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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Aug 05. 2024

비가 오는 날 아이들을 마주치길 기대하며 우비를 샀다.

❀tiny mini flowers❀ 여덟 번째 이야기

08.03 토요일


우비를 사러 시장에 다녀왔다. 

시내에 내려가면 길마다 비슷한 부류의 물건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어떤 걸 사기 위해서는 27번 길에 가야 하고, 어떤 걸 사기 위해서는 28번 길을 가야 한다고 길 번호로 이야기한다. 인터넷 쇼핑몰이 꽤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처럼 발달해 있지는 않고 그 마저도 지금 정치적 상황으로 SNS가 막히면서 온라인으로 손쉽게 물건을 찾아 사기가 쉽지 않다. 뭐 하나 작은 거라도 발품을 팔며 구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도 우비를 사러 시내까지 갔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인도계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알고 보니 오늘이 힌두교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이라 그렇단다. 힌두 사원 근처에 금은방들 문이 열려 있었는데 아주 화려하고 반짝반짝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금을 참 좋아해서 조금 돈 있는 집이다 싶으면 금 악세서리를 하나씩은 꼭 차고 있다. 요즘은 화폐 가치가 많이 하락하면서 현금보단 안전한 현물을 보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금을 또 그렇게 많이 산다고 한다. 


힌두교 사원 앞을 지나는데 한 모녀가 길에 앉아 있었다. 요즘 책은 못 들고 다녀도 스티커랑 비타민 사탕을 항상 들고 다닌다. 아이에게 스티커를 붙여줄까 물으니 못 알아듣는다. 엄마가 애를 불러서 우리 앞에 세웠다. 우리가 스티커를 보여주며 이 중에 두 장을 고르라고 했는데 멀뚱멀뚱 우리를 쳐다보기만 한다. 몇 번이고 스티커를 고르라고 했는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만으로 두세 살은 되어 보이는데 이 정도도 못 알아듣는다는 게 이상했다. 

우릴 한참 보고 있더니 스티커를 양손 가득 막 잡아 쥐기 시작했다. 당황해서 아니 아니 두 장만!이라고 말했지만 손 악력이 얼마나 쎈지 스티커가 다 구겨졌다. 간신히 다시 빼앗아 들고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것으로 우리가 골라 붙여주기로 했다. 


양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주고 비타민 사탕을 몇 개 주었다. 아이는 끝까지 우리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혹시 민족어를 써서 못 알아듣나 싶어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애가 잘 못 알아듣는단다. 지능의 문제인지 교육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지능의 문제 같아 보였다. 인사를 하고 이제 가던 길을 마저 가려 일어났는데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따따(안녕)" 인사해 줬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좀 크다 싶은 나무 아래에는 이런 각종 신들이 모셔져 있다. 힌두신, 불상, 토속 신앙인 낫 신까지 제각각 인자한 표정으로 앉아 있고, 그 주위엔 사람들의 염원이 잔뜩 담긴 꽃들과 향, 음식 등이 놓여 있다. 


불교도들이 80% 이상인 이 나라는 윤회를 믿기 때문에 다음 생을 위해 덕을 쌓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불상에 꽃과 음식을 바치며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요, 탁발하는 스님들에게 정성스레 쌀과 반찬, 간식들, 돈 등을 드리며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인다. 버스에 앉아 있다가도 스님이 타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하고, 차 안이라도 파고다가 창문 밖으로 보이면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며 사원 안에 들어갈 땐 맨 땅이어도 신발을 벗으며 예를 표한다. 이런 것들이야 내가 아무리 외국인이고 종교가 다르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 없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이지만 어떤 것들은 엥? 싶은 것도 있다. 


그중 하나는 덕을 쌓기 위해 갇혀 있는 새를 구입해서 놓아주거나 비둘기 밥을 사서 주는 것이다. 그래 비둘기 밥 정도야 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선한 행위로 덕을 쌓는다 생각할 수 있지만, 갇혀 있는 새를 돈을 주고 사서 놓아주는 건 정말 이상하다. 그 새는 원래 자유로웠는데, 사람 덕을 쌓아주려고 잡히고 갇혀서 풀려나고 또 잡히고 풀려나고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새를 사서 놓아주며 덕을 쌓는다면 그 새를 잡는 사람은 다음 생에 아주 끔찍한 것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지? 그런 업보 사상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업보를 믿는 사람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것 인지? 이런 사업이 계속되면 더 많은 새들이 잡히며 자유를 억압당하는 것이 아닌지... 어떤 논리에서 나온 발상일지 늘 궁금하지만 혹시 무례한 외국인으로 보일까 봐...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볼 때마다 궁금해하고 있다. 언젠간 물어볼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있겠지.



우비는 옷가게에서 팔테니 옷가게들이 잔뜩 모여 있는 길로 갔다. 도매시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다. 쾌쾌한 옷 먼지 냄새가 뿌옇게 가득 차 있었다. 


