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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Mar 06. 2020

'완벽한 시작'이란 없습니다

여전히 시작 중인 나에게 


춘래불사춘

코로나19 여파인지 어수선한 감에 삼월이면 몸이 기억하던 시작의 기운을 느끼지 못 하고 있다. 

내게 삼월을 떠올리게 하는 감각은 

창유리 사이로 느껴지는 햇살의 온도가 올라간 것 

거리를 스치는 사람들의 외투가 가벼워지는 것 

개강 느낌을 즐길 겸 괜히 아웃백에 가서 런치 세트를 시켜보는 것 

삼월이 되면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약속을 잡는 것. 


구글 포토에서 봄을 검색하니 찾아준 내 사진첩 속 사진. 모교에서 가장 봄봄한 스팟에 목련 봉오리가 슬슬 워밍업을 하고 있다.

창유리를 통과한 햇살이 책상의 종이에 올라 앉은 시간은 길어졌지만 

이전과 같은 봄의 감각을 느끼기 어렵다. 

이 와중에 지난 해 달력을 정리하면서 벌써 물리적인 시간은 삼월 한복판에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다. 

작년의 나를 보면 귀엽고 측은하다. 

'모닝 루틴'을 만들겠다면서 새벽 다섯시반 기상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결혼 전 몸무게로 돌아가겠다며 스트레칭과 스쿼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심지어 휴직 중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브이로그도 생각해보자,고 써있다. 



작년의 나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워킹맘으로서 다시 회사에 돌아가도 아이가 불안하지 않을 정도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몸의 기억을 선물하자는 것이 육아휴직의 본질이었지만 주변에는 쌍둥이 육아를 하면서 책도 쓴 사람, 아이를 키우면서도 가욋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 아이를 키우며 여전히 창업한 회사의 대표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효율성 있게 육아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이의 돌까지 완모를 하고 있고 수면 교육도 미완성으로 끝내 육퇴에 칼퇴란 없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나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육아를 하며 사회와 단절돼 있었지만 여전히 내 촉수는 사회를 향했다. 

그런 차에 생각난 게 독서와 브이로그였던 것. 

그때쯤 나를 잔잔하게 위로해주던 게 유튜버 바보북스의 브이로그였다. 

독일에서 통번역 일을 하며 독일인 남편과 살고 있는 그녀의 일상은 독서와 일 그리고 남편과 함께 보내는 저녁으로 단촐해 보였다. 독서에 대한 관심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어 보였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일터와는 멀어졌지만 시댁과의 관계에서의 몇 가지 문제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던 때였다. 


바보북스의 영상 한 가지를 추천한다면 요오기 ↓

https://www.youtube.com/watch?v=eW7vXXjV9-4

책과 차, 커피, 채식 그리고 남편과의 따뜻한 저녁이라는 단촐한 일상을 꾸려가는 바보북스




브이로그를 해보겠다고 고릴라 삼각대를 주문했지만 

정작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메라 시야에 보이는 모든 걸 치우지 않는 한 

이렇게 지저분한 느낌으로는 정갈한 일상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수많은 브이로거들은 어떻게 밥을 하면서 틈틈이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또 다시 손을 닦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은 촬영만 맡는 누군가의 조력이 있을테고

여유롭지 않을 것이다. 촬영 현장처럼 엄숙함과 날이 선 긴장이 감돌고 있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육아용품까지 더해져 한껏 늘어난 짐들을 시야에서 치우지 않는한 시작은 없을 터였다. 

내 브이로그는 일년이 지나도록 답보상태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최애 채널인 해그린달의 브이로그를 다시 챙겨보게 됐다. 

구독자 30만 정도일 때 챙겨보기 시작하면서 살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는데 

이미 해그린달은 100만 유튜버가 되어 골드 버튼 언박싱을 했다. 

다정한 살림이 부제인 만큼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일상 그 와중에 소소한 자신만의 기쁨을 추구하는 게 

그녀의 브이로그의 핵심인데 놀랍게도 다큐는 저리가라 할 분위기를 풍긴다. 

안정적인 구도에 다양한 각도 (심지어 드론으로 풍경 촬영도 많이 한다) 정갈한 뒷배경, ASMR까지 놓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거기에 그의 일상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자막이지만 그녀만의 메시지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낮잠 시간 1시간을 쪼개서 시작하던 인스타 홈카페 사진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유튜브 역시 일단은 시작해보자고 한 남편의 조언이 있었다고. 

그러면서 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AqZDHdt28&t=158s

해그린달의 영상 하나를 추천한다면 ...  참 정갈하신분:)


새로운 시작의 가장 큰 적은 완벽한 시작입니다.
하다보면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빨리 시작하고, 천천히 고쳐 나가면 그만입니다.



머리를 확 깨우는 말이었다.

빨리 시작하고 천천히 고쳐나가자. 

늘 입으로만 아쉬워할 것인가 

퀄리티가 낮더라도 시작하고 소박한 뿌듯함을 느낄 것인가


완벽한 시작이란 없다는 말을 다시금 새겨본다 

내년에도 내 스스로를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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