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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솔 Mar 26. 2019

도쿄 에노시마의 양지

<양지의 그녀>2013

 

햇수로 2년이 다 되었다.

2017년 1월 <양지의 그녀>를 감상한 당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마오(우에노 주리)의 마지막 모습이 놀랍고 따뜻하여 당장 양지 바른 그 섬으로 달려갔다. 


영화 <양지의 그녀> 스틸 컷

영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인물에게 몰입하여 합리화를 즐긴다. 촬영지 도쿄 에노시마에 도착한 그날 햇볕이 유난히 강해서 시야에 빛이 자꾸 침범하였는데, 그것 또한 내가 마오의 마음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라 여겼다. 에노시마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섬이다. 내가 갔던 날 만큼 구름과 햇살이 좋은 날은 행운이라고 했다. 바닷가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귀여운 까마귀 발자국을 보며 불길의 징조가 된 일이 씁쓸하다 생각했고, 같이 있는 친구가 해에 비쳐 빛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영화 <양지의 그녀> 스틸 컷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쪼그리고 앉아서 나뭇가지로 모래를 뒤적일 때 그르릉 소리를 낸 것이다. 저기 바다를 구경하는 내 친구가 모르도록 추가로 냐옹 – 거리기도 했다. 에노시마는 일본의 여러 고양이 섬 중 하나인데, 나는 고양이 정체를 숨기고 갔으므로 한번은 드러내고 와야겠다 싶었다. 바람도 세게 불고 태양도 강렬한 것이 나를 부추기는 모양새였다. 이 이야기는 비밀이 아니다. 그 친구만 빼고 많이 떠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대체로 웃었다. 너는 나의 진지함을 알아주길. 



근처 카페에서 <양지의 그녀>를 다시 볼 계획이었지만 걷다 보니 모니터 밖을 완전히 경험하고 있는 시간이 좋아서 영화를 보지 않았다. 


앞에서 잠깐 구름이 좋다고 언급하였다. 그 모양을 어찌 설명하면 좋을지 몰랐다. 태어나 이렇게 끊이지 않는 구름은 처음이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그것들에 사방으로 둘러싸였다. 구름길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빛은 계속됐다. 거기에는 나의 본 모습들이 살고 있었다. 어느 고양이는 고고한 꼬리 모양을 하면서 인간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똑똑하고 능숙했다. 바람에 날리는 신사의 천들과  섬 위에서 나뭇잎 사이로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질 때는 내가 아는 색깔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신비롭고 다양한 빛깔이 섞여 하늘에 깔렸다.



입꼬리 올라가는 지난 기억을 되새긴 이유는 최근 <양지의 그녀>가 재개봉해서다. 반가운 마음으로 오늘 영화를 보았다. 2년 전, 반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눈이 동그래졌던 내가 귀엽게 느껴졌다. 다시 일본에 가게 된다면 역사 탐방을 다짐했기에 에노시마 재방문은 미지수다. 사실 가지 않을 생각이다. 딱 한번만 존재하는 시간을 갖겠다. 신비롭고 푹신한 구름과 맑고 파란 하늘에 힘 센 태양, 마을을 가로지르는 에노덴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을, 고양이의 몸으로 느끼고 왔다. 영화와 나의 여행이 끝났 듯 내 속의 고양이도 소멸되었다. 마오의 마지막 말 따라 고맙다는 소리를 그곳에 이미 전하고 왔다. 나는 그저 양지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오늘을 보내었다. 이제 그르릉 소리는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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