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와 진심

by 미나리






누구나 흉터 한 가지는 갖고 있다. 몸에 난 것이든 마음에 난 것이든.

그 지워지지 않는 아픔의 자국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2017년 12월 7일, 다음날이면 떠날 베트남으로의 여행 계획에 들떠있었다. 그런 채로 회사에 새로 들인 제함기 작동방법을 직원들에게 시연하고 있었다. 그것은 박스를 자동으로 접어 만들어주는 아주 편리한 기계인데, 특수한 상황에선 센서에 직접 손을 대서 가동하면 된다는 설명을 하는 찰나에 사고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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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면장갑 중지 끝부분이 붉게 물들었고, 급히 아빠(겸 사장님) 차로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 힘겨운 웃음을 지으며 절단이라 얘기를 드렸더니 되려 화를 냈다. 인근에서 응급처치를 마치고 돌아와 구급차를 기다리며 걱정해주시는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요즘 의료기술 좋다며. 접합은 수술도 아니라며. 그렇게 (멀쩡한 쪽)손을 흔들며 '잘 붙이고 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난생처음 환자로서 구급차에 올랐다.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환부가 너무너무 아팠다. 퇴근시간 고속도로를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모르는 사이 지역에서 이름난 전문병원에 도착했다.



겨울의 낮은 짧아서 출발할 때 떠있던 해가 저물어있었다. 다행히도 관절을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잘 마무리되었다. 여행 준비를 해야 될 시간에 이게 웬 병상인가 싶은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꼼짝없이 병원 생활에 들었고, 전문 간병인이 24시간 케어해주는 집중치료를 받았다. 그 며칠 동안 오른손은 움직이지 못해서, 왼 팔은 링거와 진통제 등으로 주렁주렁, 심지어 씻지도 못하게 해서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4일째 되던 날 오전에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침밥 먹었어?라는 말을 겨우 완성시키고 전화기 너머로 오열하며 무너지는 아빠가 있었다.



경상도 아빠의 눈물은 드물다. 더군다나 가족 앞이라면 더욱더. 언제나 고함지르는 아빠와 수화기 너머 울고 있는 아빠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사고로 인해 나는 겉에 드러나는 상처를 입었지만, 아빠의 아픔은 속에 새겨졌다. 사고 당일 응급처치를 위해 인근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가 지어 보인 웃음은 아빠를 안심시키려는 실소였고 그런 내게 성질을 마구 쏟아낸 건 사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픈 마음을 건강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가난과 삶에 치여 마음의 여유가 적었던 시절을 거쳐왔던 아빠에겐 더욱더. 그래서 진심에 가까워질수록 공격적이게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가족의 사고엔 진심이 본능처럼 드러난다. 어쩌면 아빠의 불 같은 성격은 진심을 감추기 위한 얇은 허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허세가 허물어진 그 전화 한 통으로 나 또한 아빠에 대한 마음의 장막을 차츰 거두었다.



그 후로 감정의 온도가 높은 아빠에게 맞서기보다 이해하기로 했고, 그래도 힘이 들 땐 농담과 유쾌함으로 대했다. 겹겹이 쌓인 미움도 헤아리면 속에서 천천히 중화될 문제들이었다. 아빠도 가끔씩은 너무 열 내지 않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주었다. 진심은 그렇게 서서히 아빠를 힘겨운 존재에서 친구 같은 존재로, 나는 말을 않던 아들에서 이제는 종알종알 말이 너무 많아졌다며 하소연을 하게 만드는 아들이 되었다.



우리가 맺고 사는 관계들이 모두 이상적일 수는 없다. 다친 손가락을 이으며 남겨진 흉터처럼, 진심과 진심 사이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할 때도 있다. 갑작스러웠던 사고는 하노이와 다낭 대신 아빠의 속마음을 들춰 관계의 결을 달리 해 주었다. 못 떠난 여행이 아른거리지만 상처를 통해 삶의 정수를 발견한 것, 내겐 그것이 더 가치 있는 경험이다.





절단의 흔적이 새겨진 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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