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열세 번째 이야기
09.07 토요일
7시 아침운동을 마치고 장을 보는데 물가가 갑자기 확 올라 있었다. 4500짯 하던 브로콜리가 8500짯이 되어 있었고, 연근 두 덩어리 살 가격으로 하나 밖에 살 수 없었다. 고기도 이것저것 샀을 때 전부 합친 가격이었던 것이 1kg 가격이 되어 있었는데, 그 마저도 먹을 수 없는 부분을 손질하면 절반정도 남는 부위였다. 선뜻 집어 들던 모든 것들의 가격이 너무 올라 있어서 들었다가 내려놓기 일쑤였다.
집에 와 밀린 집안일을 후다닥 하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정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오늘은 새로운 책을 사러 가는 날이다. 근처 작은 서점들에서는 살만한 책들이 더 이상 없어서 다운타운에 있는 큰 서점을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운타운에 가는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다. E와 만나서 이야기 나눠 보니 E 동네에서 오는 택시비는 우리 집에서 오는 것보다 더 많이 나와서 중간까지는 버스를 타고 왔다가 택시로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체감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진심으로 현지화로 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숨이 턱턱 막히겠구나 싶었다. 원래도 그런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외국인인 나도 깜짝깜짝 놀라며 손을 떠는 지경이 되니 진짜 심각하게 느껴졌다.
이 도시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소식들에 이제는 익숙해져 버려서 별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나라의 상황에 늘 통탄하며 용사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E 마저도 솔직하게 고백하며 이런 자신이 싫다고 고백하는 걸 보니 내가 다만 외국인이어서 그런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무리 끔찍한 소식이 들리고 누군가 고통스럽다고 해도, 내 일상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는 일이 아니라면 금세 무의식 저편으로 넘겨 버리고 영향받지 않은 내 삶에 안도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같은 나라 어느 지역에선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이 죽고 도망치고 이산가족이 생기지만 우리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택시 타기가 부담스럽다 이야기하며 쌀국수를 먹고 커피 마시러 어디에 갈까 고민하고 있다.
오늘의 주 목적지인 대형 서점에 왔다. 작은 서점만 다니니 더 이상 새로운 책이 없어서 가장 커 보이는 서점을 찾아왔다. 하지만 커봤자 얼마나 크겠어 싶어 별 기대 없이 왔는데, 건물 한 층을 서점이 전부 쓰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꽤 있었다. 어린이 책 코너도 따로 있어서 놀라웠다.
책이 많은 만큼 먼지도 많은지 비염이 시작됐다. 콧물이 줄줄 나고 덥고 습한 날씨에 땀도 줄줄 났다. 휴지로 코도 닦고 땀도 닦아야 하는 아주 지저분하고 찝찝한 상황이었지만 마음은 무척 설레고 기뻤다. 책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아이들과 읽을 수 있을만한 수준과 내용, 그림 등을 확인했다. 그림이 아름답고 너무 글이 빼곡하지 않지만 재밌고 귀여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들을 하나씩 골랐다.
새로운 책 가져오라고 두 번이나 이야기했던 아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하지만 만났을 때 제한을 좀 둬야겠다. 그 아이는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 아이라 모든 책을 다 읽고도 다시 또 읽어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11권을 샀다. 사진엔 없지만 여기 오기 전에 잠깐 들른 다른 서점에서도 4권을 사 왔기 때문에 오늘 총 15권의 새로운 책을 샀다.
당장 아이들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어서 저번주에 다녀왔던 ㄷㄱ으로 향했다. 사실 가야 하는 곳이 있어서 시간이 30분 밖에 없었는데 몇 권이라도 읽어주고 싶어서 서둘렀다.
저번에 만났을 때 무척 귀여워서 기억이 나던 아이가 자고 있었다. 콘크리트 위에서 저렇게 자면 안 불편한가... 싶었지만 아이들은 원래 이상한 자세로도 무척 잘 자니까.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이곳은 우리가 한 번밖에 안 와봤고 어떤 분위기인지 아직 덜 파악했을 수도 있으니 너무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모으기보다 일단 자는 아이 옆에 앉아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우리가 앉아 있으니 아이들이 지나가며 우리에게 눈짓을 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를 알아보는구나!
인사하는 아이에게 넌지듯 "책 읽어줄까?" 물었다. 아이는 볼이 볼록해지게 입을 앙다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리 오라고 하니 갑자기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무리에 속해 있어서 장사나 구걸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면 보통 어른 눈치를 보며 잘 못 오기 때문에 살짝 긴장이 됐다. 우리가 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고 웃었다. 그 사이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가라고 아이들에게 훠이훠이 손짓을 했다. 휴 다행!
그렇게 책 읽기가 시작됐다. 내가 시간이 없는터라 딱 3권만 읽어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신나게 책을 골랐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무지개 물고기] 책이 있길래 사 왔는데, 아이들이 보자마자 "물고기!!"를 외치며 골라 들었다. 처음엔 두세 명의 아이들이 앉았는데, 점점 몰려들더니 어른들도 한 두 명 와서 듣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맘대로 공개할 수는 없어서 뒤통수 사진들만 올리는 게 참 아쉽다. 아이들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한지, 흥미로워하는지, 재밌어하는지, 매번 감사하고 아름답다.
E가 책을 읽어주면 나는 끝나고 줄 간식을 사 오고 아이들 곁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는다. 계속 생각해 본 건데, 나는 글을 저렇게 유창하게 읽으며 구연동화를 해주기 어려우니 대신 연계활동을 준비해 오면 어떨까 싶다.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어도 하기가 어려운 지역들이었는데, 여기는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고, 어른들도 호의적인 편이고, 다리 아래 공터에 모이는 거라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활동을 할만한 장소가 있다.
짧고 쉬운 미술, 체육 활동 같은 것들을 한 두 개 준비해 와서 아이들이 책을 읽은 후에, 또는 몇 명은 책을 읽고 몇 명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E와 역할분담을 해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약속한 대로 딱 3권의 책을 읽어주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돌아섰다. 아이들이 무척 아쉬워하며 다음 주에 또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때는 뭔가를 더 준비해서 와야겠다. 전직 유치원 교사로서 아기자기함이 꿈틀거린다 ㅋㅋ
쪼르르 앉아 있는 아이들의 알록달록한 바지가 너무 귀엽다. 곧 또 보자!
우비 주기는 틈틈이 하고 있다. 한 번은 비는 그쳤지만 이미 비를 맞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를 만나서 우비를 입혀 줬다. 젖지 않은 비닐 재질이니 체온이 좀 유지될 것 같아서였다. 너무 춥다며 아이가 말도 잘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이런 날씨에 이렇게 어린애를 뭐 하나 입히지도 않고 팔아야 하는 꽃만 쥐어 보내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절로 나왔다.
오고 가며 우비를 줬던 아이들을 다른 비 오는 날 보았는데, 내가 준 우비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어둡고 줌을 많이 당겨 찍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우비에 붙인 빛 반사 테이프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차가 와서 불을 비출 때마다 스티커 부분이 빛났다. 늦은 시간에 비를 맞으며 도로에서 꽃을 팔고 구걸을 하지만 아이답게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장난치는 모습은 자주 봐도 가슴 아프다. 우비가 없는 아이는 큰 비닐에 머리 넣을 수 있는 구멍을 뚫어 입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야속하게 이리저리 날리는 걸 보니 기능은 전혀 하고 있지 못할 것 같다.
겉만 맴돌고 있는 기분이다. 어떻게 하면 문제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고 어떤 것을 어떻게 구체화시켜야 할지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매캐하고 답답하다. insight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