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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May 04. 2024

초보를 키우는 낯선 이들의 다정함

일상으로 돌아온 후 나는 운전을 해야 했다. 한국에서 간신히 면허만 따서 온 사람인지라 이곳이 내가 운전 걸음마를 처음 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운전이라는 게 모두가 하는 것 같아서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여차하면 사람 목숨, 재산 날릴 수 있는 거대한 무기인지라 그 주체가 내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다. 심지어 차가 빌린 차면 더 그렇다. 나라 상황상 차를 사기 어려워서 랜트를 해서 쓰고 있는데, 남의 차에 흠집을 낼까 봐 너무너무 무섭다. 내 차면 좀 긁고 찌그러져도 허허.. 하면서 다닐 수 있겠지만 남의 차는 너무 미안하고 더 잘 고쳐줘야 하지 않는가...


이런 얼레벌레 초보 운전자는 지금까지 남편 슬하에서만 운전을 해왔다. 보조좌석에 남편을 앉히고 "그쪽 좀 봐줘!!"를 외치며 못하겠으면 "오빠가 해줘 ㅠㅠ" 카드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남편을 직장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을 데려다주고 15분가량을 혼자 운전해서 주차까지 해야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

사실 딱 한 번 남편 없이 운전을 시도했다가 범퍼를 찌그러뜨린 일이 있었다. 초보자들의 흔한 실수라는 후진기어 안 놓고 직진해 버린 것... 앞에 있는 기둥에 박아버렸다.




너무 당황하고 무섭고 손이 벌벌 떨려서 무슨 정신으로 주차했는지 모르겠고, 차 키도 못 빼서 근처에 있는 기사 아저씨께 거의 울면서 도와달라고 했던 이력이 있다. 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다른 차를 타고 집에 갔다가 남편이 차를 가지러 갔었다. 사고는 내가 치고 수습은 남편이 하는 걸 보니 우린 정말 가족이 되었구나...(큼큼)... 싶었달까. 그래도 사람 안 치고 다른 차 안 박고 나 안 다치고 박은 기둥도 별 흠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속도가 있지 않아서 기둥은 타격이 없었던 것 같다. 휴...


남편을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첫날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하고 반가운 것이었던가. 평범과 무난한 일상은 꽤나 치열한 삶과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으며 + 부산물인 뿌듯함을 획득했다.

사실 운전 자체보다는 주차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첫날 주차한 모습은 이랬다.


선에 맞추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누군가 쉽게 하는 것 같다면 그 사람이 고수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세상 모든 선 안에 주차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래도 일단 차 어디에 안 박고 안 긁고 크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멈춰 세웠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내렸다. 사실 몇 번 더 시도하다가는 뭐라도 박을 것 같아 두려웠다.



이 첫 번째 날이 사실 많이 뿌듯했다. 엉성해도 발전하고 있다는 이 성취감에서 오는 도파민을 막을 길이 없었다. 도파민에 취해 얼른 다음날이 와서 멋지게 운전해서 이번엔 선 안에 주차를 하는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역시나 운전은 괜찮게 잘했고 주차는 여전히 어려웠다. 왼쪽에 보이는 저 빨강 노랑 화단과 정말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들어갈 정도만 남겨 두고 긁지 않았다.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차하면서 세 번은 내려서 어떻게 주차가 되고 있나 살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다시 주차한 모습이다.



그래도 이번엔 선 안에 잘 들어왔다. 주차장 한편에는 기사 아저씨들이 모여 앉아 있는 곳이 있는데, 내가 주차를 하거나 차를 뺄 때 너무 버벅거리니까 아저씨들이 점차 나를 구경한다. 몇몇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도와줘야 하나? 하는 몸짓과 표정을 보인다. 생판 모르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내 옆에 전문가들이 있음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이 안심과 주차 긴장은 별개...


두 번째 날까지 무사 출근을 하니 그렇게 자랑스럽고 기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게 교만이라는 마음일까... 나보다 늦게 끝나는 남편을 데리러 가는 길에 장을 좀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이 미덕이거늘,... 나는 그런 미덕 따위는 미더덕과 함께 무쳐 먹은(?) 그런 주제 파악 못하는 교만 덩어리다.

마트 주차장 까지는 잘 들어갔다. 하지만 남편이 걱정한 대로 이 주차장은 길이 좁고 차가 많다. 다행히 내 뒤에 따라오는 차는 없었지만 뻥 뚫린 곳에서도 주차를 잘 못하는 내가 이런 곳에서 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아 그냥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도 난 나를 너무 믿는 오류를 범하는 어리석은 교만덩어리였다... 주차칸에 주차할 곳이 없으면 차를 기차처럼 세로로 대는 곳이 있는데, 일단 거기가 직진이랑 후진만 좀 잘해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차들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 확보를 위해 벽에 얼마나 잘 붙이는지가 관건인데, 역시나 나는 여러 번의 시도를 했음에도 그 간격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보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저기 주자 자리 있다며 나를 불러주셨다. 그걸 봤지만 나는 여기에서도 못하는 주차를 그 좁은 주차 자리에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도리도리 +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버벅거리는 나를 계속 보시더니 주차요원을 불러서 저기 주차하게 하라고 일러주곤 떠나셨다.


