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되면 만 서른이 된다. 10년을 3번 꽉 채워 살았다는 것이 이렇게 뿌듯할 줄 몰랐다. 계란도 30개를 모아 한 판이라 하는 것처럼 인생의 큰 한 판을 채운 기분이랄까. 너무 어린애 같지도, 너무 어른 같지도 않은 적당히 미숙하고 적당히 성숙한 그런 나이, 서른이다!
최근 이런저런 과정 속에서 남편에게 '그래서, 이걸 하는 목적이 뭐야?'라는 질문을 들었다. '그러게. 내가 왜 이런 걸 하려고 할까. 왜 하고 싶을까. 내 인생의 목적은 뭘까.' 하는 생각이 그때부터 은근히 내 주위를 맴돌았다. 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은데, 요즘은 묵직함 없이 가벼운 재미 위주로만 살았던 것이 들킨 것 같았다. 곧 생일도 다가오니 미뤄왔던 이 질문에 답도 할 겸 서른이라는 깃발을 멋들어지게 꽂아 놓고 지난 삶과 맞이할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졌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지난 삼십 년간 나는 무엇을 향해 살아왔고 앞으로 무엇을 향하며 살아갈 것인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교실 앞 초록색 부직포 판에 우리 반 꿈 나무가 있었다. 반 아이들이 적은 꿈들이 알록달록 열매처럼 붙어 있었는데, 내 꿈은 '사회복지사'였다. 대부분 아이들의 꿈이 '대통령' '의사' '판사' 같은 것일 때 나만 뜬금없는 '사회복지사'였던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사회복지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니?' 물으셨던 기억이 있다. 만 10년도 안 살아본 애가 사회복지사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뭘 알았겠는가. 나는 그냥 '사람들 도와주는 사람 아니에요?'하고 대충 넘겼던 것 같다.
이 것 보다 더 어린 시절로 가면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모님은 아직도 종종 이야기해 주시는 에피소드가 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설소대 수술도 하기 전이라 매우 혀 짧은 발음으로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줄 거야'라고 했단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고 실제로 본 적도 없었던 어린아이가 그런 이야기를 해서 놀랐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다. 그리고 돌고 돌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1 전공은 아니었지만 2 전공으로 결국 초등학교 때 꿈을 문자 그대로 이뤘다. 하지만 처절하고 치열했던 10대와 20대 중반까지를 살며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평생을 한국 경쟁사회에서 살아봤는데, 나는 경쟁에 능한 사람이 아니다. 능력이 부족할 수도, 똑똑하지 않은 것일 수도, 게을러 도피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내가 나를 20년 넘게 집중 관찰한 결과 나는 경쟁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내 일을 인정받는 것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어차피 될 수 없는 1등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사느니 적당히 여유롭고 만족스런 5등쯤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했다. 첫 미얀마 방문에서 그 맛을 봤고, '내가 필요한 곳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라는 생각으로 조금 트랙을 벗어나 달리다 보니 지금은 꽤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끔 누군가 내게 그래서 경력 쌓아서 어디로 갈 건데? 어디까지 승진할 수 있는데?라고 물으면 민망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직장을 통해 이룰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하며 지금 일이 무척 마음에 들고 계속 이런 일을 하고 싶을 뿐이지, 어떤 자리에 올라가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것이 '젊은 사람이 야망도 꿈도 없네'로 보일까 봐 솔직하게 말하기 민망하지만 부끄럽진 않아서 결국 솔직하게 말하곤 한다.
10대까지는 '돕는 사람'을 꿈꿨고, 20대 때에는 '여유와 자유가 있는 삶'을 꿈꿨다. 30을 앞둔 지금 돌아보니 나는 다 이루었다. 심지어 그 어린 시절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어려운 사람들 도와줄 거야' 까지도 이룬 삶을 살고 있다. 작년에만 비행기를 십 수 번 탔으니 말이다.
꿈을 구체화하고 이루는 것에 큰 집착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내가 꿨던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이루어져 있었다. 줄곧 스스로를 의심했지만 막상 뜯어 결과를 보니 꽤 괜찮게 살았다 싶어 다행이다.
지난 인생의 계란 한 판을 참 잘 채웠다는 만족감이 든다. 좌충우돌 어리바리 미숙함으로 삐쭉대기도 엄청했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있고 만족함을 누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의 서툴음과 거칠음이 싫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고맙다. 마음껏 깨져봤기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얻었고, 고통스러웠던 만큼 그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견디고 깨지고 뛰쳐나오고 상처받고 상처 줬던 그 지난날들이 가엽고 미안하고 안쓰럽지만 동시에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기쁘다. 그것의 훈장들이 지금 내 삶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제 두 번째 인생 계란 한 판을 어떻게 채울까 생각을 해본다. 다시 한번 내 인생의 목적, 나의 사명을 수면 위로 올려본다.
