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드라마 <미란다>, 독립 서적 <나는 오늘도 브래지어를 안 했다>
<미란다>는 나의 최애 영국 드라마다. 34살 미란다는 파티를 싫어하고 장난감을 좋아하며 집에서 과일과 가구들에 눈을 붙여놓고 함께 노는 유쾌한 사람이다. 키와 덩치가 커서 남자로 오해 받거나 44살로 불리기도 한다. 당황하면 노래를 부르거나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불러 늘 곤경에 처한다. 그의 엄마는 딸이 얼른 결혼하길 바라지만 온갖 일에 간섭하여 아기처럼 다루고 남편과의 성생활을 매일 자랑하는 못 말리는 사람이다. 미란다는 남자인 친구 개리를 좋아하는데 혼자 착각하고 혼자 흥분하여 늘 일을 그르친다. 하지만 그의 주변인들도 만만치 않게 특이하다. 불편한 구석 없이 자꾸 크게 웃겨서 너무 사랑한다. 덤벙대고 넘어지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사회에 대하여 늘 불만인 어른이 미란다가 너무 재밌어서 나는 매일 뒤로 넘어간다. 정말 웃겨 미친다.
에피소드 하나 말하자면 미란다는 청소년 시절 성교육을 이상하게 받았다. 수영장 한가운데 비키니 입은 여자가 튜브에 누워있는데 그것이 난자이고, 쫄쫄이 수영복을 입은 많은 남자들이 수영장에 뛰어드는데 그것이 정자였단다. 선생은 이것이 수정이라 했고, 부연설명도 없는 웃긴 그 설명에 미란다는 어이가 없었다. 미란다의 친구는 수영장에 들어가면 임신이 되는 줄 알고 근처에도 안 갔다고 한다. 개 어이없다는 미란다의 표정을 보여주고 싶다. 정말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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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고등학생일 적에 뉴스 하나를 보았다. 어떤 여자가 수영장에 놀러 갔다 임신했다는 내용이었다. 성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되었는고 하니, 누군가 수영장 물에 사정을 해서 정자가 그 어떤 여자에게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황당무계했다.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재수 없고 충격인 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너무 랜덤적이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서 더 그랬다. 공공장소에 함부로 정액을 배출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오줌을 잘 못 참는 어린 아이도 그렇게 싸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수영장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물에 들어가는 곳은 모두 꺼려했다. 여자만 있는 대중목욕탕 여탕의 탕도 싫어해 습기 찜질방만 이용한다. 아예 목욕탕 자체를 잘 가지 않는다.
미란다의 개 어이없는 표정은 내 표정과 같았다. 우리 여자들에게 블랙 코미디는 차고 넘쳐 그런 표정을 아주 자주 짓는다. 오늘도 책방에서 <나는 오늘도 브래지어를 안 했다>를 사서 읽는 내내 미간 주름이 펴지지 않았다. 뉴스에 자주 나오는 사건처럼 혹시 누가 갑자기 나를 팰까 봐 지하철에서는 제목을 조금 가리고 읽었다. 책 읽는 평범한 여자 사람의 하루는 이렇다.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분노하고 별난 영국 여성 미란다를 보며 폭소한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한 사람에게라도 닿아 그가 참았던 웃음과 화남이 해소되기를 바라면서. 그런 상상을 하면서 글 쓰면 기분이 조크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