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열네 번째 이야기
갑작스레 한국에 왔다. 어느 정도 갑작스러웠냐 하면 월요일 오후에 비행기표를 사서 다음날인 화요일 새벽 비행기를 탔다. 사유는 "암"
최근 몇 달간 욱신욱신 아프고 혹이 만져지던 부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불안해서 회사 건강검진에 몇 가지를 더 검사하며 살펴봤다. 결과는 "high level of suspicion for malignancy (악성 종양이 매우 의심됨)"
당장 조직검사를 하고 조치를 취할 것을 안내받았다. 한국 의사 선생님께도 내 결과지와 초음파 사진 등을 스캔해 보내드렸는데, "암인 건 맞는 것 같고 얼른 와서 전이 여부를 보자."라고 하셨다. 당장 입원할 준비를 해서 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어서 거의 암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화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집안을 살폈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쿠션도 괜히 한 번 더 만져 구김을 펴 놓고, 남편 약도 잘 보이게 꺼내 놓고 집에 있는 군더더기들을 정리했다. 암이라는 게, 사람을 당장 죽이진 않는다고 해도 사람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기엔 매우 충분한 녀석이라 내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남편도 암을 한 번 겪었는데, 나도 겪는다니. 또래보다 건강을 잘 챙기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거면 뭐 하러 절제하며 살았나 막살걸!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 부부의 삶은 왜 조금도 순탄한 구석이 없을까 서글프고 대상 없이 억울하기도 했다. 동시에 내 마음을 크게 차지한 것은 "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였다. 나 이제 뭐 좀 해볼까 하면서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는 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뭐 하나 제대로 열매 맺고 마무리 짓는 것이 없을까. 뭐 좀 해볼 만하면 꺾일까. 슬프고 서럽고 억울하고 서운했다.
눈물이 났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잘 안 우는데, 이젠 잘 운다고 해도 되겠다. 자다 깬 남편이 "여보"하고 나를 부르는데 왈칵 눈물이 나서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내가 잘 안 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라 남편은 당연히 내가 우는 척하는 줄 알고 ㅋㅋ "뭐야 우는 거야~"하면서 장난을 치려고 했는데 내가 진짜 우는 것 같으니 당황해했다. 남편 품에서 엉엉 울었다. 그렇게 울음이 시작되면서 한국에 오는 길 내내 울컥하는걸 몇 번을 참으며 왔다. 부모님을 만나면 더 울어버릴까 봐 걱정됐는데, 다행히 부모님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이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론은 암은 아닌 것 같고 6개월마다 추적관찰을 하기로 했다.
일단 암이 아니라고 하니 바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암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 암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세상에 100%는 없다. 꼭 지금 내가 문제 삼는 이곳이 아니더라도 내 몸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암이 있을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고, 안다 한들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전문가라고 불리는 누군가의 주관적 의견에 판정을 맡길 수밖에 없는 그런 무능력하고 수동적인 존재임을 다시금 느낀다. 내 몸에 있는 수많은 장기들과 세포들이 삼십 년 동안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나의 생명이 유지되었다는 것이 기적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어떤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 채 영원을 살 것처럼 착각 속에서 지금을 산다. 죽어가면서도 죽음을 가늠해 볼 수 없는 어리석고 유한한 존재로서 오늘 하루와 나의 삶에 대한 고찰에 더욱 처절해진다.
나의 소명, 나의 부르심
내 유한한 삶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크리스천이라면 "네 소명이 뭐야?"같은 질문을 꼭 한 번은 들어본 적 있을 거다. 들어보진 못해도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보는 질문일 테다. 나는 꽤 뚜렷한 소명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생각하고 붙들었던 내 소명은 진정한 소명이 아니라 나의 바람, 욕심, 이기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소명은 Calling이다. 부르심. '부르는 자'가 없다면 부르심은 없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응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직업적인 일이든 어떤 유의 일이든 깊은 소명 의식이 없다면 결코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소명'자체도 누군가 부르는 자가 없다면 공허할 뿐이며 일과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어떤 것을 하도록 혹은 어디엔가에 가도록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로 부름 받았다. 특별한 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름 받았다."
오스 기니스의 책 [소명]을 읽으며 줄을 그은 문장들이다. 책이 어려워서 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누군가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다 읽기도 벅차지만 소명을 향한 나의 시선의 방점을 다시 찍는데 도움을 주었다.
부르심에 대한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응답할까 하는 고민 보다 누가 부르셨는가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제외하면 언제나 "말씀"으로 계시하셨다. 말이라는 것은 흩어지고 사라지는 가장 형체가 없고 확신 없는 것인데 왜 말로 하셨을까. 가장 편견을 만들지 않고 한계가 없기 때문이려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피조물은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우리의 소명이 되겠다.
다시 미얀마로 돌아간다. 내가 어디에 있든 부르는 자만 있다면 내 삶의 의미가 충분하고 맡은 소명을 다 하는 거지 싶다. 나의 쓴 뿌리를 거둬내고 탁한 시야를 맑게 하고 지금 이곳에서 부름 받은 것에 얼마나 집중하는가. 몸과 마음, 영혼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참 생각이 났다. 한 달은 못 갔는데 혹시 기다리진 않을까. 곧 또 온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내가 이 일에 이렇게 마음이 컸는지 몰랐다. 미얀마를 떠날 때 그럼 이걸 누구에게 맡기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다시 미얀마로 돌아갈 때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바리바리 쌌다. 미얀마를 그렇게 여러 번 오가면서 짐 추가를 돈 주고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들 것만 케리어 한 가득이라 짐 추가를 해야만 했다.
남편이 유치원 차리러 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게. 여전히 나는 왜 이런 일에 힘과 에너지와 자원을 쏟는가 의문이 피어오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내가 낯설달까. 그런 죽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도 그 애들이랑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하고 싶었는데! 하는 생각부터 떠올라 먹먹해지고 E가 혼자라도 나갈 수 있게 책이랑 스티커를 챙겨두고 돌아오면 우기가 끝나려나 싶어 사놓은 우비를 나눠 주러 그 밤에 나가는 내가 나도 낯설고 당황스럽다. 나는 왜 이런 일에 마음이 가는가.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곳이 내가 부름 받은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뭐 딱히 하는 것도 없고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그 작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면 불러주시는 만큼 응답하다 가야겠다 싶다.
힘이 좀 빠진다. 바짝 긴장하고 잘 해내리 이 악물던 그 힘이 사악 빠지는 기분이다. 이제는 힘 좀 빼고 여유롭고 평안하게, 내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 아닌 잠잠히 귀 기울이고 부르시는 만큼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