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lim Aug 15. 2024

언제나 친절을 선택하는 사람이 될 것.

"In a cruel world, always choose to be kind"


요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늘 심상치 않은 비상식의 나라였지만 요즘은 좀 더 그렇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혼란스럽다. 차 연료가 없어서 주유소 줄이 거의 6km 가까이 서 있어서 두 차선이 먹혀 버리니 차가 엄청 막힌다. 기름이 없으니 택시가 없다. 어제 나는 30분을 걸어서 퇴근을 했고 오늘은 길에서 한참을 서 있다 간신히 택시를 잡아 탔지만 평소라면 10분도 안 걸릴 길을 40분 넘게 걸려 왔다. 차를 가지고 회사에 가는 남편도 기름을 아끼기 위해 다른 곳에는 절대 가지 않고 오직 출퇴근만 하고 있다. 환율은 일주일에 15% 정도가 오르더니 어제는 하루 만에 15%가 뛰어서 모두가 패닉에 빠졌고, 오늘은 조금 내렸지만 매 순간 환율이 널뛰기를 해서 환전소가 환율을 정확히 알려줄 수 없었다. 환전하기로 확답을 주는 순간 환율로 환전해야 하는 것이다.(무슨 주식 같다...) 물론 문 닫은 환전소들도 많다. 

먹는 기름과 쌀, 계란도 구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가격 측정에 손을 대고 제재를 가하면서 마트에는 물건이 없고 널 뛰는 환율로 가격도 계속 오른다. 한 달 전에 3600에 샀던 계란 10개가 어제는 5000이었다. 기름은 종류를 막론하고 자취를 감췄고 내가 먹던 쌀도 없어서 결국 인터넷으로 아름아름 알아 구입했는데, 구입하고 이틀 뒤부터 가게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쟁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으로 사람들은 겁을 먹었고, 여긴 괜찮겠지 싶지만 다른 심각한 지역들은 철수가 권고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적긴 어렵지만 정말 많은 흉흉한 소문들과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뉴스들이 속출하고 있다. 


오늘 사무실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우리 기관과 함께 일하고 계신 분 중 한 분인데, 부모님 또래의 싱글이시다. 처음에는 사무적인 통화였다. 여쭤보신 것들을 안내해드리고 있는데, 점점 이야기가 사적으로 흘러갔다. 이런 것이 힘들고 저런 것이 힘들고, 이것도 모르겠고 저것도 모르겠고,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업무 시간이기도 하고 T의 성향이 좀 더 있는 사람인지라 이런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가는 것이 고민스러웠다. 사무실에 다른 현지 직원들도 있는지라 내가 한국어로 사적인 통화를 오래 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나라 상황이 이런데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시고 해내시기에 얼마나 힘드실까 싶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다. 점점 휴대폰과 부딪히는 귀가 아프고 사무실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게 미안해서 회의실에 들어가 서성거리며 한 시간 20분가량을 통화했다. 


통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본인의 좀 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한국에 계신 가족의 상황 때문에 어제 밤새 울었고 오늘은 자신의 상황 때문에 아침 내내 울었다고 하셨다. 심지어 이틀 전부터 단수가 되었고 지금은 전기도 끊기도 밖에 비는 너무 무섭게 오고 동네 인터넷 선에 문제가 생겨서 인터넷도 끊기셨단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해외 살이인데 일은 너무 고되고, 그 와중에 그나마 가깝게 지냈던 두 분이 암과 정신 질환으로 한국으로 귀국하셔서 더 뒤숭숭하고 외롭고 본인도 걱정된다고 하셨다. 나이가 드니 여기도 저기도 아프고 이게 혹시 큰 병의 징조일까 걱정도 되고 말이다. 말하자면 끝도 없는 슬픈 이야기들을 마무리하시며

 "그래도 간사님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요. 간사님이 지금 제 유일한 친구고 위로예요."라고 하셨다. 


와,... 그때 정말 마음이 덜컹했다. 

나는 그저 사무적으로 시작해서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거 업무시간에 너무 딴짓하는 거 아닌가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이어갔던 대화가 이 분께는 유일하게 편하고 위로가 되는 대화였다는 것에 철렁했다. 내가 만약 그냥 사무적인 대화로만 마무리하고 애써 끊어버렸다면 이 분은 더 마음이 상하시고 그 물도 전기도 인터넷도 친구도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더 혼자가 되었을 테다. 


얼마 전에 SNS에서 "In a cruel world, always choose to be kind"라는 문장을 보았다. 

잔혹한 세상에서 언제나 친절을 선택하라는 저 말이 매일 아침마다 택시 아저씨 때문에 화가 나는 내가 새겨 들어야 하는 말 같아서 다이어리에 적어뒀었다. 전화를 끊고 책상에 앉으니 펼쳐진 다이어리에서 이 문구가 보였다. 



친절을 선택해서 정말 다행이다. 친절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친절을 선택한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선택의 순간에 친절을 선택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얼마든지 친절이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세상이 정말 미쳐 돌아가고 있다. 이 나라는 상식의 범주를 넘어선지 오래고, 매일매일 오늘 하루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고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을 가정법으로 말할 수밖에 없고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몇 가지 비상식량을 사며 얼마나 사야 하지 지금 이거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보면 내가 왜 여기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할 때가 정말 있다. 기름이 이 지경이니 차 얻어 타는 것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외국인이고 내가 체감하는 것과 현지인들이 체감하는 것은 꽤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당장 본인 월급의 가치가 반토막이 나고 있으니 말이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대부분 제너레이터가 없는 집에 살고 있어서 전기가 계속 있지 않다. 모두가 예민해지고 불안한 상황이다.


정말 잔혹한 세상이다. 그리고 친절은 절로 나지 않는다. 누구랑 비교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겠지만 나도 내 인생이라는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마냥 친절하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애를 써서 친절을 선택하는 것이 선한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걸 오늘 체감했다. 

언제나 친절을 선택하는 사람이 될 것. 다시금 다짐한다. 

작가의 이전글 거저 얻은 '최저'의 선을 당연히 누리지 말자는 다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