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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릴 Aug 11. 2020

세계일주를 다녀왔다 - 3번째 이야기

어떻게든 출발은 했는데


"그럼, 다녀올게요."


 마치 친구네 집이라도 가는 듯한 말을 던지고 등을 돌렸다.

걱정스러우면서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부모님의 모습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우리 가족은 나 포함 3명뿐이지만, 맞벌이 가족의 특성상 집에 전부 모여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 날은 다행스럽게도 토요일인지라 두 분의 얼굴을 보고 떠날 수 있었다.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하긴 한데, 어쩌겠는가. 이제 와서 '아 생각해보니 이건 조금 아닌 것 같아' 하고 때려치우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가장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쯧쯧...


집을 떠나 한참 지난 후에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고 늘 지나가던 길을 지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를 지나고, 익숙한 길을 지나쳤다.

이렇게 바이크에 오른 채로 한국을 떠나,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 끝까지 간단 말인가?


아직까지는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다.


대전 시내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든 방향으로 느껴졌다. 지금은 가끔 짐을 가득 싣고 달리는 바이크를 종종 볼 수 있지만, 2015년 만 해도 이렇게 사람 1명 분량의 짐을 가득 싣고 달리는 바이크를 시내 한복판에서 보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대전은 더욱 그랬다. 신호대기 중에도 앞뒤 옆의 차 안에서 사람들이 날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주말 오후 1시의 북적이는 대전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들어서자 도로를 오고 가는 차들이 줄어들면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 목적지는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러시아로 갈 수 있는 페리를 탈 수 있는 강원도 동해시의 동해항이었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 상 모터사이클은 고속도로를 달릴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국도만 이용해야 했다. 이동 루트는 아래와 같았다.


대전 > 청주 > 충주 > 제천 > 영월 > 태백 > 동해


6월 말의 온도는 바이크를 타기에 더없이 좋았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최고의 출발이었다. 아니, 출발인 줄 알았다.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을 순서대로 꼽아보자면, 이 첫 번째 날도 만만치 않은 순위에 있을 정도였다.


일단 짐이 너무 많았다. 전쟁통에 피난이라도 가는 모양새의 내 바이크에는 캠핑장비, 정비 부품, 거의 2~3주 치의 식량과 사계절 옷들로 가득했고, 결국 사람 1명 정도의 무게를 차지했다. 나는 이때까지 이렇게까지 무거운 짐을 싣고 바이크를 오래 타 본 적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몇 번이나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고, 강원도 산자락 어딘가에서 경사를 무시하고 잠시 세워둔 바이크는 결국 옆으로 넘어졌다. 넘어진 바이크는 짐 덕분에 너무 무거워 한 번 넘어트리면 모든 짐을 다시 풀고 바이크를 세운 다음, 다시 짐을 묶어야 했다.


이런 게 옆으로 넘어지면, 그냥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그리고 강원도 동해는 생각보다 먼 곳이었다. 대전에서 동해는 내비게이션으로 보면 300km 정도의 거리였다. 단순 계산으로 시속 80km/h로 달리면 넉넉잡고 5시간 정도면 도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온갖 여유는 다 부리면서 점심도 잘 챙겨 먹고 집을 나왔는데, 자동차로 가는 300km와 바이크로 가는 300km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이 날 처음으로 알았다. 우리나라 길이 이토록 험했단 말인가?


그래도 충주까지는 적당히 뻗은 국도를 시원시원하게 달렸는데, 제천을 지나 본격적인 강원도 산간지방에 들어서니  끝없는 코너링과 가파른 비탈길의 환상적인 콜라보.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강원도 길은 대부분 자동차용 고속도로였다. 오르락내리락 길에 커브 지옥의 산길이 한없이 이어졌다. 평소 바이크를 탈 때는 신나게 와인딩을 할 수 있어서 그렇게 좋아했던 길이었는데, 굽이굽이 진 길을 하염없이 달렸더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던 대전의 하늘과 달리 강원도는 먹구름이 깊었고, 해가 지면서 온도가 뚝 떨어졌다. 거기에 숲 속이라 그런지 안개가 자욱하다 못해 비 맞은 것 마냥 옷이 촉촉이 젖었다. 한참 정신없이 달리다가 허기가 졌다. 잠시 바이크를 세우고 갓길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전 근처와는 다르게 산세가 가파른 것이 보였다. 6월의 강원도의 산은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복잡했던 머릿속이 비워지며 내 마음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이런 씨ㅂ...'


너무나도 깊고 진심 어린 마음의 소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동해항에 도착해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밤 9시. 오후 1시에 출발했는데 첫날부터 8시간이나 달렸다. 태어나서 가장 긴 시간 동안 무언가를 운전해보고, 같은 자세로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하... 온몸의 관절이 다 삐그덕거리고 무지무지하게 피곤했다.

생각해보니 출항 시간이 다음 날 오후 1시 30분이었는데, 당일 오전에 출발했으면 배를 타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올 뻔했다. 전쟁터 나가는 사람처럼 친구들과는 뜨거운 포옹과 함께 무사귀환을 다짐하고, 부모님과는 멀쩡히 돌아오겠다고 눈시울 붉히며 빠빠이 했는데 배를 놓쳐서 허허 웃으며 집에 돌아가면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그 이전에 만약 배를 놓쳤으면 오토바이는 동해에 놓고 버스 같은 거 타고 돌아갔을 거다. 다시 또 8시간을 어떻게 달려? 미치지 않고서야 깔깔깔


첫날부터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나는 드디어 한국을 떠난다. 위대하고 역사적인 도전이 시작되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위대하다는 뜻이다.

그냥 그렇다구 뭐..


그렇게 2015년 여름. 인생 마지막 순간에도 떠올리며 웃을 것이 분명한, 그런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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