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보통 한국인들은 수학여행지로 많이 다녀와서 경주를 특별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때는 왕릉 이런 게 중요한가. 친구들이 더 중요하지. 공간은 잘 안 보이게 되지. 게다가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잖아. 그만큼 관심이 안 갈 수도 있지. 한 번쯤은 혼자 가볼 만한 곳"
-스포츠 동아 장률 감독 인터뷰 중
그렇다. 나도 초등학생 때 경주에 수학 여행 간 적이 있지만 도시의 풍경은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그 시절엔 경주를 당연한 수학여행지 정도로 여겼다. 성인이 되고 경주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친구들의 우정 여행지로 각광 받을 때는 유명한 관광지에 흥미가 없던 터라 관심에서 배제됐다. 작년 추석 드디어 경주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찾았다. 장률 감독의 영화 <경주>를 본 덕이다. 제목이 곧 배경지인 영화 속 경주 풍경에도 반했지만 영화에 담긴 메시지와 얽힌 이야기를 접한 순간 당장 떠나게 됐다. '능'이 참 보고 싶었다. 문화재로만 생각하던 그것이 아이들이 타고 노는 미끄럼틀 쯤이라면, 첫 사랑과 산책하던 곳이라면, 누군가가 그리울 때 바라보는 곳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렇게 경주행 버스를 탔다. (두 번째 이유는 최 현(박해일)이 찾던 '춘화'가 보고 싶어서다. 다음 포스팅 '춘화'편에서 이야기 하기로!)
집 앞에 능이 있으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경주에선 능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
영화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찻집 여인으로 등장하는 공윤희(신민아) 대사다. 실제로 경주엔 대릉원처럼 문화재로 지정된 공간이 아니더라도 능이 널려있었다. 집 앞, 시내, 카페 앞, 식당 앞에 거대하고 고운 선 뽐내고 있더라. 앞서 말한 공간들은 살아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감정을 나누고 허기를 채워 생명을 연장하고, 걷고 뛰며 활기를 띄는 곳이다. 죽은 공간에서 삶이 펼쳐지는 셈이다. 너무 재밌지 않은가. 장률 감독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공윤희라는 인물로 나타낸 게 아닐까. 시종일관 곧은 자세로 움직이고 큰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이는 윤희는 노래를 부르다 강선생(류승완)에게 흰 꽃을 건네 받는다. 또 능에 올라 그 속에 누군가에게 말한다. "저 거기 들어가도 돼요?" 사연 있는 듯한 그는 산 자인지 죽은 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위 영화 장면처럼 능 위를 올라 앉아 보고 발라당 누워도 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 능 주변을 달리기만 했다. 느린 곳에서 빨리 뛰니 기분이 좋았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사는 코앞에 왕릉이 있으니까. 중국도 왕릉이 없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무덤을 싫어한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왕릉과 더불어 살더라. 1995년도에도 거기서 연애도 하고 술판도 벌어지고 그랬지. 영화처럼 능에 올라갈 수 있냐고? 안돼. 영화에 보면 무서운 관리인이 있지 않나. 아마 영화를 보고나면 아무도 안 올라 갈 거라 믿는다. 하하"
7년 전 경주 찻집 '아리솔'에서 보았던 춘화가 생각나 다시 경주를 찾은 북경대 교수 최 현(박해일)은 능 앞에 앉아 시민들의 일상을 본다. 경주 사람들은 능을 뛰놀고 자라 능에서 연애도 한다. 처음엔 그 모습이 참 좋아보이다가 문득 무덤 주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죽은 자가 어쩐다고, 능 속에서 귀를 막고 시끄러워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위 인터뷰 내용처럼 지금은 왕릉 보존을 위해 능이 훼손되는 행위가 금지돼있다. 당연한 일이지만은, 어쩐지 다행이라 느껴졌다.
최 교수의 주변엔 알 수 없는 죽음이 계속 일어난다. 그가 경주에 오게 된 계기도 7년 전 아리솔에 모인 지인 중 한 명의 장례식이다. 경주에 도착해 우연히 두 번이나 마주친 모녀의 동반자살 소식, 지나가던 폭주족의 사고사 목격, 본인과의 잠자리로 인해 생긴 아이를 지웠다는 옛 애인인 여정(윤진서)의 고백, 공윤희 남편의 죽음, 메말라 버린 하천. 글로 연달아 나열하니 께름칙하다. 하지만 영화는 죽음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공윤희 남편이나 모녀의 죽음은 이유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각각의 인물들은 화도 내고 욕망을 비치기도 하지만 죽음 앞에선 이상하리만치 담담하다. 모두 이미 죽은 자 같기도 하며,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은 어쩌면 일상이다. 영화 경주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 145분 동안 최현의 일상에 죽음에 관한 여러 일화를 넣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작년에 좋아하는 이들의 소중한 분들이 세상을 떠났고 최근엔 또래인 유명 가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근했던 배우는 급작스런 사고로 사망했다. 영화 속에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살아 있었지만 현실은 이 세상 사람인 것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다른 이의 죽음에서 내 부모의 죽음, 나의 죽음이 보여 두려웠다. 또 어떤 죽음에 내가 가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산 자들이 죽은 자와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가 산 자에겐 고통인 것이다. 천천히 눈물의 늪에서 일어나 일상을 회복하는 사람들 하늘에 초승달이 뜨기를 바란다. 도시 경주에서 바라는 이런 염원이 내게도 그들에게도 닿았으면.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
능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으로 온 경주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는 글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영화 경주에 나오는 시와 대릉원에서 마주한 하늘로 끝을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