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이 코앞까지 다가오기라도 한 듯 어느 날부터 지구에서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세계의 도심 곳곳에서 커다란 산들이 솟아 올라온 사건이었다. 솟아난 산들의 높이는 에베레스트를 훌쩍 넘는 건 물론이고,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에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 이런 현상들을 본 사람들은 겁에 질려 도망을 가거나 곧 지구가 종말 한다는 생각에 자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은 솟아나기만 할 뿐 아무런 한참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산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화산처럼 커다란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산 위에 무서운 괴물이 살 것이다라는 무성한 소문이 돌았지만 산이 너무 높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제가 히말라야에 있는 산을 모두 정복했는데, 저 산들도 반드시 전부 정복하겠습니다."
이처럼 세월이 지나면서 신비한 산의 정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은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세계 곳곳에 솟아오른 산의 높이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가장 높은 산으로 추정되는 곳은 바로 서울에 있었다. 솟아오르며 주위에 많은 건물들이 부서지고, 수많은 희생자들도 생겼지만 제일 높은 산이 한국에 있다는 것은 은근히 자랑거리가 되어있었다.
"이곳만 정복하면 현존하는 높은 산들은 모두 정복하는 것입니다."
최초로 신비한 산 정복에 도전한 등산 가는 10년의 세월에 걸쳐 모든 산의 정상을 밟았다. 이제 남은 산은 단 하나. 한국에 있는 산만 정복하면 세계 최초로 신비한 산을 모두 정복하는 사나이가 되는 것이었다.
10년의 세월 동안 남자의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산을 정복하고 있었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남자가 한국의 산까지 정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산들과 달리 육안으로는 꼭대기가 안 보일 정도로 높은 한국의 산을 오르는 게 조금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남자는 자신이 있었다. 결국 이 산도 자신에게 굴복할 것이다.
"이곳보다 더 높은 산이 있다면 저는 반드시 그 산을 넘겠습니다. 그곳이 우주 밖이라도 말이죠."
산을 오르기 전 남자의 자신감 넘치고, 패기 있는 연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그 열광도 잠시 남자는 한국의 신비한 산을 마지막으로 하산하지 못했다. 남자를 뒤이어 다른 산을 정복했던 사람들 역시 한국의 산에 오르기만 하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감이 넘치고, 최초가 되겠다는 패기로 산에 올랐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다른 나라의 산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한국의 산에 오른 사람들은 전부 돌아오지 못했다.
"도대체 이 산은 얼마나 위험하길래 히말라야도 가뿐히 정복한 사람들이 전부 맥도 못 추는 겁니까?"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정부는 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대비하자는 의미도 있고, 희생자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기리자는 의미도 있었다.
전문 산악인과 촬영팀, 그리고 지질학자로 꾸려진 세계 조사단은 서울에 우뚝 솟은 산으로 올라갔다. 강한 눈보라가 끊임없이 치거나 일반 산보다 산소가 부족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신비한 산의 기온은 따뜻했고, 기분이 상쾌할 정도로 선선한 바람도 불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지거나 공기가 부족한 일반적인 현상따윈 없었다. 올라가면 갈수록 발도 가벼워졌다. 쉽게 말해 등산을 하기에 너무나도 편한 환경이었다. 오히려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안락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전문 산악인들이 이런 산에서 모두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을까요?"
산을 직접 겪은 조사단원들은 입을 모아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에 솟아오른 신비한 산은 수십 명에 달하는 산악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사고를 당할 정도로 위험한 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근데 이 산의 꼭대기는 도대체 어딥니까?"
따뜻하고, 포근한 산은 아무리 올라가도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더 높은 산이 나타나고, 올라가다 보면 또 산길이 나타났다. 조사단들은 이미 일주일째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꼭대기는 육안으로도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리 올라가도 정상에 닿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 돌아가시죠. 더 갔다가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조사단장의 말에 모두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조사단원들은 정상에 오르는 게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무사히 돌아가는 것 또한 중요했다. 하산하는 길에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비상연락망을 계속 체크했지만 여전히 좋은 날씨와 환경은 변하지 않고, 그들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저희 조사팀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솟은 산은 일반 산들과 달리 기압, 기온 심지어 일반적인 지구의 중력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산은 정상이 얼마나 높은지 측정할 수 없었습니다. 정상까지 가지 않고, 가벼운 운동이나 부담 없이 산에 오르시길 원하시는 분들은 이 산을 추천합니다."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거란 예상과는 다르게 조사단의 연구결과는 놀라웠다. 히말라야와는 다르게 적절한 온도와 풍부한 공기, 게다가 중력도 적으니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은 산으로 추천까지 하는 말로 마무리했다.
"다음은 조사단이 촬영해온 신비의 산 곳곳의 풍경입니다."
영상에 담긴 신비한 산의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짙고 풍성한 녹음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영락없이 일반 산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림 같은 산의 풍경에 빠져 곳곳에 가지런히 놓인 주인 잃은 등산화들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