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보증금 500, 월세 50만원

by 작은서재

오래 만난 시간만큼 이별을 소화해내는 시간도 적지 않게 필요했다.

퇴근하면 집을 알아보고 다니며 슬픔에 빠질 새 없이 분주히 움직였다.


계약서상 집주인 정보와 실제 민증 정보가 같은지, 집주인과 계좌주가 같은지, 담보 잡힌 건 없는지,

인터넷에서 찾은 계약 시 주의할 리스트를 체크한 후 계약서를 쓰고 내가 2년간 살게 될 곳으로 갔다.


내 손으로 처음 찍어보는 인감도장


나의 첫 자취방은 부모님과의 타협으로 본가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오피스텔이 되었다.

지방/시내/원룸기준 보증금 500에 월 50. 관리비까지 내고나면 60~70.

사회초년생 한달 월급에서 부담이 안되는 금액은 아니다.

그 땐 첫 독립에 눈이 멀어 가성비는 외면하고 냅다 질렀다.


침대, 건조대, 그릇 등등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자취방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집이라기보단 '조금 더 커진 내 방'에 더 가까운 곳에서 2년을 살았다.

매월 관리비와 월세를 내고 나면 바닥을 보이는 잔고만 빼면 모든 게 좋았다.


혼자 몇 시간을 누워 있어도 눈치주는 사람 하나 없고

퇴근하고 헬스하고 카페가고 영화보고 마음껏 시간을 누리고 늦게 귀가해도 자유로웠다.

먹고 싶은 거 마음껏 시켜먹는 것도

듣고 싶은 노래 들으면서 춤추는 것도

사방이 자유였다.


억압이 사라지니 오히려 본가에서 살 때보다 규칙적이고 건강하게 살았다.

내가 내 삶을 '일구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느끼면서 하루 24시간이 나로 가득한 일상이 이런거구나 느꼈다.

조그만 텃밭을 사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매일 아침 날씨를 확인하는 그런 습관들을 만들어갔다.

주위에 독립을 적극 추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내 삶의 조타수가 되어 주도적으로 사는 기분은 지금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성취감이었다.


원룸에서 2년, 투룸에서 2년. 총 4년을 혼자 살았다. 치유의 시간이자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공부와 운동을 시작했고,

글 쓰는 재미를 알아 뭐든 썼고 독립출판을 했다.

새로운 음악과 향수 취향을 발견했고 매일 나로 가득한 일상을 한가득 담아냈다.

4년간 혼자 놀면서 터득한 몇가지 방법들을 지금도 써먹는다. 우울하면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방을 휘저으며 춤을 추고, 주말 아침엔 일찍 일어나 범죄 유튜브를 들으며 밀린 집안일을 한다. 수건은 한 방향으로 맞춰서 개고 색깔별로 옷을 분류해 옷장에 건다.


지금 다시 돌아가면 돈을 조금만 더 모아서 월세 대신 전세, 전세 대신 매매로 갔겠지만 폭발 직전의 화산 같았던 그 때는 그게 가장 최선을 선택이었을거다. 부모님께 나의 독립을 위한 상당한 핑계를 만들어준 지난 연인에게 고맙다. 이쪽 모서리에서 저쪽 모서리까지 두 번 반 구르면 갈 수 있는 조그만 방에서 나의 세계는 넓어졌고 내가 채우는 삶의 단 맛을 알게 되어 그 때 독립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개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상황과 마음이 따라준다면 살면서 한번쯤은 꼭 혼자 살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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