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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Jul 08. 2019

<버닝(2018)> OST 분석

소음과 음악의 경계에서 영화에 스며드는 OST 

버닝(2018) 

감독: 이창동

음악: 모그(Mowg)


줄거리 

문예창작과 졸업 후, 유통회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종수는 고향 친구 해미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해미는 종수에게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 중에 만난 벤을 소개해주는데, 벤은 소시오패스 같은 섬뜩한 면이 있는 사람으로, 돈은 많은데 직업은 없고 인생을 재미로 사는 한량이다. 

셋은 종수네 시골 고향집에서 대마초를 피우다 벤이 종수에게 비닐하우스를 두 달에 한 번씩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 날 이후 해미는 자취를 감추고, 종수는 비닐하우스가 사실 해미를 말한 것이라 여기고 벤을 미행하며 증거를 찾는다. 마침내 벤의 집에서 해미의 손목시계와 해미가 키우던 고양이 보일이를 발견한 후 확신이 든 종수는 어느 겨울날 벤을 불러 죽이고 시신을 벤의 차에 넣어 불태운다.


음악적 특징

테마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종수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정식 음원으로 나온 스코어들이 쓰이고, 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음악감독 모그가 직접 작곡했지만 사운드 트랙에는 없는 내재적 음악이 나온다.

내재적 음악이 적극적으로 쓰이는데, 음악감독 모그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내재적 음악이 삽입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접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종수가 나오는 장면의 스코어들은 두 곡(Dream, Suffer and Suffer)을 제외하고는 모두 메인 테마(Buring)에서 변주된 형태이다. 사용된 악기가 독특한데, 베이스 기타, 클래식 기타와 함께 메인 테마의 타악기와 현악기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속 악기가 사용되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의 악기별 연주자 목록에 따르면, 악기들이 Basses, Guitars, Piano, Keyboard, Drums, Percussions, Strings로 구분되어있는데, 

음악감독 모그와 이창동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의 인터뷰를 참고하면 Percussions와 Strings는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민속악기로 추정된다.

벤이 나오는 장면의 내재적 음악들은 주로 피아노, 첼로와 같은 클래식 서양악기들이 많이 쓰인 반면 종수가 나온 장면의 스코어들은 민속악기와 베이스 기타가 사용되었다.

피치카토 기법이 서스펜스를 증폭시킬 때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소음과 음악의 경계에서 영화에 스며드는 음악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음악이 기억나지 않았다. 

스코어 개수가 많지는 않지만 악기와 음색이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음악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앰비언스에 가까운 음악이었다. 배경음이었는지 멜로디가 있었는지 희미하게 기억났고, 긴박한 상황에서 텐션과 서스펜스를 극도로 강화시켰던 어떤 “소리”가 있었다는 기억만 남았다. 모그 감독이 작곡한 버닝의 스코어들은 소음과 음악의 경계에 서있었다. 감독의 연출의도 또한 음악이 음악같지 않게, 소음같게 들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속 악기를 사용해서 그런지 처음 들어보는 음악의 형태에 이질적이라고 느끼면서도 오히려 그 이질감이 메인 테마를 마치 앰비언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음정이 없는 타악기는 앰비언스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도 비슷했고, 전화벨 소리와도 비슷했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보면 멜로디가 뚜렷하게 있는 음악이었다. 

직설적으로 텐션과 서스펜스를 강화시키는 음악이 아닌 어쩌면 독특한 민속악기와 멜로디로 혼자 노는 것 같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묘하고 미스터리한 서스펜스를 주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단어로 표현하자면 스미는 음악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앰비언스성 음악은 아니고 분명히 멜로디가 있는 음악인데, 마치 앰비언스 처럼 스미는 인상을 주었다. 베이스 기타라는 아주 현대적인 악기와 아프리카,아시아의 전통악기가 어떻게 보면 이질적인 조합이었지만 그 색다른 조합과 리듬이 불협화음같은 앰비언스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나가며 영화에 스며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물과 공간을 대비하는 음악

벤과 종수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대비되는 인물들이다. 반포동의 고급빌라에 살면서 직업은 없고, 재미만 있으면 뭐든지 다한다는 벤과 파주의 논 가운데 있는 허름한 시골집에 살면서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전전하며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아버지도 신경써야하는 종수. 이 둘은 성격도 대조적이고 사는 공간도 극명히 다르다. 영화 속 음악은 이 대비를 한층 더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메인테마가 변주된 사운드 트랙 전부는 외재적 음악이고, 종수가 나오는 장면에서 나온다. 민속악기와 베이스 기타로 연주된 음악은 때로는 잔잔하지만 때로는 종수의 내재적인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미행, 살인에서 메인테마와 현악기의 피치카토 기법이 사용되며 불협화음스러운 멜로디와 타악 연주를 통해서 긴박감과 종수의 내면의 불안감, 분노를 표현한다.

반면 벤이 나오는 장면에는 항상 내재적 음악으로, 벤이 있는 장소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나온다. 내재적 음악은 삽입곡을 제외하면 대부분 음악감독이 직접 작곡한 것이다. 피아노와 잔잔한 기타 소리로 이루어진 여유로운 재즈풍의 음악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유일하게 종수가 보지 못한 벤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는 첼로의 화음과 아코디언 혹은 오르간으로 추정되는 악기도 피아노 선율과 함께 어우러진다. 여유롭게 즐기고 모든걸 재미로 여기는 벤의 입장을 밝고 여유로운 재즈, 뉴에이지 풍의 음악들이 대변하는 듯하다.

이렇듯 벤과 종수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각각 사용된 악기가 다르고, 그 사용된 악기와 다른 선율들은 두 인물과 그 인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대비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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