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지난 두 달 동안 비행기를 열 번 탔고 지갑에는 미얀마 짯, 태국 밧, 라오스 낍, 미국 달러가 이리저리 섞여 있었으며 캐리어는 비워질 틈이 없었다. 그전에 고민하고 마음 쓰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날만큼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위한 준비에 몰두했던 시간이었다.
미얀마 아이들과 라오스에 다녀왔다. 라오스에 작은 축구대회가 있어서 12살 정도 된 남자아이들 11명을 데리고 갔다. 사실 내가 갈 일이 아니었는데, 담당하신 분이 다른 일정이 생겨서 절반정도의 날을 내가 인솔하게 됐다. 이동하는 날 하루, 축구대회 이틀, 라오스 관광 하루, 태국 관광 하루의 일정이었다.
빈민가 아이들이라 해외여행은커녕 동네 밖을 나가본 경험도 거의 없는 아이들이었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해서 새벽에 출발했는데 어두컴컴한 그 시간에도 반짝이는 눈으로 트럭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상기된 목소리로 '안녕하세여~'를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어 인상 찌푸리고 나온 나와 무척 대비되어 보였다. 한 달에 한 번은 타 지역 또는 해외를 다니는 사람로서 '첫 해외여행'의 감동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척 활동적인 편이라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지만, 이때에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곳을 분주하게 다니던 중이라 설렘보단 피로가 더 쌓여 있었다.
이번 출장은 내가 따로 준비할 것이 없었다. 그냥 주최 측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아이들이 경기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휴가라고 생각하고 오세요!'라고 하셨던 터라 반신반의하면서도 이 번 출장 끝나고 또 중요한 일정이 있으니 그전에 약간 머리 식힌다고 생각하고 다녀오자! 는 마음으로 방향을 정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잔뜩 긴장했다. 공항으로 들어갈 때 검문이 있는데, 외국인이 미얀마 아이들을 데리고 출국하려고 하니 이상하게 보이는지 질문도 많고 외국인들은 저리 가라고 하고 아이들에게 너희 왜 나가는 거냐 험악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죄지은 것도 없고 제시할 서류들도 다 있지만 공권력 앞에 잔뜩 겁부터 먹는 미얀마 아이들이 참 딱했다. 그래도 무사히 공항에 들어와 수속을 마치니 아이들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출국 전 공항 Departure 전광판 앞에서 사진 찍는 것이 미얀마 국룰이라 아이들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아버지가 한국분이라 비행기를 몇 번 타봤던 아이가 있었는데, 처음 비행기를 타는 아이들에게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고 '뭐야 ㅋㅋ 아직도 그런 농담을 ㅋㅋ' 했는데 보딩 할 때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신발 벗어?' 서로 묻는 모습에 '와 이 농담이 먹히는 상황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싶었다.
방콕에 내리자 비행기 멀미에 안색이 안 좋은 아이도 금세 얼굴이 피었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감탄했다. 빈민가 사람들이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거의 가문의 영광에 가까운 일이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가족들이 하나씩 쥐어 줬다고 한다. (응팔에서 수학여행 가는 덕선이에게 카메라를 쥐어줬듯) 가문의 영광의 순간들을 남겨오라고 했는지 아이들은 휴대폰을 끌 새가 없이 찍어댔다.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저 옛날 화질의 카메라지만 최선을 다 해 찍고 또 찍었다. 방콕 공항 화장실 옆 음수대를 보고도 '이거 미얀마에 없는 거야 찍어놔!'라며 물 한 번씩 마셔보고 서로 찍어주고, 지나가는 로봇청소기에게 인사도 하고 앞에서 춤도 추며 '처음'들을 즐겼다.
호텔 도착해 카드키를 나누어 주었다. 카드 키를 꽂아야 전기가 들어오고 나올 때에는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일러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참가하는 국가의 아이들과 한 자리에 모여 축구대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시간을 가졌다. 저녁은 작은 뷔페식이었는데, 배식하는 분들이 한국분들이셨다. 너무 한국 기준으로 밥을 조금씩만 배식해 주셨는데, 아이들이 눈치 보며 말은 못 하고 그대로 받아와 순식간에 다 먹고선 서로 '더 받아와도 돼?'하고 있었다. 한국도 조선시대 때에는 밥을 그렇게 많이 먹었다는데, 지금 한국 사람들이 밥을 그전보다 적게 먹는 것은 밥 말고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반찬거리들이 많아져서인 것 같다. 미얀마에서는 여전히 밥을 많이 먹는다. 쌀 종류 자체가 찰기가 없어 금방 허기가 지는 탓도 있겠지만, 가난할수록 반찬 할 거리가 없어 짠 젓갈에 비벼 먹거나 자극적인 반찬 조금에 밥을 잔뜩 먹는 게 보통이다.
아이들 여럿이 우르르 가서 여러 번 밥을 퍼 오는 게 어수선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눈치 보느라 양껏 못 가져올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큰 접시에 산처럼 볶음밥을 쌓아 가져오니 순식간에 아이들이 나눠 가져가 먹었다. 무엇을 더 먹고 싶냐고 하니 볶음밥이 제일이었고, 치킨 몇 조각 정도를 주문했다. 그렇게 볶음밥을 5번 정도 더 퍼왔다. 이 정도면 대형 밥통 한 통을 다 먹었지 싶다. 이렇게 잘 먹는 아이들인데 밥을 주먹만큼만 주시니 긴장해서 더 달라고는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난감했을까 싶어 웃음이 나왔다. 이후로도 식사시간마다 아이들이 눈치 보느라 말 못 하고 있진 않은지 살피며 밥을 대접씩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매일같이 배 곪는 아이들일 텐데 여기서라도 많이 먹고 배부르게 살쪄서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서부터는 온전한 나의 몫이 시작되었다. 회의에 참석하고 같이 온 스텝들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건강과 유의사항들을 챙겼다. 잘 때가 되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들이 결국 발생했다. 아무리 새로운 것들이 눈을 띄게 해도 편안히 눈을 감게 하는 건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지 싶었다.
