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여섯 번째 이야기
작년 크리스마스 때 쿠키를 구워 길거리 아이들에게 나누어 줬다. 취미로 하는 베이킹이라도 오븐 식을 날 없는 시즌이 크리스마스 때다. 거의 매일 빵이나 쿠키를 구우며 여기저기 성탄의 기쁨을 나눴는데, 차를 타고 다니며 길거리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 성탄의 기쁨마저도 부유한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이 느껴져 그들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오셨으니까. 이 아이들이야말로 성탄의 주인공이 아닐까.
그래서 작은 가정용 오븐을 열심히 가동하여 크리스마스 쿠키를 구웠다.
크리스마스 쿠키 틀이 생각보다 귀엽게 잘 나와서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쿠키를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쿠키 틀 찍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잘 안 찍힘...
이걸 며칠에 걸쳐 몇 백개를 찍어냈다.
사랑과 축복의 말씀도 뒤에 붙였다. 아이들에게 그냥 여느 때와 다름없는 먹을 것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따스하고 의미 있는 성탄을 선물하고 싶었다.
빨간 불 신호에 걸려 정차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이 다가온다. 한 손에는 칫솔을, 한 손에는 세제가 든 물병을 들고 냅다 사이드미러를 닦으며 돈을 요구한다. 사실 전용 세제도 아니고 망가진 칫솔도 벅벅 닦다가 휴지로 대충 훔쳐내는 것이니 깨끗하게 닦이기는커녕 더 더러워져서 닦으려고 하기 전에 얼른 뭔가를 주려고 한다.
이 날에는 줄 것도 있겠다 아이가 다가오자마자 바로 창문을 내리고 쿠키를 건네줬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이가 쿠키를 받아 들더니 "제주띤마대 카먀!(감사합니다!)"라고 아주 공손하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길거리 아이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서 뭔가를 주면 그냥 채가거나 심지어 자기 맘에 안 드는 거면 다른 거 달라고 요구하거나 버리기도 한다. 그런 삭막한 감성의 아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공손하고 예쁘게 말하는 아이가 있다니, 눈에 띄었다. 그렇게 쿠키를 전달하고 창문을 다시 닫고 긴 신호를 기다리는데, 그 아이가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 자기 친구가 있다고 쿠키를 하나 더 달란다. 그래서 하나 더 줬다.
아직도 남아 있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또 창문을 두드렸다. 친구랑 같이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러 다시 왔다는 것도 참 신기하고 감동이었는데, 차 옆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보니 아이들이 뒷면에 붙여 놓은 것을 읽고 있었다.
너희들은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란다. 너희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이라는 분이 너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이야!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참 감동이었다. 솔직히 이걸 붙여 봤자 몇이나 볼까 했기 때문이다. 그냥 먹을 것만 빼서 먹고 홀랑 버리겠지 싶었는데 이렇게 아이들이 어두움 속에서 차 라이트 빛으로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래 너희 두 명이라도 봤으면 됐다 싶었다.
이 신호에서 이 아이를 또 만난 적이 있었다. 사실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보면서 기억하진 못해서(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편...) 그때도 아이가 있길래 간식을 줬다. 아이가 나를 보더니 "기억해요!"라고 외쳤다. "나를 기억해?"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한단다. 너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 나를 기억하다니 대단한데?...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했냐 하면은, 이 번에는 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왔기 때문이다.
07.25 목요일 05:30-6:00p.m
역시나 이번에도 스티커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한 명이 있어서 붙여주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모였다. 그리고 거의 다 붙여가는 첫 번째 아이가 안절부절못하면서 건너편에 누나가 있다고 스티커를 더 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다 붙여주고 그쪽으로 우리가 갈게~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꽤 많이 몰려서 E와 나 모두 아이들 틈에 둘러 쌓여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급했는지 그 아이는 사 차선 도로를 겅중겅중 뛰어가서 누나를 데리고 왔다.
이 나라에는 횡단보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아무리 사 차선 도로여도 그냥 적당히 무단횡단하는 방법 밖에 없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오겠다고 막 뛰어들자 차들이 빵빵 거렸다. 가슴이 철렁.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모두 해줄 테니까 천천히 오라고 조심하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나를 알아봤었던 그 아이도 올까 내심 기다려졌지만 어두운 때 만난 거라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고, 그 아이도 나를 기억하긴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아이들이 갑자기 많이 몰려들어서(열명정도?) 한 명 한 명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누기가 어려웠다.
