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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Aug 17. 2021

재개발 지역 철거작업

가장 폭력적인

 공무원 A씨는 최근 골치 아픈 일을 떠안았다.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곳의 주민들을 전부 내보내라는 임무였다. 며칠 내에 당장 나가라는 것도 아니었고, 주변 시세에 비해 책정된 보상금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강했다. 물론 보상금을 더 많이 달라는 게 주민들의 주된 불만이었지만 꼭 그 이유가 아니라도 유독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심했다.


 "주민 여러분 이 지역의 보상금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이 책정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드리면 형평성에 어긋나요."

 "역사는 모르겠고, 어쨌든 우린 안 나간다니깐! 내가 여기서만 40년을 살았어. 우리를 돈만 밝히는 놈으로 보지 마."


 주민대표 단체장은 공무원 A씨의 말에 반발했지만 더 큰돈을 원하는 게 확실해 보였다. 아마도 이곳이 초고급 주택단지로 개발될 거란 소문을 들은 것 같았다. 이제 와서 쓸데없이 떠들어댄 언론을 원망해봤자 별 수 없었다.


 "선배, 도대체 방법을 모르겠어요. 저 정도 보상금이면 다른 지역에 있는 훨씬 크고 좋은 아파트를 살 수 있을 정도인데 왜 그럴까요? 폭력적으로 하고 싶지 않은데 요즘은 용역을 쓰고 싶을 정도라니깐요."


 A 씨는 답답한 맘에 고향 선배를 만나 속마음을 털어놨다. 선배 역시 주민들의 정확한 속마음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적당한 조언을 해줄 수 없었다. 재개발 지역은 도심에 있다는 것뿐 거의 할렘가와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노후됐고, 국경이 그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지역만 낙후되어 있었다.


 "고급주택 단지가 조성된다는 소문이 났다고 했지? 그러면 반대로 쓰레기장 같이 혐오시설이 설치될 거라고 거짓 소문을 내보면 어때? 주민들의 반대로 재개발이 무산됐다면서."


 선배는 님비현상을 이용해 보라는 조언을 했다. 집값은 소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니깐 설령 거짓 소문이라도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집값을 보면 불안해진 주민들이 그곳을 떠날 거란 생각이었다.


 "거짓 소문도 아무 소용이 없네요."

 "사람들이 안 믿는 거야?"

 "그건 아닌 거 같고, 쓰레기장이 들어서도 자기 집이 좋다나 뭐라나."

 "설마 그게 말이 돼? 거짓말이란 게 들킨 거지 뭐."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들을 전부 내보낼 수 없었다. 덕분에 공무원 A 씨는 심한 스트레스로 출근이 두려워질 정도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정말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이젠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아들을 이해해주세요."


 A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집에서 일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 아버지에게만은 말을 해야 했다.


"주민들 중에 이미 이사를 간 사람도 있지?"

"네 있긴 있지만 10명도 채 되지 않아요."

"그럼 그들이 떠난 집 터에 아주 고급스러운 집 하나를 짓거라."

"네? 집을 지으라고요? 그것도 고급스럽게요?"


 A 씨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방법을 제안했다. 쓰레기장을 지어도 안 나겠다는 사람들인데 그곳에 고급 주택을 한 채라도 지으면 더 많은 보상금을 내놓으라 할게 뻔했다.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일이 확실해지는 상황이 될 테니깐.


"걱정 말고 해 보거라. 아니면 폭력적인 방법을 쓰던지."


 죽는 것보다 폭력적인 방법을 쓰기 싫었던 A 씨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급주택 한 채를 먼저 지어 입주시키로 했다. 한 채만 지어서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려고 할 테니 일단 적합한 입주자를 먼저 찾아야 했다. 

한참 수소문 끝에 은퇴는 했지만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 한 회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재개발이 완료되면 이곳으로 이사를 올 계획이었던 백발의 회장님은 A씨의 계획을 듣자 고민도 없이 단번에 제안을 수락했다. 


"나도 그런 폭력적인 방법은 질색이요. 하지만 죽기 전엔 꼭 그곳으로 이사 가고 싶으니 내가 그 집에 들어가도록 하지. 계획을 들어보니 금방 해결되겠구먼."


 공무원 A씨와 시는 재개발 지역 한가운데 땅만을 우선 건설사에게 판매했고, 고급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회장님의 요구대로 슈퍼카 여러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크게 지었다. 마치 자동차 전시장처럼.


 "토지보상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저희 시에서는 회장님 댁 근처의 순찰을 늘리고, 씨씨티비 설치를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모르겠고, 도로포장만이라도 서둘러 해드리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이 집에 먼저 입주해 준 회장님을 위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했다.

 

 그렇게 고급주택 딱 한 채가 재개발지역 한가운데 올라간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대부분 주민들이 그곳을 떠났다. 이전보다 보상금을 더 많이 주지도 않았고, 용역단체를 부르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은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회장님 집이 입주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 집에는 여전히 축하를 위해 손님들이 다녀가곤 했다. 그들은 아무 곳도 들르지 않고, 회장님 집 앞에 도착해 자동차 뒷문만 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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