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가기 전에 미리 생각 해 보아야 하는 것들
아마 많은 우리나라의 학부생들이 고민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법한 주제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필자도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을 고민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따지고 보면, 생각보다 고민해야 할 것이 아주 많았던 탓이다. 사실 그리 대단한 고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소소한 생각들이기도 하니까. 나는 주된 시간을 '내가 대학원 생활 동안 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입학전 이 같은 고민을 하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렸던 것이 현재 나의 대학원 진학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내가 미쳐 미리 생각지 못 했던 중요한 포인트들도 있다. 그때는 대학원 생활에 있어 연구 외에 다른 업무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도 모르게 나는 이상적인 대학원생을 꿈꾸는 철없는 석사 1년 차의 모습이었고, 이에 첫 학기에 수많은 맘고생과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또한 현실적인 시각에서 대학원 생활 (짧으면 2년, 길면 6년) 을 어떻게 보낼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일과 연구와 나의 여가, 건강 등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중에 후배들이 대학원이라는 새로운 길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더 유익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학원 입학과 관련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입학 전에 꼭 한번 고려해보았으면 하는 질문들과 이에 대한 나의 입학 전 솔직한 생각, 현재의 생각을 함께 적어보았다.
1. "학부로는 아쉬워서, 좀 더 배우고 싶어요!" - 설마 이것이 유일한 이유인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학부 때 배운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조금 더 배우고 싶어요"라는 말이 대학원에 진학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석사 입학 결정에 50%가 이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아직 디자이너로 사회에 나가기엔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여러 가지 툴을 다루는 스킬도 부족했고,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머릿속에서 뚜렷하지도,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정체성이 확고하지도 않았다. 이런 부분을 대학원에서 찾고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박사과정 학생으로 지내다 보니 대학원은 그런 이유만으로는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은 학부 때처럼 수업을 들으면서 원하는 공부를 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이전과 다르게 대학원에서는 지정된 지도교수님의 연구실 소속 학생이 된다. 연구실은 하나의 작은 회사와 같아서, 그 소속원인 나는 연구실에 나의 모든 걸 맞추어야 한다. 내 연구주제를 무조건 연구실에서 관심 있는 분야로 잡아야 할 수도 있으며, 연구실 업무를 하느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못 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제약들이 존재한다. 만약 정말 순수한 배움을 추구하고 있다면, 대학원보다는 혼자 휴식기를 가지면서 공부를 하는 게 더 적합할 수도 있다.
2. 나의 배움만 바라보지 않고, 랩을 위해 일부 희생할 준비가 되었는가?
위에서 이야기했듯, 연구실은 하나의 스타트업 회사와 같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는 순간 연구실의 구성원이 되고, 연구실 구성원이 되는 순간 연구실 살림을 꾸리는 하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대학원 연구실은 순수하게 연구만 할 것 같지만, 그에 못지않게 행정 업무들이 굉장히 많다. 연구실을 위해 돈을 벌어보는 것부터 (제안서를 쓰고, 발표하고, 프로젝트를 따오기)), 예산을 짜고 집행하며, 추후 예산 내역을 정리하는 것까지 하나의 작은 살림을 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대학원 생활을 스트레스 없이 잘 보내려면, 이러한 일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사실 이런 대학원 입학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연구실 행정업무가 내 대학원 생활의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 했다. 그렇기에 처음 행정업무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있을 때, 뭔지 모를 짜증이 급습했다. '나는 왜 이런 걸 하면서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기까지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제야 연구실과 나는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더 쾌적하고 비전 있는 연구실에서 지내고 싶다면, 내가 연구실을 그렇게 가꿔야 한다. 즉, 연구실을 위해 나의 시간을 쓰고 인력을 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한 자질이다.
3. 나는 대학원과 산업계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가?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대학원에 가면 대학원에서 추구하는 '연구'라는 프로세스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원은 산업계와 달리 학문을 추구하는 곳이며, 연구 활동은 학계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산업계(회사)에서는 수익 창출이 목표이기 때문에 상업화시킬 아이디어들을 개발하고 실현화시키는 과정이 주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구는 지식체계 구축에 하나의 선을 긋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기존 연구와의 연관성' 및 '본 연구의 가치'를 논리적으로 명명백백 증명해야만 좋은 연구로 인정을 받는다.
