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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Apr 27. 2021

'달까지 가자' ... 그들의 해피엔딩

그리고 2017년의 우리들


선배 비트코인이라고 아세요

정동길에서 점심을 먹고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한 잔씩 들고 산책을 하던 중에 후배 K가 말했다.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프러스 잎들 사이로 햇빛이 제법 반짝였던 것을 생각하면, 

후배 K가 입고 있던 흰색 반팔티가 나풀거렸던 것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는 초가을이었던 것 같다. 

고개를 갸웃하자 후배는 지금 비트코인 가격이 400만원에 근접하는데 천만원을 돌파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게 어디있어

이런 반응을 여러 번 겪었는지 흥분을 한 스푼 보태서 이야기하는 후배 K는 원래도 언변이 좋았다. 

하지만 언변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이프러스 잎들 사이를 통과한 가을 햇빛이 그 아이의 눈동자 뒤에서 빛을 쏘아내는 것처럼 

눈이 반짝거렸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눈이 반짝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하는 말에 단숨에 몰입된다. 그리고 믿어주고 싶어진다. 


당시의 나는 흔한 주식 앱 하나 깔아본 적 없는, 재테크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넷마블이라는 회사가 너무 괜찮은 것 같아서 그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게 전부였다. 그때도 전화로도 신청이 가능한 건줄 모르고 점심을 거르고 영업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마저도 청약해 배정받는 주식은 경쟁률로 나눠서 배정되는 사소한 지식조차 모르고 30주를 신청했다가 불행 중 다행으로 29.*의 경쟁률로 간신히 한 주를 건진 사람... 

월급쟁이가 용감하게 통장에 월급을 쌓는

그래서 나의 경제적 미래에 대해 조금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한 해 앞서 비트코인이라는 단어를 에듀윌의 상식책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듣긴 했다. 

모 벤처투자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만났을 때였다. 


"VC분들은 주로 어떻게 재테크 하세요?"

"아 ㅇㅇ도 하시고 소소하게는 비트코인 투자도 하시는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당시의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비트코인을 사고팔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그거 채굴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무식한 질문을 하지도 못했다. 

다만 막연히 머릿속에서 한 VC가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붙잡고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광경을 떠올렸을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몇년을 지켜보면서 - 

그가 말한 소소하게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이들이 

지금쯤 얼마나 저 멀리 가있을지를 상상하고는 한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기회라는 걸 알아채려면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돼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또 나만의 닫힌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참고로 나는 무언가를 저지르는 건 잘하지만

뭔가 실행을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가 좀 어렵다 싶으면 

차일피일 미루다가 시간이 뭉텅이로 지나가있고 하는 경험을 한다. 

미국 주식을 하고 싶다고 몇번을 말했음에도 

또 다른 앱을 깔아야하고 환전이 복잡해 보이고 하다보니 

결심을 한지 일년이 넘도록 아직 미국 주식 투자를 시작해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당시 코** 앱을 깔게 된 건 

후배 K를 시작으로, 가랑비에 옷 젖듯 

매일 같이 비트코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게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친구 S의 남자친구가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친구에게 투자의 전리품을 안겼다는 얘기도 들었다. 

복수의 지인에게서 들으면 신뢰도는 더 높아진다.

그렇게 나는 우리 부서에서 세번째로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무려... 후배 K가 말한지 두어 달이 더 지난 지난 2017년 12월 9일이었다. 


당시 나의 코**앱 입출금 내역. 첫 시작이 2017년 12월 9일이다. /앱 화면 갈무리


투자를 미루게 된 데는 

그 전 달 MBC 백분토론에서 유시민이 토론 패널로 나와서 비트코인을 네덜란드의 튤립에 비유하면서 투자가 아닌 투기라고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가 거품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한번도 비트코인의 실체를 보지 못했지만 그 실체가 윤곽선부터 흐려지는 것 같은 광경을 봤으니까. 


당시는 40만원 남짓한 금액을 비트코인에 넣었다. 비트코인으로 시작했다. 그날의 비트코인 종가는 2,025만원. 며칠 뒤 추가로 48만원을 이더리움에도 넣었다. 이더리움의 수익률이 당시에는 더 컸다. 이더리움 하나 당 가격이 55만원 남짓한 금액이었다.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에서는 이보다 타임라인이 조금 앞으로 간다.

화자인 '나'가 이더리움을 처음 매수한 것은 이보다 칠개월 전인 2017년 5월이다. 

장류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가장 먼저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한 은상언니, 나, 지송은 모두 해피엔딩을 맞았다. 

하지만 이보다 늦게 코인 투자를 시작한 나의 경우 당시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손절도 하지 않은 채 코인원 휴면 계정이 될 때까지 앱을 열어보지 않게 됐다. 


이 책에 대한 정세랑 작가의 추천사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이 책을 덮은 뒤부터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세랑 소설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나도 그랬다. 

일단 나에게는 이 소설이 스릴감 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이들이 결국에 가상화폐가 예정된 그날을 향해 폭락할 때까지 

달까지 가려다가 실패를 맛보는 이야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가격이 오를 수록... 소설 속의 타임라인이 앞으로 갈수록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예정된 결말에 벌써 씁쓸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에게 해피엔딩을 선사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했다. 왜 이들은 대한민국의 상당수의 사람들이 맞닥뜨린 결말 대신 해피엔딩을 얻었을까. 


그들은 어째서 해피엔딩이 됐을까. 그리고 나는 왜 아닐까.의 한탄조 이야기를 하기보다 

내가 왜 가상화폐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조금은 맛보게 됐는지

재테크 한 번 관심을 갖지 않던 내가 어떻게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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