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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동하다 Jan 11. 2019

누군가의 위성이 된다는 것

엄마에게 받은 반영구 패치

어릴 적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은 행운 혹은 성과를 얻으면 

이를테면 학생회장에 당선되거나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거나 하는 이벤트가 있을 때 

'나니까' 내 삶에는 조금은 특별한 길이 열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유년기의 묘한 자신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체과학자들이 행성분류법을 바꿔 명왕성에게서 행성 지위를 박탈한 것처럼 

내가 항성이 아니고 수많은 행성 중 하나였다는 걸 알아채는 날이 온다.  


시간이 갈수록 나 자신은 특별하지 않으며 

'평범함'도 계속 헉헉대며 달려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그렇게 평범함을 숙달하며 취업, 결혼, 출산의 행로에 다다랐을 때 

내 특별함은 나 덕분이 아니라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초강력 패치 덕분이었다는 걸 안다. 

한 효과가 이십년은 되는 반영구 패치. 


요새 봄동(태명)이는 11주차에 접어들었다. 

부쩍 성장하려는지 젖을 물지 않고는 계속 보채고, 애써 젖을 주면 젖을 문채 잠이 든다. 

잠을 잘 때도 괴상한 꿈을 꾸는지 이내 자지러지게 놀라서 십분 이십분만에 방으로 뛰쳐들어가기 십상이다. 

자다가 놀랄까봐 잠든 아이 옆에서 계속 팔을 감싸주는 나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에겐 혹시 꿈에서라도 놀랄까봐 옆을 지켜주던 엄마가 있었구나 


혈액순환이 안 돼 차가운 아기 발을 가슴과 배를 눌러도 놀라지 않는 나를 보면서 

차가운 발을 피부에 들이대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던 엄마가 있었구나

외로운 이 세계에도 나를 중심으로 도는 내 위성 하나는 있었구나 


그리고 지금은 그 엄마가 손주를 예뻐한다. 

이런 순간은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참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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