내가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단순한 나의 주장은 학술적 관점에서 지식체계에 포함될 수 없다. 아무리 이 연구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논문'이라는 특수한 프레임 안에서는 무조건 다른 연구자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하나부터 열까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서술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과정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은 오히려 산업체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의 결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했다면 '학문 구축에 이바지한다는 연구자의 마인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4. 나는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가?
위에서 이야기했듯, 대학원 입학했다면 최종적으로 '논문'이라는 형태의 결과물을 내게 된다. '논문'은 특정 분야와 관련하여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향성을 제안하며,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를 한다. 첫 번째로는, 실험 및 관찰을 진행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주장을 이끌어내는 귀납적 논리를 따르는 것이다. 실험을 논리적으로 설계하고,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시사점을 잘 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두 번째로는, 기존 연구들과 내 연구의 차이점을 서술하여 내 연구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이다.
이미 대학원 진학에 결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방법에 대해서 자신이 있을 수도 있겠다. 가설을 잘 만들어서,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증명하는 것. 내가 내 연구에 애착을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간다면 마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두 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입학 전에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내 연구와 관련된 수많은 기존 연구를 조사하고, 읽고 정리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나는 심지어 실험을 두 번 할지언정 문헌조사는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어쩔 수 없이, 이 부분은 타고난 성향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물을 꾸준히 50장이던, 100장이던 읽을 수 있는 사람인가? 영어로 된 논문을 다 읽을 수 있는 끈기가 있는가? 논문을 읽을 때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는 것을 잘 하는가? 그리고 관련 문헌 정리를 할 때, 설명문식의 요약본이 아닌, 논설문처럼 잘 서술할 수 있는가?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않는 사람인지 잘 생각해보자.
5. 대학원의 지리적 환경은 나와 잘 맞는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우연한 기회로 고등학교 때 학교를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을 하게 된 이후로 나의 대전생활은 시작되었다. 부모님과 어린 시절 친구들을 멀리하고 타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시내의 북적북적한 거리를 돌아다니고, 천장이 높은 커피숍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던 나이지만, 교내 기숙사에 살면서 기숙사와 강의실을 오가는 나의 모습은 가끔은 매우 우울하고 답답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을 한다면, 이러한 생활을 2년 이상 지속해야 했다. 그나마 수업이 없을 때 시내에 놀러나가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매일 연구실 출근을 해야 하니 못하게 되겠지. 과연 답답한 이 생활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대답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이 문제 관련한 어려움이 많다.
대학원 생활의 퀄리티는 학교 주변 환경에 의존적인 경우가 많은 듯하다. 오전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하는 생활을 지속하기에, 여가활동을 즐기러 멀리 이동하기엔 힘이 들고, 결국 주변에서 해결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또한 본인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사람은 공부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적절한 운동도 필요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줘야 하며, 취미생활을 할 장소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대학원 입학 전에 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법, 그리고 그것이 지리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도 현실적으로 한 번쯤은 해보았으면 한다. 행복해야 하니까! :)
6.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자신이 있는가?
나 같은 경우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진짜? 난 네가 최대한 빨리 서울에 오고 싶어 하는 줄 알았어.” “헐... 계속 거기 있어도 괜찮겠어? 혹시 취업이 안돼서 그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유로 결정을 했든 간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부정적일 때가 많았다. 사실 요즘 우리나라 취업률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많은 학부 졸업생들이 취업이 안돼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러나 대학원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면, 이러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래야 본인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다. 대학원 생활은 생각보다 빡세다. 연구실이라는 사회공간에 적응도 해야 하는데, 본인 연구도 해야 하며, 연구실을 위해 이바지하는 행정업무도 해야 되고, 수업도 들어야 한다. 주변에서 응원을 받으면서 해도 힘든 일인데, 친구/가족/지인들의 시선이 부정적인 것을 이겨낼 수 없다면 더더욱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고민 끝에 본인의 의지로 대학원의 꿈을 품었다면,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끝까지 그 뚝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사실 나도 대학원 입학 당시 모든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 했다. "아직 시작도 안 해봤으니까 잘 모르겠어"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도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이 글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생각의 틀을 열어주는 시작 포인트로써 활용되면 좋겠다. 답이 없는 문제인 만큼, 많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