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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Aug 30. 2021

확진

확실하게 진단을 함. 또는 그 진단.

요즘 들어 영미 씨는 고민이 많이 생겼다. 아니 불안함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지만 인생이 너무 지루해졌기 때문이다. 

몇 년간 고생해 붙은 회사생활은 꽃길 창창일 줄 알았지만 지옥길이었고, 퇴근 후 취미생활을 즐기며 소소하게 살아보겠다는 계획마저 무산되었다. 그나마 주말은 쉰다는 게 위안이었지만 평일 내내 야근으로 쌓인 피로를 푸는 것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그냥 우울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의욕이 없었다. 딱히 슬픈 것도 아니고,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가슴 깊숙이 뭔가 꽉 막혀 쉽게 뚫리지 않고 있었다.


"밤늦게라도 운동을 해보면 어때? 피곤하겠지만 억지로라도 땀을 흘리면 오히려 개운해지더라."


친구의 조언을 따라 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30분이라도 운동을 하고 귀가했다. 그 효과는 뭐 나쁘진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단 피곤하지 않았고, 땀을 흘리니 기분도 나름 좋아지는 것 같았다. 꾸준히 해볼 생각이었다.


"동호회 같은 걸 해보면 어때?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스트레스도 많이 풀릴 거야."


주말은 그래도 조금은 쉬어야 하니 운동을 하는 동호회보단 독서 동호회를 들어갔다. 책 내용을 서로 공유하니 지식인이 된 것 같기도 해 뿌듯했고,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의견을 들으니 세상이 참 넓다고 느껴졌다. 꽤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아직 답답해? 그러면 연애를 해보면 어때? 사랑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라잖아."


사귀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사귀게 되면 좋아질 수 있으니 시간이 날 때마다 소개팅을 했다. 엄청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지만 운이 좋아서인지 매너 좋은 남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와도 사귀진 않았다. 그래도 그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라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영화도 재밌었고, 음식도 맛있었으니깐.


영미 씨는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위에서 추천하는 것은 전부 해보았고, 나름 효과적인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영미 씨를 완벽하게 일상으로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그녀는 우울했지만, 다행히도 나쁜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미야 다른 사람들 눈은 신경 쓰지 말고 너무 힘들면 정신병원 한번 가보는 게 어때? 요즘은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약 하나만 먹으면 우울증 같은 건 금세 고칠 수 있대. 물론 일시적이겠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대."


아주 쉽고 간단하게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는 말에 조금은 솔깃했다. 그렇지만 영미 씨는 자신이 보수적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편견이 있어서인지 정신병원만은 가고 싶지 않았다.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으로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됐으니, 다른 방법으로도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가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걱정이야. 눈 한번 꼭 감고 병원 가봐 알았지?"

"나 그 정도 아니야. 그냥 조금 우울할 뿐이지."

"요즘 우울증은 병도 아니래. 가서 알약 하나만 딱 먹으면 바로 기분이 좋아진대 진짜로!"


영미 씨는 끝까지 거절하려 했지만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정신병원을 찾았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정신병은 아주 흔한 질병입니다. 자연적으로 치유하는 방법도 있지만 요즘은 이런 약들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합니다."


의사는 정성스럽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영미 씨를 상담해주었다. 그리고 처방받은 약을 한알 삼키고 병원을 나섰다.


"와아 약효과 장난 아니네!"


의사 선생님의 진심 어린 상담 덕분인지 아니면 약 덕분인지 영미 씨의 기분은 요 근래 최고로 좋은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밝게 내리쬐는 햇빛, 그리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까지. 

영미 씨는 180도 달라진 기분을 만끽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족 앞에 나타났다.


故 김영미 이곳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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