우비가 걸려 있는 곳 네다섯 군데에서 아이들 우비를 찾아 만져보고 가격을 물어보며 다녔다. 6000~12000짯 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이왕이면 좋은 우비를 사주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생각해 보니 너무 좋은 우비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안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 아무래도 영업(?)이 잘 안 될 테니 어른들이 못 입게 하거나 팔아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투명하게 안에 옷이 비치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은 무난한 우비를 선택했다. 10벌 정도 사려고 했다가 20벌을 샀다. 이걸 어떻게 줄지 고민스러웠지만 일단 구입했다. 


사서 집에 가려는 길에 아이 한 명을 만났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나보다. 엄마 곁에서 놀다가 앞집 이모에게도 갔다가 자유롭게 다니는 걸 보니 시장에서 자란 아이 같아 보였다. 아이에게 말을 걸며 스티커를 붙여주겠다고 하니 옆에 엄마와 이모들이 얼른 가서 붙이라고 아이를 보내줬다.


부끄러운지 몸을 배배 꼬며 스티커 두 장을 골랐다. 스티커를 하나 붙여줄 때마다 좋아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게 참 귀여웠다. 위생의 이유로, 종교적 이유로 머리를 미는 아이들이 많아서 어린아이일수록 성별을 알기가 은근히 어려운데, 이 아이는 치마를 입고 있어서 여자아이구나 알았다. 아이와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시장을 나왔다.

 

집에 와서 한국에서 사 온 빛 반사 테이프를 우비에 어떻게 붙일지 요리조리 대보았다. 그런데 초강력 접착이라서 계단이나 여기저기 붙일 수 있다더니 접착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물론 그냥 붙여 놓는 용도로서는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주려다 보니 쉽게 잡아 뜯어지면 곤란했다.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늘 그렇듯 뭔가 붙어 있으면 뜯어보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ㅋㅋ


집에 박혀 있던 글루건까지 꺼내서 쏴보기도 했는데 마땅하지 않다. 생각보다 비닐이 강력했다. 강력접착제는 붙을 것 같아서 마트에 가서 찾아봤는데 없었다. 아쉬운 대로 일반 본드와 양면테이프를 샀다. 양면테이프를 모서리 쪽에 붙여서 접착력을 높였다. 비슷한 것 같지만 붙이는 게 좀 더 잘 붙어 있는 것 같아 붙이는 쪽을 택했다. 


이것도 은근 일인지라 한 번에 스무 벌을 다 붙이진 못했다. 세 벌은 붙여서 E에게 주고 나머지는 차에도 넣어 두고 가방에도 챙겨두었다. 비가 오는 날 어디에서 아이들을 만날지 모르니 여기저기 넣어 두었다. 



귀엽지 않은가!

빛 반사가 잘 되는지 밤에 암막 커튼까지 치고 휴대폰 후레시를 터트려 보았는데, 매우 반사가 잘 된다. 원래는 그동안 만났던 아이들에게 가서 나눠 주려고 했는데, 그게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사리기로 했다. 보통 그렇게 무리를 지어 한 곳에 일정한 시간에 맞춰 나오는 아이들은 조직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단다. 소위 말해 왕초 같은 사람이 있어서 사업을 하는 거라고... 아이들을 시간 맞춰 배정된 장소에 내려놓고 데리고 가고 하면서 돈을 버는 거라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과 뭔가를 하려고 부르면 업무시간이 방해되는 것이니 못마땅하게 보고 위협을 하거나 뭔가 요구하거나 어딘가 신고를 해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그런 사람들은 뒤를 봐주는 어떤 권력과 결탁되어 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정말 알면 알 수록 무섭고 어두운 세상이 많다. 구걸도 사업이라니.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저녁 늦게까지 도로를 누비며 꽃을 팔고 사이드 미러를 닦으며 돈을 버는 것이 아이들에게 배정된 노동이었던 것이다. 그 애들의 부모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 가서 밥을 먹고 씻고 잘까. 어느 정도 조직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체계적이고 무서울 줄은 몰랐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거칠어져서 좋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도 아니꼽게 보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하니 겁이 났다. 


그래서 최대한 불규칙적으로 여기저기를 다니기로 했다. 몇 군데를 정해서 규칙적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건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비도 한 번에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몇몇 아이들에게 비가 올 때 건네 주기로 했다. 너무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현재 이 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래서 아직 우비는 한 벌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다행인지 아닌지... 우비를 산 그날부터 비가 내리지 않고 있다. 여태 그렇게 미친 듯이 쏟아졌던 비가 똑 그치다니! 물론 다행이지만 당황스럽다 ㅋㅋ 어쨌든 비는 앞으로도 두 달은 더 올 테니 그때마다 적절히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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