ㄹㄷ에서 만난 아이들보다 여기 아이들이 더 반응이 좋았다. 스티커를 붙여주자 팔짝팔짝 뛰며 서로 보여주고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귀여워라. 크리스마스 쿠키에 사랑과 축복의 말씀을 붙여 줬던 것처럼 아이들의 손등에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붙여 보냈다.
스티커 붙이는 것이 좀 마무리가 되면서 이제 책을 읽어줘야겠다, 하며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스티커 봉투에 들어 있던 네일스티커를 가리켰다. 이 것도 붙여달란다. 이 자식들 눈썰미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의자까지 피고 앉아 하나하나 붙여줬다. 사실 얼른 책을 읽고 싶어서 (목표 지향적인 사람인지라...) 엄지손가락에 하나씩만 붙여주려고 했는데, 열 손가락을 다 내밀며 다 붙여 달란다. 아직 몇 개 남았다고 계속 알려주며 재촉하는 아이들 덕분에 아주 정신없이 이 작은 네일 스티커를 작은 아이들 손톱에 올려줬다.
좋다고 저렇게 포즈 취하는 아이들을 보니 보람은 찼다. 그런데 저기 멀리에서 어떤 덩치 큰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우리를 지켜보는 거 아닌가. "밍글라바" 인사를 했는데 못 들은 건지 무시하는 건지, 인사를 돌려 받진 못했다. 다 하고 나서 구경하던 아이들이 그 아주머니를 보더니 얼른 일어나 장비를 챙겨 들고 도로로 나갔다. 아이들을 관리하는 아주머니인가보다. 아이들은 다시 도로로 나가 사이드미러를 닦고 창문을 두드렸다.
남매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남아 있어서 그 애들에게라도 읽어주려고 "책 읽어줄까" 물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읽어달란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가 책을 읽었다. 이 책이 참 별거 아닌 유치한 내용인데, 동물들이 많이 나오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저 남자아이가 내가 만났던 그 아이가 아닌가 싶다. 서로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이가 내게 어디 사냐고 물었는데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저~쪽에 산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정보를 많이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이 두 아이가 너무 닮아서 가족이냐 물으니 가족이란다. 다른 도로가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모라고 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도로에 앉아 있는 여자는 남자아이의 엄마고, 여자아이의 이모였다. 품에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보이는 핏덩이 같은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다. 대체 어디에서 아기를 낳고 이렇게 나와 앉아 있는 건지.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불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는데 이 날씨에 방석 하나 없이 길바닥에 앉아 바람을 오롯이 맞고 있는 이 분이 괜찮을까 싶었다. 이렇게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무얼 먹고 어디에서 자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고 자라는 걸까. 생각보다 인간은 강인하구나 싶다.
우리가 책을 읽어주고 있자 도로로 나갔던 아이들이 기웃기웃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커 보이는 아이가 자기도 듣고 싶단다. 살짝 주위 눈치를 보고 "너희도 읽어줄까?" 하며 주섬주섬 가방에 있는 책들을 꺼내 보여줬다. 아이들에게 고르라고 했다. 정해진 것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런 거라도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동화 속 예쁜 그림을 보며 좋아했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만져도 보며 대답도 열심히 했다. 저 멀리서 또 그 아주머니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가장 앞에서 열심히 듣던 가장 큰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를 낚아채듯 데리고 순식간에 도로로 뛰어 나갔다. 눈치가 많이 보이나 보다. 아주머니가 뭐라 뭐라 하니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났다.
꽃을 파는 시간이 있고 사이드미러를 닦는 시간이 있나 보다. 팔아야 하는 꽃이 왔다고 얼른 오라고 했단다. 이제 아이들은 꽃을 팔아야 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은 도로에 나와 있다. 낮에도 밤에도. 늦은 밤에 어쩌다 이 도로를 지날 때에도 아이들은 있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할 텐데 비가 오나 햇볕이 내리쬐나 아이들은 나와야 하는 건가 보다.
삼십 분 정도만에 마무리되었다. E는 아이들이 한가할 때 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출 때마다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한가한 때가 언제일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겠다. 우리 때문에 아이들이 혼나면 안 되니까.
좀 더 영양가가 있는 것을 주고 싶어서 비타민 캔디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오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한 통을 샀다. 이게 뭐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필요를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을 만날 수록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특별한 능력도 재원도 없이 E와 나 둘이 생각나는 대로 쫌쫌따리 하고 있는 일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지속하고 발전시켜가야 하나 고민스럽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우리를 통해 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