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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Aug 26. 2021

동물의 왕국

본능

"오늘도 하이에나 무리들이 사자를 노리고 있네요. 정확히 말하자면 2주가 넘게 쫄쫄 굶어 아사직전에 겨우 사냥한 고기를 노리고 있지요. 하이에나들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지만 힘이 없는 사자의 먹이를 훔치려 합니다. 그들의 본능이지요. 제 아무리 밀림의 왕이라 해도 배고픈 상태에서 무리로 달려드는 하이에를 당해낼 순 없습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다.


"에라이 망할 놈의 짐승 새끼들!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사냥을 하면 쉽게 할 수 있으면서 왜 굳이 배고픈 사자껄 빼앗냐?"


아버지는 마치 자기 일처럼 열불을 냈다. 뒷얘기가 나오진 않았지만 먹이를 빼앗긴 사자는 결국 죽었거나 겨우 토끼 한 마리쯤 잡았을 수 있다.


***


"엄마엄마 저기 봐!"


아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고양이 한 쌍이 교배를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암컷 고양이는 내키지 않아 하는 것 같았지만 수컷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왜 저 고양이는 앞에 고양이를 괴롭히는 거야? 엉덩이를 자꾸 때리잖아."


조금 민망한 상황이라 그냥 얼버무리며 넘길까 했지만 제대로 교육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저건 동물들이 새끼를 낳기 위해 하는 행동이야. 그 행동이 하고 싶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성욕이라고 하는데 동물들은 그걸 태어날 때부터 참을 수 없게 태어났어. 그래서 앞에 고양이가 조금 귀찮아해도 뒤에 고양이는 성욕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하려고 하는 거야. "

"그럼 사람도 똑같아?"

"당연히 아니지! 전 세계에서 사람들만 유일하게 성욕을 참을 수 있고, 서로가 원할 때만 저런 행동을 한단다."

"와아 신기하다. 나도 사람이지 엄마?"


엄마는 아이의 엉뚱한 질문에 웃음이 터졌다. 집에 올 때까지 고양이 얘기만 하는 아이를 보고 잘 알려주었단 생각에 엄마는 뿌듯함을 느꼈다.


***


A 작가의 이번 피사체는 무려 바다표범이다. 동물들의 사진을 찍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육지가 아니라 망망대해로 나가야 하기도 했고, 원하는 사진은커녕 바다표범을 만날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저기 빙하조각 위로 바다표범이 자주 올라와 쉬니깐 기다려보시죠."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보트의 모터를 끄고 빙하를 향해 삼각대를 고정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왔다!"


가이드의 말대로 이빨이 커다란 바다 표범 한 마리가 빙하 위로 허겁지겁 올라왔다. 신이 난 작가는 언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갈지 모를 바다표범을 향해 셔터를 마구 눌렀다.


"흐익 저게 뭐야?"


파도인 줄 알았던 물살이 바다표범이 올라타 있는 빙하를 덮쳤다. 덕분에 바다표범은 물속으로 미끄러졌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래의 꼬리에 맞아 켓처럼 물 위로 솟구쳤다.


"범고래 짓이네요."

"범고래요? 근데 고래가 왜 저런 행동을 하나요?"


높은 지능에 힘까지 좋은 범고래를 바다에서 이겨낼 물고기는 없다. 심지어 그 무시무시하다는 백상아리도 범고래에겐 꼼짝도 못 한다.


"뭐... 잡아먹기 전에 좀 갖고 놀겠다 이런 의미죠?"

"갖고 논다고요?"

"바다표범이 자기에게 도망 못 간다는 걸 범고래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머리도 똑똑하지 않고, 힘도 턱 없이 부족한 바다표범은 저렇게 괴롭힘 당하다 먹히는 것 말곤 방법이 없네요."

"안타깝지만 그게 약육강식이죠..."


작가는 조금 씁쓸했지만 불쌍하다고 도와줄 순 없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뿐.


저 좋은 머리 힘으로 생태계 관리에 좀 더 신경 쓰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해봤지만 범고래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괴롭힘 당하고 있는 바다표범들도 얼마 전 귀여운 펭귄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결국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힐 뿐이었다.


**


"옥황상제님 이번에 두 번째 삶 후 지옥으로 올라온 자들입니다."

"네 이놈들! 전생에 짐승들로 태어나 이번엔 인간으로 살 기회를 주었건만 본성은 그대로였구나. 정 그렇다면 본래 너희들의 모습들로 돌아가거라. 아니다 이번엔 너희보다 약한 존재는 단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환생시켜야겠다."


분노한 옥황상제는 천둥 같은 목소리로 그들을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지구에 사는 생물이라면 누구나 환생해 세 번의 삶을 살 수 있는데 그들의 삶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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