이나 독특한 요리가 있으면 그 레시피를 익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몇 그람의 양념이 들어가는지 어떤 양념이 들어가는지 어떤 브랜드를 사용하는지까지 전부 달달 외워버렸다. 사실 요리라는게 기본만 익히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음식이라는 것은 그 레스토랑이나 셰프의 유명세에 따라 달리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 내가 이미 유명한 이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나 역시도 유명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로인한 시너지 효과는 점점 커질 것이다. 앞으론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내더라도 내 음식을 먹기위해 긴 줄을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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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프를 맡아 레스토랑을 운영한지 벌써 6개월째. 가장 바쁠 시간인 7시인데도 홀은 꽉 차지 않았다. 처음 오픈하고 예전에 빼돌린 선배들의 레시피를 약간 변형해서 메뉴를 구성했다. 메뉴의 이름이 너무 똑같으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갈릭이 아니라 구운 마늘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가 아니라 신선한 채소를 곁들인 스테이크, 수비드 닭가슴살 샐러드가 아니라 저온조리한 닭가슴살 샐러드 등 최대한 겹치지 않게 메뉴를 만들고 얼마동안은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원래 음식들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손님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역시 음식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저 유명세에 좌지우지 되는구나. 나도 빠르게 유명인이 되어서 나의 레스토랑이 발 딛을 틈이 없는 곳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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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사를 직업으로 삼게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감"이라는 이 생기게 된다.


 소금이나 설탕의 무게를 재지 않고 계량스푼을 사용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첨가하게 된다. 몇 분이 지나서 중불로 줄이고, 이때는 약불을 해야한다라고 누군가 알려주지 않아도 느낌으로 불조절을 하게된다. 그런 감이 생기면 정량화된 레시피가 없어도 맛있는 요리를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셰프의 위치까지 올라가면 자신의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에 레시피가 필요하다. 그렇게 수년간 배우고 노력한 결과물인 나의 "감"을 숫자와 글자로 표현한 레시피를 만들게 된다. 거기까지가 셰프가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레시피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한 요리사의 수년간의 노력과 땀이 담겨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레시피를 따라 하더라도 누구나 100% 같은 음식을 구현해낼 수는 없다.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온전히 레시피의 주인만의 것이다.


 우리 모두는 레스토랑의 셰프와도 같다. 자신의 인생을 지휘하는 셰프. 그런데 그 레스토랑의 크기는 물론이고 사용하는 도구들의 종류는 전부 다르다. 불의 화력도 전부 제각각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수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레스토랑의 위치도 다르고 판매하는 메뉴도 전부 다르다.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느 레스토랑이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모든 것을 따라하려고 한다. 왜 마늘을 저만큼 사용하는지 왜 고춧가루는 굵은 것을 쓰는지 이해하기보다 그저 따라하려고만 한다. 똑같이 따라 한다면 자신의 레스토랑도 장사가 잘 되거라 굳게 믿는다. 운이 좋아 따라한 음식 덕분에 잠시 장사가 잘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레시피나 노하우가 없이는 그 인기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아무리해도 오리지널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레스토랑(사람)이라는 단 한가지 공통점만 있을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레시피를 따라 한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정직하게 만든 요리는 누군가가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알아준다. 지금 당장 다른 레스토랑보다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지말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는동안 자연스럽게 생기는 수년간의 경험과 완성된 자신만의 레시피가 만나 인생에서 반드시 시너지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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