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일곱 번째 이야기
내가 사는 나라에는 3 계절이 있다. 11~2월은 겨울, 3~5월은 여름, 6~10월은 우기로 분류된다. 지난여름은 지독하게 더웠다. 원래도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지만 올 해에는 아주 끔찍했다. 50도가 우습게 넘어가는 온도에 전기 사정도 점점 나빠져 하루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몇 시간 안 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더운 나라였다는데, 첫 번째 나라가 아프리카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열사병과 각종 질병으로 사망했다. 고혈압도 많은 나라이고 냉장고가 있어도 전기가 계속 나가니 음식도 더 잘 상할 테고, 여러모로 더위가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었어도 많은 사망의 트리거가 되었겠다 싶다.
지금은 우기다. 더위가 좀 가셔 조금은 살만해졌나 싶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밤마다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사실 우리 집은 비가 많이 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비가 집으로 넘쳐 들어올 일도 없고 창문으로 비가 샐 일도 없다. 내가 주로 다니는 길들은 물에 별로 잠기지도 않아서 비가 오든 안 오든 문제없는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문제는 커진다. 물이 넘쳐 집이 잠기고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고 상점 등은 문을 닫는다. 차오르는 물은 집 근처 모든 쓰레기와 오물들을 끌어와 집안과 생활수, 음식 등 모든 것을 오염시킨다.
아직 우기의 중간이라 두 달은 더 비가 올 텐데, 이 볕이 들지 않는 꿉꿉함은 곰팡이를 만들고 질병들을 퍼트릴 것이다. 최근 콜레라가 유행한다며 조심하라는 안내를 계속하던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질병이든 예방이라는 것을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속에는 뱀과 거머리 같은 것들도 다니고 있단다. 얼마 있지도 않은 살림살이도 망가지고 몸 누일 마른 곳도 없이 비는 계속 와서 날은 서늘한데 먹을 것도 마땅치 않으니 얼마나 살이 떨리게 고될까.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영화 [기생충] 생각이 난다. 큰 비가 내린 날, 박 사장네 가족은 캠핑을 못 가 아쉽지만 다음날 공기가 깨끗해졌다며 번개 가든파티를 한다. 반면 기택 가족의 집은 모두 잠기고 다 젖어버려 뭐 하나 건지지 못한 채 체육관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안락한 집에 누워 침대맡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좀 시끄럽네 생각하며 잠들고 다음날 아침 공기가 좋다며 환기하는 내가 박사장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게 잘했다 잘못했다의 문제는 아니지만 나와 다른 환경에서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아가는 누군가들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눈에 보인다.
우리 집에서 내려다보면 길거리 아이들이 보인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아이들 두세 명은 꼭 있다. 그 비를 맞으며 창문을 두드리고 꽃을 팔며 손을 내민다. 사실 비가 오면 나도 창문 내리기가 싫다. 창문을 내리면 비가 들이칠 테니까. 그 조금의 빗방울을 맞는 것도 싫은데 아이들은 그 비에 흠뻑 젖어 있다. 하늘에서는 같은 비가 내리지만 나는 뽀송하고 아이들은 축축하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7월 한 달간 네 차례 길거리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일단 우비를 좀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이들이 덜 젖을 테고, 젖어도 덜 추울 테니 말이다. 그리고 비 오는 날 밤이 사고 확률이 가장 높다는데, 이 아이들은 그때에도 차도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저러다 치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아이디어 뱅크인 남편이 빛 반사 테이프를 이야기해 줬다. 그걸 애들에게 붙여주면 차 라이트에 반사되어 운전자가 아이들이 있다는 걸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을 거다. 일단 테이프를 사두고 이걸 어디에 붙여줄까 계속 생각해 봤는데, 우비가 적당하겠다 싶다.
토요일에 우비를 사러 도매시장에 가보려고 한다. 귀엽고 질 좋고 저렴한 우비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에겐 그저 유독 더웠던 한 해, 유독 비가 많이 오던 날들이 누군가에겐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인생의 일부가 뜯겨나가는 때가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잘못도 잘남도 아니기에 '어쩔 수 없지'로 반응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답을 찾으려고 하면 답이 없어 외면하고만 싶어 지지만 조금의 마음을 더해 함께해 주다 보면 답을 찾아갈 힘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08.01 목요일 18:00-18:40p.m
ㄲㄷㅈ 호수 쪽을 돌았다. 공원도 있고 회사도 많고 가장 상징적인 사원도 있고 차도 많은 곳이라 당연히 아이들이 많을 줄 알았은데 어쩐 일인지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대표적인 관광지 근처라 그런 아이들이 있도록 허락하지 않고 쫓아내는 건가, 아니면 차가 많은 게 오히려 위험하고 수완이 없어서 안 오는 거 싶기도 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긴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보다.
허탕(?)을 치고 돌아간다. 아이들이 안 보이니까 무척 아쉽다. 여긴 이제 안 와야지.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9시가 다 되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니 그 시간에도 싱싱한 꽃을 잔뜩 들고 도로를 다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며 너무 환하게 웃는 덕에 나도 천 짯을 주고 꽃 네 줄을 구입했다. 웃는 아이들을 그냥 지나치기란 참 어렵다. 지난주 목요일에 다녀왔던 곳에도 아이들이 잔뜩 있었다. 그때 만났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더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늦어 다른 걸 해주기는 그렇고, 작은 빵이랑 물이라도 주자 싶어서 얼른 챙겨 다시 나왔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손짓하자 우르르 내게 몰려들었다. 나를 기억하느냐 물으니 기억한다면서 누구는 손등을, 누구는 팔을 보여주며 여기 스티커 붙여줬지 않냐고 말한다. 한 명의 아이가 팔 소매를 걷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스티커를 보여줬다. 안 지워지게 조심했다면서.
일주일 동안 이걸 안 지워지게 지켜냈다는 것이 대단했다. 비도 맞고 땀도 많이 났을 텐데 이게 남아있다니! 소매를 조심히 걷고 다시 덮는 걸 보니 여간 소중히 여긴 게 아닌가 보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는 지워졌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빵을 하나씩 나눠줬다. 물은 세 병 밖에 못 들고 나와서 나눠 마시라고 했다. 간식은 그래도 여기저기에서 받아먹겠지만 물은 잘 못 마실 것 같아서 챙겨 왔다. 아이들이 자기도 물을 달라며 서로 이야기하는 걸 보니 가지고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빵을 스무 개는 들고나간 것 같은데 금세 동이 났다. 저기 누구 가져다주겠다며 더 받아 가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게 진짜든 아니든 그냥 줬다.
아이들에게 다음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무척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허기와 목마름이 조금은 채워졌기를 바라며,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