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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May 25. 2024

거저 얻은 '최저'의 선을 당연히 누리지 말자는 다짐

이제 한국에서는 최저시급이 9,860원이 되면서 하루 8시간을 일하면 최소 78,880원을 벌 수 있다. 미얀마는 최저시급이 없다. 최저일급만 있을 뿐. 최저 일급은 4800짯, 한화로 약 1600원 정도이다.


NGO, INGO, 선교, 사회복지, 심지어 국가에서도 늘 궁극적으로 애쓰는 것은 '안정된 일자리 창출'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작은 사업을 하고 있다. 일이 없는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일을 제공하고 인건비를 주는 것이 우리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이기에 일당 15,000짯(약 5천 원)을 주고 있다. 이제 한 번 해 보는 사업이고 본 업무가 따로 있는지라 아직은 정기적이진 못하고 알바의 개념이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의 평균 일당이 5,000짯에서 10,000짯이다. 기술이 있어 잘 받으면 15,000짯 정도 받는다고 하니 실내 단순 작업에 불과한 우리의 일에 15,000짯을 주는 것은 살짝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많이(?) 버는 맛을 보면 더 이상 보통의 일급으로 돈을 받고 일하지 않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정적인 수입을 통한 생계 안정과 빈곤 탈출을 돕고 싶은 것이지, 그들을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다. 또한 시장을 파괴해서는 안 되기에 사전에 충분한 조사와 분위기 파악을 하고 명분 또한 있야 한다.


하지만 모두가 '너무 많이 준다'라고 하는 하루 15,000짯을 실제로 8시간 꼬박 서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손에 쥐어줄 때 그 기분은 참 묘하다. 다른 일 보다 수월하고 더 주는 것인데도 그 돈이라 불리는 종이 쪼가리가 어찌나 얇게 팔랑거리던지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 밀려들어온다. 사실 15,000짯이면 시내에서 마라탕 한 그릇 가격도 안 된다. 요즘은 동네 허름한 tea shop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5천짯이 넘는다. 나는 한 끼에, 어쩌면 사이드 음식으로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그 15,000짯이 그들의 8시간 노동의 대가라는 것이 참 이질적이다.


저번 달 UNDP 보고서에 미얀마 인구 전체의 49.7%의 하루 수입이 1,590짯(약 530원/$0.4) poverty line 아래 있다고 발표했다. (world bank에서는 하루 $1.25를 절대빈곤선으로 지정했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단다. 조사하던 때가 23년 10월이었는데, line 바로 위 아슬아슬한 사람들이 25%나 되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50% 이상의 사람들이 poverty line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이는 미얀마의 가난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보고서에 hit the bottom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 앞에 오래 머물렀다. 그들의 빈곤의 수준은 바닥을 쳤다. 바닥을. 미얀마의 GDP가 동남아 최하다. GDP성장은커녕 -17%가 넘었다. 보고서를 읽으며 눈물이 났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통계와 자료로 가득한 그 보고서를 읽으며 이렇게 눈물이 날줄은 몰랐다.


한 사람이 창출해 낼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매우 적기 때문에 당연히 일급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동의한다. 미얀마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일급이 적은 이유를 알 것 같을 때가 있다. 효율과 효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면 알바생 1명 있을 공간에 8명은 기본으로 있기도 한다. 식당에 가면 문만 열어 주는 사람이 따로 있고, 상 닦는 사람, 얼음 넣는 사람같이 매우 자잘한 것들을 나눠 사람을 쓰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한 사람의 수입을 결정하는 많은 퍼센트는 출신 국가와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개인의 노력도 물론 영향을 주지만 그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은 그저 주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얀마인 팀장의 몇 배의 월급을 받는다. 나는 한국 기준으로 하면 최저에 가까운 적은 급여지만 팀장은 미얀마에서 꽤 높은 수준의 급여다. 내가 더 경력이 있고, 더 능력 있어서, 더 노력해서 더 많은 수입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그리 똑똑하지 않아도 부모님의 정성스런 돌봄과 양질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 정도 받고 이 정도 누리며 산다.

미얀마의 곳곳을 다니다 보면 '내가 만약 이런 곳에 태어났으면 뭘 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미얀마 동료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뭘 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 내가 받아온 교육을 받고 그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몇 배는 높은 수입이 있는 사람이 되었겠지 싶다.


같은 알바를 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미얀마에서 태어났기에 하루 5천 원을 받고, 누군가는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8만 원에 가까운 돈을 받는다. 개인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거저 얻은 '최저'의 선을 당연히 여기며 누리기만 하지는 말자는 다짐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성경의 달란트 비유처럼, 많이 가진 자에게는 더 많은 책임이 있다. 내게 주어진 높은 최저의 선으로 깊은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동아줄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직업은 나를 쳐서 겸손하게 만든다. 가끔은 아프고 가끔은 버거워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이 나의 calling이라 믿기에 감사하고 기쁘다. 그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계란으로 바위 깨기 같이 느껴지는 무기력함을 이겨내는 애씀이 앞으로도 많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일 자리와 나은 일급을 쥐어 주고 싶다. 미약한 사업이지만 더 열심히 해서 몸집이 커지고 미얀마 직원들 만으로도 굴러갈 수 있도록 늘 그렇듯 나는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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