첫날 밤에는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애들끼리 호텔방에 둬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됐다. 발코니가 있는데 거기서 장난치다 넘어가면 어쩌나, 뜨거운 물 잘 못 틀어서 화상 입으면 어쩌나, 에어컨 조절할 줄 몰라서 너무 춥게 자면 어쩌나 등등 ㅋㅋ 너무 과한 생각하지 말자 아이들을 믿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애써 잠들었다.
다음날, 아이들은 모두 멀쩡하게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자고 있었는데 내 방 벨을 누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탓에 더 늦장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래 얼마나 신나겠니... 잘 못 잤다는 아이들도 있는데 컨디션은 아주 최상인 것 같아 보여 다행이었다. 그런데 한 명이 울고 있지 않은가..? 어디가 아픈가 싶어 이유를 물으니 카드키를 안에 꽂아 두고 나왔단다. 자기 못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호탕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아래 가서 열어달라고 하면 된다고 조식 먹는 동안 해결해 놓겠다고 안심시켰다. 경험의 폭이 좁으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어렵다.
조식을 먹으러 갔다. 아이들에게 어디에 어떤 음식들이 있는지 보여주고 주문할 수 있는 음식들을 알려주고 손으로 음식을 잡으면 안 된다, 걸어 다니며 먹지 말아라 일러주었다. 매일매일 뷔페라니 신나나보다. 쌀국수가 맛있어서 나는 매일 조식으로 쌀국수를 열심히 먹었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태국 아이들과 함께 탔다. 잠시 졸고 있는데 아이들이 깔깔깔 웃는 소리에 깼다. 다른 어른들 모두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 정도로 아이들은 자지러지고 있었다. 살펴보니, 글쎄... 서로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웃고 있는 것 아닌가...
태국아이들이 태국어로 블라블라 말하면 미얀마 아이들이 "무슨 소리야!!"하며 웃고 미얀마 아이들이 미얀마어로 블라블라 말하면 태국 아이들이 미친 듯이 웃었다. 맙소사. 그게 그렇게 재밌는 일인가...
매일 외국어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내겐 아이들의 그 순진무구한 재미 포인트가 너무나 참신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오직 그 주제 하나로 아주 행복했던 아이들이다.
솔직히 힘들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라기보단 혹시나 다치거나 사고라도 생길까 봐 긴장했던 탓이었다. 책임져야 하는 자리는 아무리 작아도 작지 않다. 휴가라고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휴가는 절대 아니었다. ㅋㅋ
축구대회를 가겠다고 다친 걸 숨기고 있다가 고름이 가득 차고 다리 전체가 부어버린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를 치료하겠다고 내내 간호사 선생님과 씨름을 했다. 매일 고름을 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아이를 붙잡고 약 먹이고 수영장 못 들어 가게 감시하고... 조금만 더 방치했다면 뼈까지 삭아서 골수염에 걸릴 수도 있었다고 했다. 엄청나게 아팠을 텐데 안 데려갈까 봐 그렇게까지 참았다는 게 놀랍다.
매일 저녁마다 아이들은 컵라면을 먹었는데, 비빔 컵라면 물을 따라 버리는 걸 몰라서 어떻게 먹는지 가르쳐주어야 했고,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는 것, 호텔 침구와 소파 등을 깨끗하게 써야 한다는 것, 샤워기를 어떻게 틀어서 써야 하는지, 심지어 화장실 물을 "매번" 내려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알려줘야 했다. 남자아이들을 화장실 앞에 모두 모아 놓고 조준을 잘해야 하고... 뚜껑을 열어야 하고... 물을 확실히 내려야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는 내가 참으로 웃겼다.
정말 귀여웠다. 누군가의 처음을 함께한다는 것은 영광이다. 좀 힘들긴 하지만, 한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게 될 처음에 내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처음을 향한 그 감격과 순수하고 본능적인 눈망울들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내게도 신선했고 벅찼다.
이제 꼴에 어른이라고 시시하고 새로울 것이 딱히 없어진 뜨뜻 미지근한 내게 시원한 냉수 같았달까. 언젠가 음미에 대한 글을 쓴 적 있었는데, 요즘 내게 음미력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음미하고 감탄하고 감사할 것들이 많을수록 인생은 풍성하고 알록달록하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나를 다시 깨웠다. 지겹다 느껴질 때 처음을 생각하며 얼마나 내가 이 일로 기뻤고 신기했고 행복했는지 기억해야겠다.
다시 양곤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만나러 가면 수많은 아이들 중에 그때 함께 했던 아이들이 바로 눈에 띈다. 그 아이들도 나를 더 크게 반겨주고 사랑스러운 눈짓을 해준다. 우리 그때 함께했었지! 그때 참 좋았지! 우리의 눈 맞춤 안에는 수많은 처음의 감격과 행복이 담겨 있다.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처음의 감격을 선물할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