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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Mar 05. 2020

재택 근무 이튿날 지각을 했다

뜻밖의 리스크로 알게된 우리 회사의 재택 지속가능성

재택 근무 이튿날 팀장의 전화로 아침을 깨는 느낌이란 

그날 하루가 통째로 망쳐지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회사 출근 지각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방이 회사 책상만한 크기보다 작게 줄어들면서 내 눈과 내 호흡기를 압박하고

아... 그냥 이번 재택은 이렇게 망했구나 싶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이미 재택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이 시국에도 목숨 걸고 출근을 하고 있을 겁니다. 


'재택'이라는 걸 떠올릴 때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을 상상하셨나요?

그동안 화장실 갈 때조차 눈치가 보였다면 편하게 몸을 움직이고 사적인 예약이나 카드사, 공과금 등 개인적인 용무로 보다 편하게 전화를 할 수 있겠죠. 

내가 하고 있었던 사이드 프로젝트가 있었다면 자유롭게 시간을 틈타서 가욋일을 하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의 화난 얼굴들을 안 보고 한숨소리를 안 들어도 되는 게 가장 큰 장점일 겁니다. 

물론 출근길에 버스 시간 맞추려, 혹시 지하철 인파에 밀려서 타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는 건 재택의 기본 요건이고요. 

그런 쓸데없는 눈치와 걱정으로 낭비하던 에너지를 아껴서 일에 집중하라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재택에도 지각이라는 변수가 있었습니다. 

재택을 시작하면서 재택자는 8시, 회사에 출근하는 인원은 10시까지 출근하게 됐는데 

8시부터 일해야 하는 제가 8시 반까지 자고 있었던 거죠. 10시 출근자가 8시 반에 일어났다면 무사히 출근을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저는 재택근무자였습니다. 

결국 팀장의 전화와 함께 '출근해라'는 마지막 짧고 귀를 베어내는 것 같은 문장을 듣고 맙니다. 


차라리 나도 출근이 속 편하겠다, 싶습니다. 

실수 하나로 리더의 마음 속에 있었던 불신이 커졌고 

메신저를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하고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됐습니다. 


지각이라는 실수로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재택에 대해서 구성원 간에 합의되지 않은 조직이 재택을 하면 벌어질 일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떠올리면서 하는 각종 로망이 
역으로 사측에는 불신, 의구심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메신저에 더 빨리 답장을 할 것을 원하며 

시스템에 수시로 이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면 계속해서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 시야 밖에 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던지는 의구심이요. 

기본적으로 직원들은 떼어 놓으면 자율적으로 일을 하는 존재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자리잡은 거겠죠. 

아마 지각 사태는 실수의 한 부분이었겠지만 이걸로 팀장은 판단을 했을 겁니다. 

역시나 재택은 아니야 애들이 풀어져, 라고. 


SKT 박정호 사장이 대기업 중에 가장 먼저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던진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것도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재택근무라는 형태가 가능할지
실험을 해보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재택이 가능할지 실험을 한다는 건

일단 구성원들의 자율성, 책임감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리고 설혹 집이라는 환경 속에서 이 친구가 풀어진다고 해도 성과를 낼 사람이라는 것을 

크게 봐서는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거겠죠. 


그게 없는 한 

저처럼 재택을 하면서 오히려 살얼음판을 걷는 일도 많을 겁니다. 


불안해하지 않는 리더와 자율성 높은 조직원이 만날 때 재택은 빛이 날 수 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출근을 시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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