결국 주차요원이 안내해 주는 곳으로 갔지만 역시나 좁아터진 주차박스와 충분하지 못한 후진 공간은 나를 패닉에 빠뜨렸다. 정말 나는 최선을 다 했다. 진짜 이건 진심이다. 최선을 다 했는데... 퍽! 사이드미러가 뒤로 꺾여버렸다. 더 꺾이지 않도록 앞으로 살짝 갔는데 왠지 문이 기둥에 좀 닿은 것 같다고 나의 실낱같은 본능이 이야기해 줘서 그대로 멈추고 내렸다.


정말 다행인 것은 사이드미러는 뒤로 접힐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만큼 살짝 접힌 거라 부서지진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저 기둥과 닿아버린 문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망할 놈의 내 운전 실력과 쿠크다스 같은 내 멘털과 발발 떨리는 손이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진짜 눈물이 살짝 맺힌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저기 주차요원이 한 명 있었다. 불러서 주차 좀 해달라고 하니 내 차의 상태를 보며 약간 심각한 표정과 함께 동료들을 불렀다. 뭔가 고수의 향기가 풍기는 분께 차키를 넘기고 주차 좀 해달라고 했다.

계속 내 차와 기둥이 뽀뽀한 모습을 보며 '너무 가까운데...'를 이야기하며 내가 외국인이라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하길래 "아냐!! 나 미얀마어 알아듣고 말할 수 있어!! 도와줘!!!" 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 정도면 거의 애원하는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그 와중에 옆에 있던 어려 보이는 주차요원이 "한국인이에요?"하고 한국어로 물어봐서 "네ㅠㅠ 도와주세요"를 연신 외쳤다. 어눌하게 "괜찮아 괜찮아"라며 다정하게 말해주는 그 직원에게 정말 고마웠지만 나는 이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확인해야 정말 괜찮아질 것 같았다. 다행히 그들은 고수가 맞았다. 내 차를 잘 빼서 전방주차까지 완벽하게 해 주었다. 진짜 눈물 나게 다행인 것은 차 문은 괜찮고 손잡이만 긁혔다는 것이다.


연신 "감사합니다ㅜㅜ"를 외치며 마트로 올라갔다. 정육 코너에 가서 고기를 사는데 거기 직원이 고기를 담다가 내게 매우 친절하게 천천히 "이거는 호주산이라 비싸. 로컬 고기가 지금 더 좋은데 싸."라고 알려줬다. 하지만 이미 고기를 담은 상황이어서 번거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자 "바꿔줄까?"라고 물으며 내 작은 끄덕임에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고기를 바꿔 담아 주고 가격까지 친절히 이야기해 줬다. 순간 '뭐지 나 지금 좀 불쌍해 보이나? 왜 이렇게 아기 대하듯 친절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정했다. 덕분에 세 배나 저렴하게 더 좋은 고기를 사고 나머지 장 볼 것들을 집어 들어 계산대로 갔는데, 아뿔싸. 생강 무게를 재고 바코드를 받아와야 하는데 그냥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것들 코드 찍는 동안 급하게 가서 무게 재주는 직원에게 생강을 내밀었다. 보통 무게 재고 바코드 붙여서 별 말은커녕 아이콘텍 한 번 없이 무심하게 건네주는데 이 직원은 "여기 있어. 얼마야. 다음에 또 보자~"하며 엄청나게 다정하게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뭐지... 세상이 지금 날 가엽게 보나? 나 주차 못하는 거 소문났나?' ㅋㅋㅋ 말도 안 되지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 만난 모든 직원들이 너무나 친절함을 넘어 다정했다.


사야 할 것들을 사고 주차 도와준 분들께 드릴 음료수를 사서 내려갔다. 음료를 건네며 아까 정말 고마웠다고 하니 이런 거 받으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받으라고 너무 고마웠다고 했는데, 손님에게 뭔가를 받으면 안 되는 규칙이 있단다. 주위를 보며 눈치까지 보는 걸 보니 CCTV가 있거나 꽤나 예외 없는 규정인가 싶었다. 괜히 내 고마움을 표현하겠다고 이걸 억지로 쥐어줘 봤자 상사에게 욕 얻어먹을 것 같아서 음료수는 못 주고 고맙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러자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알았던 직원이 더듬더듬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만나서 반가운 건 내가 더 반가웠습니다 ㅠㅠ 그대들 없었으면 나는 문짝을 날리고 울면서 남편한테 전화하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마트에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이 거기 사람이 많아서 주차 빨리 못하면 욕먹을지도 몰라.라고 했다. '아니 자기들은 초보였을 때가 없었나? 빨리 안 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되받아쳐야지!' 하며 영어로 싸울 멘트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을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몇 명이나 만난 건지... 일단 전투태세부터 갖추고 있었던 내 모습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주차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지만 그래도 나의 서툴음을 용납해 주며 다정히 도와주는 타인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감사했다. 나도 누군가 서툰 모습을 보이며 나를 기다리게 하고 실수를 했을 때 어눌하더라도 상대의 언어로 '괜찮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주차 자리를 봐주던 아주머니, 주차를 도와준 세 명의 주차요원들, 정육코너 직원, 무게 재주는 직원들, 그들의 삶 속에도 다정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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