'돕는 사람'
이건 내가 착해서 사람을 돕겠다는 것이 아니다. 늘 이야기하고 스스로 되새기는 것이 직업이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해서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연결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것은 삶의 목적, 이 생을 사는 동안 해야 하는 사명일 뿐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하지 못하다.
고백하건대, 지난 30년간 사회복지사, NGO 활동가, 봉사자 등으로 타인을 돕는 것을 꿈꾸고 도우며 살아왔지만 정말 타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위해 타인을 도왔다. 돕고 싶은 마음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을 도왔고, 그 과정에서의 보람과 기쁨이 좋아서 도왔다.
이제 서른의 깃발을 꽂으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이기적이고 미숙하고 그렇고 그런대로 넓고 얕게 만족스러웠다면 다음 30년은 좀 더 성숙의 영역으로 깊이 가봐야겠다.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아닌 타인을 진심으로 위하고 돕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다음 30년 동안 이뤄갈 성숙에 색과 향과 맛의 깊이를 더 해줄 궁극의 것이라 믿는다.
바로 '사랑'
완벽한 타인이었던 사람과 관계를 맺고 평생을 함께하자는 약속인 결혼까지 해보니 더 깨닫게 된다. 사람은 타인을 '진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에도 단계가 있고 그 단계의 가장 끝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의 세상으로 내려와 함께 거하며 어떤 외, 내적갈등 속에서도 '사랑'하기에 결국 목숨까지 내어 주며 '네가 내 안에 내가 너 안에' 거하는 그런 사랑말이다. 감정적으로 좋아서 가여워서 충동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과 결심으로 손을 내밀고 책임까지 지는 그런 사랑.
하지만 사람이 정말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본질적 의구심이 든다. 불완전한 존재가 그렇게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본인도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가 타인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 끝에 가장 유사한 사랑을 부모에게서 찾았다.
부모를 위해, 남편/아내를 위해,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다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자녀를 위해서는 대부분의 부모가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녀가 아플 때 내가 아프고 싶고, 내가 대신 죽어도 좋고,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말하며 책임까지 져주는 존재가 부모 아닌가. 물론 그 부모도 사람이기에 불완전하고 부족한 사랑을 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가장 유사한 형태의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녀를 낳고 기르고 싶다. 그 사랑을 경험해 보고 싶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이 그렇게 끔찍하게 힘들고 아프다는데 그럼에도 예뻐 죽겠고 사랑하며 너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 하는 그 감정과 그 마음과 생각은 뭘까. 그 맛을 봐야 비로소 나와 타인을 진정 사랑하며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30대를 맞이하며 나는 자녀를 낳기로 결심했다. 내게 궁극의 사랑의 맛을 가르쳐 줄 스승을 세상으로 모시고 싶다. 최선을 다 해 애쓰고 고통스러워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책임지고 그렇게 나의 사랑의 깊이에 정점을 찍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배워 구현할 곳을 직장이 아닌 내 삶에 만들어야겠다. 직장에서 하는 돕는 일이야 일을 그만두면 끝나는 일이니까 작게라도 나의 한 가닥을 잡고 그 사랑을 구현하고 성숙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을 만들 것이다. 지금 머릿속에 있는 이 그림을 어떻게 구현해 갈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이 것은 장기 프로젝트다. 조급함이 삶의 8할이었던 지난 30년 동안 배운 것은 조급함은 결국 빨리 식게 만든다는 것이다. 천천히 뭉근하게 앞으로의 30년을 덥혀 보고 싶다. 사골 같은 진한 성숙의 풍미를 위해서!
그리고 글을 계속 써야겠다. 무엇이든 꿰어야 쓸 수 있다는데, 뭐라도 잡아 꿰어 놓아야겠다. 별거 아닌 것들이라 넘겼던 것들을 꿰어보니 30년의 꽤 괜찮은 인생이 된 것처럼, 앞으로도 소소하고 따뜻하게 하나씩 꿰어 걸어 놓으며 나의 두 번째 인생 계란 한 판을 채워 보려 한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보며 고개 끄덕일 수 있도록 성장노트를 적어 두는 것이다.
언젠가 8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모아나에 나오는 모아나 할머니! 가오리들과 바다와의 춤을 즐기며 여유로운, 손녀 모아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바다로 나가 해낼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천진난만하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만약 내 인생이 90까지 라면 이제 3분의 1을 살았다. 그리고 이제 3분의 2 구간을 시작한다.
나 이제 진짜 서른이다! 남은 삼 개월 동안 20대를 만끽하고 30대를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