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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Oct 22. 2024

아이들과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tiny mini flowers❀ 열다섯 번째 이야기


오랜만이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러 일로 분주했다. 그전에 비해서 물리적인 일의 양은 좀 줄인 것 같은데, 돌아오자마자 떠난 지방 출장이 무리였는지 뭐였는지 아무튼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아프면 병원 가기가 쉬우니 마음이 편한데, 해외에서는 병원 가는 것이 편하지 않아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한국 갔을 때 내가 놓친 것은 없나 되짚어 보기도 하고 아, 그 병원 가서 이런 것도 좀 보고 왔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워하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주관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주제넘게 책임을 지려하면 부담과 스트레스로 골병만 들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몫만큼만 책임지며 살아가련다. 


그래서 벌써 돌아온 지 3주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을 만나러 나가지 못했다. 대신 집 앞에 있어 매일 보는 아이들에게는 계란을 삶아다 주었다. 계란을 껍질채 먹는 아이도 있어서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계란 껍데기를 까먹는 걸 모르는 건지, 못하는 건지, 귀찮은 건지... 뭐 


10.19 토요일

짬을 내어 나갔다. 이번엔 책이 아닌 바람개비 만들기 세트를 들고나갔다. 한국에 갔을 때 잔뜩 사 왔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갔다. 몇 개를 가지고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열 개만 챙겼다. 펼쳐놓고 색칠을 해야 하는 건데 아이들이 길이나 계단에 너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딱 열명만 하고 아이들 사진을 찍어 놓고(안 했다고 우길 수 있으니) 못한 아이들은 다음에 가서 해줘야지 생각했다. 


택시에서 내리기 전부터 아이들이 어디에 있나 스캔을 했다. E는 우리가 보통 아이들을 만나는 다리 밑에 이미 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다고. 택시에서 내려 E에게 가는 길에 식당 앞 계단에 앉아 있는 아이 한 명을 봤던지라 E에게 이 쪽으로 오라고 했다. 


아이에게 다가가 바람개비 만들래? 물어봤다. 아이는 망설이며 광주리에 든 벼를 슬쩍 보곤 돈을 벌어야 해서 안 된다고 했다. 마침 가게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 돈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아저씨가 우리와 아이를 번갈아 보더니 벼 사줄 테니까 우리랑 만들기를 하라고 했다. 그렇게 첫 번째 아이와 바람개비 만들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주섬주섬 색연필과 만들기 세트를 꺼내자 여자 아이 한 명이 다가왔다. 그래서 두 명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색칠하게끔 했다. 

가게 앞 계단이라 아이들이 막고 있으면 가게 주인에게 쫓겨날까 봐 눈치를 보며 아이들에게 좀 당겨 앉으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지나가던 아이들 몇 명이 더 몰려들었다. 


여자아이는 장난감 귀찌를 하고 있었다. 꽤 멀끔해 보여서 학교에 다니느냐 물으니 Grade2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 같았다. 이색이 필요하다 저 색이 필요하다 아주 야무지고 알록달록하게 색칠을 했다. 이런 것들을 처음 해봐서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처음 만났던 남자아이는 성의가 없는 건지 소근육 발달이 잘 안 된 건지 색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삐뚤빼뚤 선을 넘나들고 색에 힘도 없었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또 다가오더니 도와주겠다고 옆에 앉아 같이 색칠을 해줬다. 


 

아이들이 점차 우리에게 다가와 둘러싸기 시작했다. 색연필이 한 세트 밖에 없어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색칠을 끝낸 아이들의 바람개비를 마무리해 주자 지켜만 보던 아이들이 참을 수 없는지 다시 한번 졸라댔다. 한 명씩 나누어 주었는데, 흥분한 아이들이 점점 가게 계단을 점령해서 손님들이 오가기가 어려워져서 그 옆으로 오라고 하고 계단은 뚫어 놓았다. 보이지 않는 주인 눈치를 계속 보며...


