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제 Apr 25. 2018

엄마와 딸이 함께 본 레이디 버드

영원히 어려울 모녀관계에 대하여

추천을 많이 받았던 <레이디 버드>를 친한 친구M과 보았다. 고등학교 말부터 지금까지를 함께 해 온 친구라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낄낄거리고 눈물도 조금 훌쩍이며 즐거운 관람을 했다. 모녀관계에 대한 섬세한 감정 묘사에 감탄을 하며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 엄마와 함께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까지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최근 회사에서 나온 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전보다 자주 마찰을 겪고 있다. (물론 사춘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고백하자면 몇 달 전 엄마와 단 둘이 동유럽 여행을 다녀오며 느낀 이야기를 브런치에 써볼까 하면 엄마와 다툼을 하고 글을 쓰기 싫어지기 일쑤였다.ㅋㅋㅋ


이십 대 초반 잠시 본가에서 나와서 살 때가 있었다. 심적으로 힘든 시기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땐 어쩜 그리도 엄마와 애틋해지던지 통화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불거지고 울먹거리게 되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이 상태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바로 끝이 났다.


사진출처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우리나라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거의 신격화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모성애로 가득 차 있으며 마치 아이가 태어나는 동시에 모성애는 마구 샘솟고 언제나 아이를 위해서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숭고한 존재로.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성애는 누구에게나, 같은 정도로 한순간 생기지 않으며 엄마는 완벽하지 않다. 엄마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이 항상 아이에게 좋은 영향으로 미치지 않는다. 엄마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했던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갔을 수 있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아이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동안은, 아니 아직까지도 이런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시선으로 비치지 못한다. 이런 말을 하면 매정하고 정 없고 감사를 모르는 인간으로 단정 짓기도 한다.


하지만 모녀관계는 이런 단순한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엄마와 내가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가장 공감한 부분 중 하나인데 영화에서는 엄마와 딸이 졸업 무도회에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며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딸 레이디 버드(크리스틴) : "그냥 예쁘다고 말해주면 안 돼?" 엄마 매리언 맥퍼슨 : "난 네가 늘 네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어" 레이디 버드: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나 좋아해?" 엄마 : "당연히 사랑하지" 레이디 버드 : "나도 알아. 근데 날 '좋아'하냐고"


엄마는 나를 위해 정말 많은 희생을 했고 나를 사랑한다. 나도 그걸 안다. 그러나 엄마가 과연 나를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을 때가 많다.


사진출처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가끔 엄마와 내가 모녀 관계가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 혹은 친구관계로 만났을 때 과연 잘 맞는 인간으로 지낼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글쎄 모르겠다. 일단 엄마와 나는 성격이 너무 다를뿐더러 같은 것을 바라볼 때에도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어떤 부분에 가치를 매기는지 등 정말 다른점이 많기 때문에. 물론 이는 많은 부분 세대차이에서 온다.


그래서 이것은 영화에서 처럼 감독 그레타 거윅도 말했듯이 엄마와 딸 중 한 사람이 옳고, 다른 한 명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안타까울 만큼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모녀 관계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엄마와 함께 <레이디 버드>를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보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부분이 분명히 다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역시나 영화를 본 소감은 달랐다. 엄마는 이 영화에 대해 나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말했다. "너도 저랬을 때가 있었어.", "아주 혼자 다 컸지 그냥! 근데 저때는 나 키우는데 얼마 들었냐고 소리치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을 거야", "그땐(사춘기) 왜 그렇게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니?, 뭐.. 나 들어오지 말라고 그랬겠지..", "그래도 쟤가 한수 위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지 않아줘서 고마워"


재미있었다. 엄마는 정말 엄마의 관점에서 공감하고 영화를 관람했다. 엄마가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사춘기의 딸이 엄마에게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엄마는 어떤 감정이었을지였다. 위의 물음을 보면 여전히 그때의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 못한 채로 영화를 본 것이다.


사진출처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러나 나는 딸의 관점에서 엄마가 레이디 버드에게 '다 잘 되라고 하는'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쏟아부을 때 레이디 버드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왜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렸는지, 아직 미성숙하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를 강요할때의 당혹감이 어떤지, 엄마에게 날 좋아하냐고 물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공감했다.


흥미로우면서 조금은 씁쓸했다. 예상했고 당연하지만 부푼 마음으로 함께 본 영화에 엄마는 나만큼의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어느 카페를 갈지 정하려고 할 때 엄마와 나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아 정말 안 맞아~"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러게 너도 너랑 잘 맞는 엄마랑 만났으면 좋은 곳도 많이 가고 얼마나 좋았겠니"라고 답했다. 엄마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이런 말은 나에게서 금방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엄마는 덧붙였다. "네가 나를 엄마로 선택해서 나온 건 아니니까.."


사진출처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그렇다. 나는 내가 스스로 엄마를 선택해서 나온 것이 아니며, 엄마는 엄마 뱃속에서 이런 딸이 나올지 몰랐을 거다. 그리고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고 나도 딸은 처음이라 계속 엄마와의 관계가 어렵다.


레이디 버드가 답답한 고향이며 엄마의 보호 속에 있는 둥지인 새크라맨토를 떠나 뉴욕에서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과는 다르게 모녀관계의 균형을 찾는 것을 보면 나도 역시 건강한 모녀 관계를 위해서 빠른 시일 내에 집을 떠나 독립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알고 있다. 엄마와 딸의 복잡 미묘한 관계는 독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이어질 것을.

작가의 이전글 이번 생에 내 집 마련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