야무지게 색칠하던 여자 아이의 바람개비다. 선을 넘지 않게 아주 꼼꼼하고 힘 있게 색칠을 잘했다. 바람에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넋을 놓고 보더니 얼른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자기 것을 받아 들고는 길을 뛰어다녔다. 바람개비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보며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역시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 바람개비는 못 참지!


남자아이는 완성된 바람개비를 들고 가게 문틈 안으로 손을 쑥 넣었다. 뭘 하나 보니 문 쪽에 있는 선풍기 바람에 바람개비를 돌리는 것이 아닌가 ㅋㅋ 천잰데...? 똑똑한 친구구나 싶었다. 힘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고 있었다. 직원이 뭐라고 했는지 금방 후퇴하긴 했지만 이후로도 몇 번을 저렇게 가게에 빼꼼 들어가거나 아예 들어가서 바람개비를 신나게 돌렸다. 


총 아홉 명의 아이들이 바람개비를 만들어 가져갔다. 그중에 어딘가 닮아 보이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형제란다. 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정사를 다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계신다. 자녀는 아들 셋 딸 셋 총 6명인데 첫 째는 다른 지역에 가서 없고, 나머지 다섯 명이 매일 이렇게 길에 나와서 돈을 번다고 한다. 언제 집에 가냐고 물어보니 2만짯을 채우면 갈 거라는데, 그럼 내보낸 애가 다섯이니 하루에 총 10만짯을 버는 건가? 하는 계산이 나왔다. 건설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1~1.5만짯인걸 생각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에 있다고 한다. 학교도 아무도 안 다니고 자기 이름 쓸 줄도 몰라서 써달라고 하던데 엄마가 애들 돈 벌어오게 시키고 집에서 뭐 하나 싶다. 하루 10만짯이면 큰돈인데 그걸 어디에 쓰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들 행색을 보니 마땅히 써야 하는 곳에 쓰는 것 같진 않다. 


아이들은 한참을 뛰어다녔다. 아직은 꽤 덥고 햇볕도 뜨거웠는데 바람개비를 앞세워 맨발로 뛰어다니는 걸 보니 보는 내가 다 더웠다. 이후 일정이 있어 택시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데 13살이라고 했던 여자애가 꿍(씹는 담배) 파는 가게로 가길래 지켜봤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돈을 건네고 담배 한 개비를 받아 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계속 지켜봤다. 가게에 있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힘껏 빨아드리고 연기를 뱉더니 바람개비를 들고뛰었다. 한 손엔 빙글빙글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한 손엔 담배를 들고 가는 그 뒷모습에 어찌나 이질적이던지. 이런 길거리의 아이들에게 기본적 생활 습관이나 도덕교육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목도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매일 2만짯씩 구걸해 집에서 뭘 하는지 모를 어머니에게 가져다주는 열세 살의 여자 아이에게 "담배는 몸에 안 좋아!"라고 지도해 주는 어른이 있었을까. 하다못해 저 가게 아저씨는 저 어린애한테 그냥 담배를 판단말이야? 규범도 돌봄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다시금 느낀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씩 웃더니 동생들이 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저 담배를 나눠 필까? 아니, 담배만 피우는 걸까? 가르침과 돌봄 없는 길 위의 삶이 그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시리게 다가왔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바람개비를 높게 들어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내가 오늘 처음 발견한 아이가 끝까지 함께 했는데, 들고 다니던 부채를 내게 가지고 왔다. 고맙지만 안 줘도 된다고 하니 선물이라고 꼭 가져가란다. 왜 선물 주는 거야? 물어보니 예뻐서 준다고 했다. 짜식 귀여움 받을 짓을 하는 아이구나! 

한국에서 가져온 것들이 몇 종류 남아 있는데, 그걸 이 아이들과 다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나온 날 만난 아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이 있기를,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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